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필방 오마카세 메인공간 전경. 사진=김성준 기자
#. 1일 오후 5시30분. 이태원에 자리 잡은 교촌필방을 다시 찾았다. 거대한 붓을 당겨 숨겨진 문을 여는 재미는 여전했다. 저녁을 먹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장은 벌써 절반 가까이 차 있었다. 손님 중 상당수는 외국인들. 시끌벅적한 홀을 지나 감춰진 방으로 향했다. 비밀스러운 문을 열자 고요한 ‘치마카세’ 메인 공간이 드러난다.
교촌이 지난달 27일 프리미엄 매장 ‘교촌필방’에서 운영하는 오마카세, 이른바 ‘치마카세’를 다시 선보였습니다. 사실 치마카세는 지난 6월 교촌필방 오픈과 함께 교촌이 야심차게 내놨던 코스 요리인데요. 초기엔 예약이 순식간에 찰만큼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흡한 부분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고 지난 7월 말 돌연 운영을 중단했었죠. 그렇게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던 치마카세가 3개월간 칼을 갈고 돌아왔습니다. 새로워진 치마카세는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요?
치마카세 메인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입구 맞은편에 있는 ‘수공간’이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벽면을 따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차분한 기분이 들더군요.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교촌필방의 기본 콘셉트인 ‘먹’을 활용해 어둡고 고요한 분위기를 피워내고 있습니다. 기존 7석이었던 자리도 6석으로 줄여 여유롭게 재배치하면서 소비자가 편안하게 음식에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맞이 3종(왼쪽)과 전채요리. 사진=김성준 기자
새로워진 치마카세는 토종닭과 육계 특수 부위를 활용한 8가지 코스 요리에 식사와 디저트를 포함한 10가지 요리로 구성됐습니다. 오마카세보다 코스 요리에 가깝다는 점은 여전했지만, 누구나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닭고기를 활용한 메뉴로 대중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개발이 늦더라도 공들여 제대로 된 메뉴를 선보이자는 마음가짐으로 소비자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는 것이 교촌의 설명입니다. 코스 요리 뒤에 식사가 추가된 것도 기존 치마카세가 양이 다소 적다는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네요.
처음 받은 메뉴는 ‘맞이 3종’입니다. ‘계선’은 촉촉하게 조리된 닭가슴살에 고소한 잣소스가 더해져 뻑뻑함 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맛본 ‘닭편육’은 다소 심심했던 계선의 맛과 달리 자극적인 ‘단짠’ 맛에 중간중간 씹히는 식감이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근위초무침’은 새콤하면서 고소한 소스에 채소의 아삭함과 근위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입맛을 자극했습니다. 이어서 나온 메뉴는 전채요리인 ‘새싹 삼 냉채 & 닭가슴살’입니다. 근위초무침에 이어 청귤소스의 상큼달큼한 맛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소스 맛이 강한 편이라 닭가슴살 맛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수비드 조리 특유의 식감이 냉채와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종닭 콩피&목살 숯불구이, 속을 채운 닭날개 튀김, 특수부위 닭불고기, 치킨버거. 사진=김성준 기자
본격적인 메인 메뉴는 ‘토종닭 콩피 & 목살 숯불구이’로 시작합니다. 큼지막한 닭다리를 중심으로 한 플레이팅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닭다리는 나이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목살은 짭짤한 맛에 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금과 가지 소스, 핫소스까지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다음 메뉴는 ‘속을 채운 닭날개 튀김’입니다. 토종닭 아랫날개에 뼈를 제거하고 새우살을 채워 튀겨낸 요리입니다. 교촌치킨의 상징인 허니소스를 붓으로 직접 발라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통통하게 튀겨진 날개를 크게 베어 물면 바삭한 튀김옷 식감에 이어 쫄깃한 날개 살, 이어서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다채롭게 다가옵니다.
세 번째 코스 요리는 ‘특수부위 닭불고기’입니다. 김치전을 닮은 모습에 떡갈비가 떠올랐지만, 예상과 달리 안창살, 등살, 넓적다리살 각각의 식감을 골고루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 안이 ‘쓰읍’ 할 정도로 매콤한 맛이 나지만 같이 나온 막걸리 식초로 버무린 겉절이를 곁들이면 매운맛을 중화시켜 줍니다. 막걸리 식초의 톡 튀는 시큼한 맛은 부추와 미나리 향이 잡아줬습니다. 마지막 코스 요리는 ‘치킨버거’입니다. 한식에 가까웠던 메뉴 구성에 낀 버거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연골이 오독오독 씹히며 자아내는 독특한 패티의 식감과 다채로운 맛을 내는 된장소스, 패티 밑에 깔린 볶은 톳이 더해져 이질감을 멀리 날려버렸습니다. 메뉴 개발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떡쌈’과 경쟁했다고 하는데 살아남은 이유가 수긍되는 맛입니다.
영양 솥밥 반상(왼쪽)과 크림브륄레 & 차. 사진=김성준 기자
코스 요리만으로도 슬슬 포만감이 느껴지던 차에 한상차림이 나왔습니다. 토종닭 넙적다리와 뿌리채소들, 표고버섯에 닭육수까지 넣은 영양 솥밥에 얼큰한 닭개장까지 더해진 ‘영양 솥밥 반상’입니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인 걸까요. 고기를 배부르게 먹어도 볶음밥 자리는 따로 있는 것처럼, 배가 불러도 솥밥은 술술 들어갔습니다. 다양한 재료의 향에 짭짤한 닭다리살이 어우러져 따로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같이 나온 닭개장이나 양념장, 김 등과 곁들이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솥밥은 부족할 수 있는 양을 채우기 위해 구성된 만큼 넉넉한 양으로 조리돼 리필도 가능합니다. 식사가 끝난 뒤 디저트로는 크림브륄레와 캐모마일 차가 준비됐습니다. 커스터드 크림 위에 뿌린 설탕을 토치로 바로 가열해 카라멜 향을 물씬 즐길 수 있습니다. 은은한 향의 캐모마일 차를 함께 곁들여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한번 시행착오를 거친 치마카세는 적어도 맛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요리들도 만족스러웠죠. 3개월간 꼼꼼히 ‘하자보수’를 진행한 만큼 완성도 면에선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충분해 보입니다. 변수는 가격입니다. 치마카세가 리뉴얼되면서 1인당 7만원으로 기존보다 가격이 더 올랐기 때문인데요. ‘치킨’을 생각한 소비자라면 기겁할 만한 금액입니다. 치마카세도 ‘치킨’이 갖는 이미지가 여전히 크다보니 앞선 운영 중단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이 되려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었죠.
교촌은 닭이라는 친숙한 재료를 특별하고 새로운 요리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역시 치킨 브랜드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치마카세를 통해 닭요리 저변을 넓혀 많은 사람이 닭을 새로운 코스 요리 재료로 더욱 다채롭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포부인데요. 마침 외식업계에서 개인적인 만족도를 중시하는 ‘가치소비’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소비자가 치마카세를 ‘파인다이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