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공사 중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웨스트 사옥 모습 (사진=KT)
KT의 정기 주주총회를 열흘 가량 앞두고 표대결이 심화되고 있다. 외국인 주주 표심에 영향을 주는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은 잇따라 윤경림 사장의 선임 안건에 ‘찬성’을 권고했다. 반면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현대차그룹, 신한은행 등은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윤 대표 안건이 부결될 경우 대표이사 공백이 장기화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은 최근 자문의견서를 통해 오는 31일 열리는 KT 주주총회에서 윤 후보에 대해 ‘찬성’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ISS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도 ‘찬성’ 평가를 냈다.
ISS는 “윤 후보자는 ICT(정보통신기술), 미디어, 모빌리티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회사의 사업 전략을 선도할 자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글래스루이스는 앞서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실질적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냈다.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회사의 의견이 일치함에 따라 KT 외국인 주주들은 윤 사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KT의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44% 수준이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들도 윤 사장을 지지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네이버 카페 ‘KT 주주모임’을 통해 결집하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진행되는 전자투표를 알리면서 KT 주주들의 동참을 독려하는 중이다. 지난 18일 기준 회원 수는 1500명을 넘어섰으며 약 365만주(지분율 약 1.4%)를 모았다고 밝혔다.
7일 KT 이사회는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을 차기 최고경영자(CEO) 최종 1인 후보로 선정했다. (사진=KT)
국민연금은 여전히 윤 후보에게 반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말 기준 10.13%를 가진 국민연금이 ‘반대’할 경우, 현대차그룹(7.79%)과 신한은행(5.48%)도 국민연금의 눈치를 보고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과 신한은행은 KT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교환했다. 통상 이런 경우 경영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의결권 행사에 나서지 않는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이 신한은행의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의 최대 주주이고, 현대차의 2대 주주라는 점이 변수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이전에도 KT의 대표이사 선임에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이 공시한 주주권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구현모 대표와 공동 대표로 추대된 박종욱 대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은 당시 박 대표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된다”며 반대 사유를 밝혔다. 구 대표와 마찬가지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KT가 SEC로부터 과징금을 받은 데 대해 박 대표도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박 대표는 결국 주총일에 자진 사퇴했다.
앞서 윤 후보도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에 의해 구 대표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됐다. 이 시민단체는 구 대표의 친형 회사인 에어플러그를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차에 근무하는 윤 후보가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T는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윤 사장은 2021년 7월 현대차의 에어플러그 인수 당시 투자 의사결정과 관련된 부서에 근무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며 “윤경림 사장이 ‘현대자동차·에어플러그 인수의 공을 인정받아 KT에 재입사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KT는 “윤 사장이 LG데이콤, 하나로통신, KT 등 통신 3사와 CJ, 현대차 등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통신과 모빌리티, 미디어 등 전문성을 인정받아 그룹사 성장을 견인할 적임자로 판단돼 2021년 9월에 KT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종옥 공동대표의 재선임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자료=국민연기금운용본부 주주권 행사내역)
한편, ISS는 “윤 후보는 구현모 현 대표의 법적 우려가 제기됐을 때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며 “법적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이사를 해임하지 못한 것은 윤 후보가 이사로서 책임성, 이사회 감독 능력에 우려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구 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후원 혐의로 기소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KT가 75억원의 과징금을 부여받았다.
그럼에도 ISS는 “윤 후보를 이러한 우려로 인해 제외하면 회사뿐 아니라 주주가치를 손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을 받고 있지만, 경영 공백의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 선임에 찬성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ISS는 강충구·여은정·표현명 사외이사의 재선임 안건은 ‘반대’를 권고했다. 이들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이사를 제외하지 못했다”며 “지배구조와 위험 감독에 실패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