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호박덩쿨, 오스텔라 제공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한다. 국내에선 앙상블 배우들을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편집자주
“앙상블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요”
‘사랑했어요’를 통해 뮤지컬배우로 첫 발을 내딛은 나윤권의 말이다. 몸치였던 그를 움직이게 한 건 앙상블 배우들의 공(功)이 컸다. 앙상블은 노래와 안무, 연기를 통해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는 적지만,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 위한 노력에서는 주연 못지않다. 나윤권도 이 배우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힘을 보탰다.
다양한 롤을 가진 앙상블, 뮤지컬 ‘사랑했어요’에서는 여러 역할들 중 유독 몸짓이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 중심에는 배우 권수임이 있다. 무용을 전공한 그는 앙상블 배우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길을 끈다. 극중 넘버인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수많은 앙상블 배우들 사이에서도 권수임이 돋보인 건 ‘선’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몸을 활용하는 것에 익숙한 만큼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도, 넓은 무대를 홀로 가득 채우는 것도 전혀 무리가 없다.
◇ 배우 ‘권수임’은...
권수임은 한양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졸업 후 무용단에서 활동하던 중 2016년 ‘노드르담 드 파리’의 댄서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안나 카레니나’(2018)에서도 댄서로 무대에 올랐다. 같은 해 ‘바넘: 위대한 쇼맨’을 통해 본격적으로 앙상블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했고, ‘잭더리퍼’(2019) 그리고 지금 공연되고 있는 ‘사랑했어요’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Q. ‘사랑했어요’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 달라.
A. 현재 출연중인 ‘사랑했어요’는 같은 공연을 하던 선배의 제안으로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어요. 오디션에서는 지정안무, 자유곡, 지정연기를 심사 받도록 되어 있죠. 자유곡 같은 경우 ‘사랑했어요’가 쥬크박스 뮤지컬이다 보니 ‘오 캐롤’이라는 쥬크박스 작품의 노래를 자유곡으로 선정하여 불렀고, 지정연기는 오디션 당일 제시된 지문으로 연기하는 방식이에요. 지정안무 또한 오디션 당일, 순서를 20분정도 가르쳐주시고 바로 선보이는 식이었죠. 이 과정을 통해 ‘사랑했어요’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Q. 솔로 안무를 맡은 만큼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A. 맞아요. 1막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장면에서 솔로로 춤을 추는데 무대 위에 혼자서 조명을 받고, 장면의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이끌어가면서 춤을 춘다는 게 항상 어려운 거 같아요. 무용 전공이다 보니 솔로로 춤을 추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항상 긴장되는 건 사실이에요. 내 실수 때문에 그 장면의 분위기가 깨질까봐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계속 연습을 하게 되더라고요.
많은 배우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도 있어요. ‘퀵체인지’인데 짧은 시간 안에 헤어와 의상을 바꾸고 다음 씬에 투입되는 거죠. 이번 공연은 2막에서 매 씬마다 앙상블이 다른 역할로 나가서 계속 의상을 갈아입고 머리를 바꿔야 해요. 1분 30초 정도, 빠르면 40초 안에 나가야 하는 장면들도 있어요. 그런 부분이 조금 힘든 부분이에요.
Q. 배우 권수임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A. 제가 욕심이 많아서인지 ‘좋은’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어요. 관객들에게 진심이 전해지는 배우가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극장을 찾아주시잖아요. 열정과 최선의 에너지로 관객들이 기꺼이 내주신 시간과 설렘에 보답하는 배우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면 그 작품에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 역할로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힘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또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호박덩쿨, 오스텔라 제공
◇ ‘앙상블’이라는 직업은...
Q. 뮤지컬에서 앙상블이 하는 역할은?
A. 지금 ‘사랑했어요’에서 비엔나사람, 서울사람, 공장사람, 백댄서, 결혼식 하객, 아카펠라 합창단원 등 매 씬 마다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처럼, 뮤지컬에서 앙상블의 역할은 매우 다양해요. 주연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있고 때론 어느 장면에서는 개인의 역량을 발휘해야할 때도 있고요. 또 무대의 배경처럼 움직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솔로파트와 합창을 어우러지게 해야 하고, 군무를 정확하게 맞춰야하고요. 여러 명이서 함께 하다 보니 서로의 호흡도 느끼며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해요. 장면 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다른 역할들이 요구되는데 제 생각엔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하나의 배역이라 생각돼요.
Q. 앙상블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A. 일부는 앙상블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주인공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시선들이 너무 속상했어요. 사실상 앙상블이 많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소위 말하는 주연이 아니기에 묻히는 그런 상황이 싫기도 했고요. 작품 안에서 앙상블이 노래나 춤을 솔로파트로 하지 않는 이상 개개인이 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 관객분들 중에서 앙상블을 찾아서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계신 반면 아예 모르시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앙상블이 이끌어 가는 에너지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부분도 많고요. 관객분들께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뮤지컬 ‘사랑했어요’는...
‘사랑했어요’는 서로 사랑하지만 다른 공간에 속한 세 남녀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인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한 편의 소설처럼 서사가 담긴 고(故) 김현식의 명곡들이 이야기의 축이 돼 극을 이끈다. 10월 27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