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새벽 넥슨 사옥 일부 사무실에서 불이 켜졌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이와 함께 넥슨 주요 게임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가 연달아 공지사항을 게시했다. 그날 늦은 저녁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와 강원기 총괄 디렉터가 긴급하게 라이브 방송을 진행에 나섰다. 외주를 맡겨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남성 혐오 표현이 담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에 따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가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 홍보 영상 속 남성 혐오 표현 논란에 대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게임업계가 '남성 혐오'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게임 애니메이션 제작 외주 업체 뿌리 스튜디오 직원이 영상 속에 '남혐'을 의미하는 손모양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논란에 휩싸인 게임사 대부분은 해당 업체가 제작한 영상을 비공개로 처리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각 게임사들은 혐오표현 자체를 막겠다는 의도를 강조하고 나섰으나 일부 이용자들은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라는 반발 목소리를 내는 등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등은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한 게임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스튜디오 뿌리(이하 뿌리)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 홍보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지난 23일 넥슨이 해당 영상을 공개하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영상 속에 남성을 비하하는 손모양이 담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등 자사 주요 게임 애니메이션을 뿌리에 맡겼으나 이번 사태로 뿌리의 제작 영상 대부분을 비공개 처리하는 등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마스터 리마스터 버전 영상에서 남성 혐오 표현이 담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영상은 비공개 처리됐다. (자료=메이플스토리 공식 유튜브 갈무리)
넥슨 외에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이터널리턴'과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2'도 뿌리가 제작한 영상을 비공개로 처리했다.
영상 비공개 외에도 각 게임사는 게임 별로 공지사항을 통해 원인 파악 및 향후 대응 상황을 알리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메이플스토리' 김창섭 디렉터는 26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회사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검토 중"이며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경 대응 의지를 내비쳤다.
김 디렉터는 뿌리와 관련이 없는 영상까지도 들여다보면서 게임 전반의 인게임·마케팅 활동을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게임업계가 남성 혐오 표현 논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넥슨의 '클로저스'와 시프트업의 '데스티니 차일드'는 캐릭터 성우와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메갈리아' 커뮤니티를 이용한다는 의혹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에 성우 교체 및 캐릭터 원화 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앞서 올해 7월에는 모바일게임 '림버스 컴퍼니' 스토리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신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한국 남성에 대한 혐오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자 해고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마다 일부 이용자들은 지나친 사상검증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0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게임업계 사상검증 이슈'와 관련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이에 유 장관은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례에 대한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상담 및 법률자문 등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는 "어떻게 보면 유저들 간의 문제인데 과도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끊임없는 교육과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게임업계에서는 반복되는 '남성 혐오 표현' 대응과 관련해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검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나 이번에나 게임업계의 일련의 대응은 대부분 혐오 표현의 재확산을 막으려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들"이라며 "이미 대부분의 게임이 이용자 채팅을 규제하는 수준만 보더라도 성별과 무관하게 최대한 모든 혐오적인 표현을 지양하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