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방송된 JTBC ‘한블리-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트로트 가수 설운도 씨는 자신의 벤츠 차량을 아내가 운전하고 함께 탑승하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진=JTBC 영상 갈무리)
트로트 가수 설운도 씨가 최근 자신이 겪은 벤츠 승용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를 방송에서 밝혔다. 이로 인해 급발진 의심 사고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로 이도현(당시 12세) 군이 사망한 지 1주기가 됐지만, 여전히 제조사에게 유리한 법조항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재판부가 운전자의 기술 검증을 유심히 살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운전자들이나 제조사나 촉각을 세우고 있다.
■ 설운도·아내, 벤츠 ‘급발진 의심 사고’ 겪어…“브레이크 말을 안들어”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방송된 JTBC ‘한블리-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설운도 씨는 부인과 함께 자신의 차량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를 몰다가 ‘급발진 의심 사고’를 겪었다고 호소했다.
설운도 씨는 당시 사고에 대해 “이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집사람하고 저하고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긴박한 순간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지난 10월25일 오후 8시30분경 설운도와 그의 아들은 아내 이수진 씨가 운전하는 벤츠 차량을 타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인근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차량이 갑자기 굉음을 내며 골목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택시와 보행자를 들이박고 식당으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10명이었다.
설운도 씨 벤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급가속하며 택시를 들이박는 장면 (사진=한블리 영상 갈무리)
한블리에서 공개된 블랙박스 영상에선 좁은 골목길을 갑자기 고속 질주하며 택시를 들이받는 모습이 나왔다. 설운도 씨는 “브레이크, 브레이크”라고 외쳤고, 아내 이수진 씨는 “안 들어, 안 들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설운도 씨는 “사고 후 차 문이 안 열려 발로 차서 문을 열었고 골목 초입에 있던 사람들에게 갔다”며 “여자분이 누워있었고 상태가 안좋았다. 추돌한 택시 기사에게도 달려갔는데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를 당한 택시 운전 기사도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14년 전 자동차 관련 일을 했었다며 급발진을 의심했다. 그는 “서행으로 주행하고 있었는데 차가 급가속으로 날아왔다”며 “사고가 나자 급발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쇳소리가 들렸고, 그동안 접했던 차량의 소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내 이수진 씨는 “운전 경력이 38년인데 보통 때의 브레이크가 아니었다”며 “사고 당시 브레이크가 딱딱하고 안 듣는다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고 했다.
설운도 씨는 “브레이크가 딱딱하게 안 잡혔다는 건 완전히 결함이다”라고 강조했다.
■ 현행법, 제조사에 유리…법원, ‘볼보 S60 급발진 의심 사고’ 기술감정 심혈
하지만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우리나라 현행법상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 소비자가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로 증명해내기가 거의 ‘제로(0)’에 가깝다.
다만 지난해부터 법조계에선 기술검증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23일, 볼보 S60 T5 차량(2020년식) 운전자 전모씨와 가족 3명이 볼보자동차코리아와 이윤모 볼보차코리아 대표, 판매사 에이치모터스 황호진 대표를 상대로 낸 2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운전자 전씨 측의 기술감정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사고는 지난 2020년 10월 말에 발생한 사고였지만 2년 넘게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재판부는 볼보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블랙박스 영상뿐 아니라 블랙박스 음향 감정, 사고조사기록장치인 EDR의 신뢰성감정, 관련 장치들의 작동감정 등을 채택했다.
지난 2022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의 티볼리 차량 사고 모습 (사진=강릉소방서)
■ 티볼리 사고 ‘도현이법’, 국회 계류…하종선 변호사 “유리한 기술검증 결과 나와”
지난해 말 강릉에서 일어난 ‘티볼리 급발진 의혹 사고’도 재판부가 적극적인 감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티볼리를 운전하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60대 여성이 몰던 티볼리는 급가속 후 추락했고 함께 타고 있던 운전자의 손자 이도현(당시 12세)군이 숨졌다.
사고 후 도현 군의 아버지는 국민청원을 통해 국회에 소위 ‘도현이법’을 상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무위는 아직까지 해당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도현이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위는 급발진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완전히 전환하면 제조사에 부담이 크고 아직 입법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보와 티볼리 사고의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급발진 소송의 피고는 사실상 국과수인 셈”이라며 “국과수가 EDR과 브레이크 등을 맹신하고 운전자 과실로 결론내는 감정결과가 제조사에게 면죄부를 준다”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약자인 소비자 원고가 국가기관인 국과수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는 것이 매우 부당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도현이법이 올해안에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변호사는 “볼보와 티볼리 사고의 경우 음향분석과 EDR 신뢰성 감정이 끝나서 (원고인) 운전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와서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4명이 숨진 싼타페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1·2심에 이어 기각하지 않고 원고의 상고를 받아들여 본안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는 원고의 주장을 살펴볼 이유가 있다고 본 것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를 겪고 소송 중인 다른 운전자들도 주목할 만한 재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