사진=영화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스틸
지난해 77편의 상업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여성 감독의 작품은 단 10편에 불과했다. 1년에 천만 영화가 2편 씩 탄생하고, 연 관객수 2억 명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성 감독들은 여전히 주변인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영화계에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었다. 이때 변영주 감독부터 임순례, 이정향, 감독 등 여성 감독들이 다수 데뷔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 여성 감독의 숫자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변 감독이 1993년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연출했으며, 임 감독은 1996년 영화 ‘세친구’로 데뷔했다. 이 감독이 1998년 ‘미술관 옆 동물원’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산 증인인 홍형숙 감독도 90년대 데뷔했다.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과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등 2000년대에도 이 흐름은 계속됐다. 방은진, 이언희 감독 등 신선한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여성 감독들이 꾸준히 등장하며 남성 중심 영화계에 경종을 울렸다.
사진=영화 '집으로' '미쓰 홍당무' 스틸
그럼에도 여전히 그 숫자는 많지 않다. 임 감독과 변 감독의 아성을 뛰어넘을 만한 여성 감독의 등장도 없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여성 감독들의 고군분투가 계속됐지만, 적은 숫자와 그나마 있는 감독들의 작품 간격도 넓어 활발한 경쟁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여기에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제작비 규모도 커졌다. 위험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대형 블록버스터 위주의 영화들이 늘어났다. 남성들이 대거 등장하는 오락 액션 영화나 범죄 영화들이 주를 이뤘고, 2000년대 반짝 빛나던 여성 감독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극장에서 개봉한 여성 감독의 참여율은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아주 미미하지만 최근 5년 간 가장 높은 비율이다.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8년 여성 감독 작품의 평균 관객 수가 59만 3319명으로 전년보다 28.8%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에도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져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게 했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을 시작으로, ‘밤의 문이 열리면’의 유은정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 ‘아워 바디’의 한가람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 등 독립영화계에서 여성 감독들이 대거 쏟아졌다.
특히 이들 모두 획일화된 장르 문법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을 보여줬고, 완성도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도가 컸다. 독립영화라는 한계 때문에 흥행 성적은 ‘벌새’의 10만 동원이 가장 높은 숫자지만, 의미 있는 결과들을 남기며 변화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