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각사.
한미약품그룹이 OCI와의 갑작스런 합병 발표에 묘한 기류가 돌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미약품그룹 입장에서는 합병 시너지가 크다는 것이다. 창립이래 신약개발에 대한 집념을 보여온 한미약품그룹이 OCI홀딩스 자본력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혁신신약 개발에 한층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한미약품그룹 일가를 둘러싼 '가족분쟁' 조짐에 더해 OCI홀딩스의 경우 본업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부정적 요소도 상존하면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동시에 보내지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향후 한미약품그룹은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에 편입돼 제약바이오 사업을 주도하는 중간지주사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지주사 대표는 故 임성기 창업주의 장녀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이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과 함께 각자대표로 맡아 공동 경영 체제를 구축한다.
양 그룹의 통합 절차는 올해 6월 말 지분취득이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화되어, 내년 3월까지 새로운 사명 및 CI(기업이미지) 등 브랜드 통합 작업을 마칠 것으로 전해진다.
◆자금 확보로 '글로벌 헬스케어 선도 제약사' 꿈 성큼, 상속세 숙제도 해결
출처=금융감독원 및 키움증권.
이 같은 합병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신약개발과 신사업 확장이란 두 틀에선 양사 모두 시너지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한미그룹 입장에서는 OCI홀딩스 자금력으로 신약개발 투자에 힘을 받으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의 도약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 한미약품그룹은 R&D를 통한 신약개발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온 기업이다. 한미약품은 매년 1500~2000억원 가량을 R&D에 투자할만큼 국내 제약업계 중 많은 R&D 예산을 투입해왔다.
창업주 타개 후 지휘봉을 넘겨받은 한미약품 창업주 故 임성기 회장의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그룹의 목표를 '글로벌 헬스케어 선도 제약사'로 확대하겠단 야심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상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만 평균 10년이 넘고 R&D 투자비용은 평균 430억원인 반면, 성공확률은 약 0.001~0.0001%에 불과할정도로 낮다.
실제 국내 기업중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연매출 1조이상 판매되는 '블록버스터급' 혁신신약이 전무한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OCI홀딩스가 지난해 3분기 기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706억원, 2024년도 잉여현금흐름(FCF)도 5600억원으로 예상된다. 매년 1500~2000억원을 R&D 개발에 투자했던 한미약품에게 든든한 '돈줄'이 되어줄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출처=키움증권.
더욱이 이번 지분 교환은 한미약품그룹 일가에게 남겨진 상속세 해결에도 단비가 된다. 송 회장을 비롯한 3남매는 3년여 전 창업주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7%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가 발생했다. 가족들은 5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기로 하고, 주식을 담보로 한 막대한 대출을 받아왔다. 그러나 임 회장 사망직후 주가가 상승, 2021년 1월8일 3년간 최고가인 9만4767원까지 찍었다가 현재 반토막이 난 상태다.
이 때문에 우호적 관계로 알려진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지분 매각 계열을 맺었으나 출자에 문제가 생기면서 거래 시점이 미뤄진 실정이었다. 하지만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확보로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송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주식 114만1495주(11%)를, 장녀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주식 563만4810주를 OCI홀딩스에 현물출자한다.
이를 통해 송 회장은 OCI홀딩스 주식 38만6017주(1.7%)를, 임주현 사장은 190만5515주(8.6%) 등 총 10.4%를 부여받는다. 즉 송회장과 임사장의 보유 한미사이언스 주식 일부를 OCI 홀딩스에 현물출자하고 OCI홀딩스는 두 사람을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2528억원)한 신주를 부여한다. 현물출자가액과 신주 발행 금액간 차이는 단주에 따른 것으로 OCI홀딩스가 현금 지급 예정이다.
또 송회장과 손회장 손자 2인의 보유 주식을 OCI홀딩스에 양도하고, 한미사이언스는 OCI홀딩스를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3인의 구주 매출을 통한 현금 취득은 약 2775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휴~' 쉽지 않았던 바이오사업, 한미약품 업고 길목 텃다?
출처=금융감독원 부광약품 3분기 분기 보고서.
화학·에너지 전문기업인 OCI홀딩스 입장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장사다. 최근 5~6년 전부터 제2의 그룹 먹거리로 바이오를 낙점한 OCI홀딩스가 노하우를 보유한 한미약품그룹을 통해 '한국형 바이엘'을 이룰 발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지난 2018년 국내 비상장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시너지 헬스케어 펀드에 투자를 하면서 바이오시장에 눈독을 들여왔다.
이 회장은 2010년대 중국의 폴리실리콘 폭증에 따른 업황 변화를 어느 회사보다 크게 겪으면서 신사업에 대한 니즈를 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에도 국내 제약·바이오 벤처기업에 약 100억원을 투자했고, 해외 유망 제약·바이오벤처기업 투자를 목적으로 미국에 종속회사 OCI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고 마침내 2022년 2월 부광약품을 인수하면서 직접적인 경영참여 발판을 마련한다.
문제는 OCI가 지분을 인수한 이후 부광약품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점이다. 인수 첫해 연결기준 2억원으로 적자전환한 부광약품은 지난해 3분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보다 털썩 내려앉았다. 특히 이 기간 영업손실은 218억원으로 2022년 3분기보다 5배 이상 확대됐다. 관련업계는 이 회장의 제약 전문성 한계를 배경으로 꼽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05년 동양제철화학(현 OCI)에 전략기획본부 전무로 입사한 후 주로 에너지·화학 사업을 이끈 주인공이다. 전문성이 에너지, 화학에 머물러 연구·개발(R&D) 중심 기업인 부광약품을 성장으로 이끌기엔 역부족했다는 평가가 나돌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국내 손꼽히는 R&D 전문기업 한미약품그룹의 공동경영을 확정하면서, 부광약품의 반전 모멘텀을 만들었단 시선이 지배적이다.
◆합병 향한 싸늘한 시선 둘…'형제의 난'&'물들어 올때 노를 저어라'
다만, 크고 작은 부정적 시각도 있다. 우선, 한미약품그룹 장차남 형제가 이번 딜에서 소외됐다며 모녀와 형제간 '가족분쟁' 씨앗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 크게 거론된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자 코리그룹 회장은 이번 통합작업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며 반대 입장을 내비추는 중이다. 임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하지 않아 관련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계약서도 받지 못해 필요할 경우 법적대응에 나서겠단 입장이다.
실제 이번 협상은 이 회장과 임주현 사장 및 송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이 지주사체제로 전환되면서 아버지인 임성기 회장과 함께 지주사 공동대표를 맡았던 '2세 승계'의 주인공이었으나, 2022년 3월 송 회장에게 대표직을 넘기면서 그룹 경영에서 멀어진 상태다.
현재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디엑스앤브이엑스(Dx&Vx) 최대주주이자 2007년 홍콩에 설립한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차남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역시 공식 입장은 없었지만, 장남과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형제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합은 20.47%로, 모녀의 지분 21.86%에 못미친다.
단기적으론 OCI 그룹 역량이 분산될 가능성도 우려 요소다. 현재 폴리실리콘 시장은 갑싼 중국이 거의 배제되면서 미국 프리미엄 시장이 생긴데다, OCI가 미국향 폴리실리콘시장을 형성하면서 긍정적인 영업환경이 마련된 상황이다. 그러나 합병으로 인해 그룹 역량을 포트폴리오 재편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익성 확대 등 본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사업간 합병에 따른 OCI홀딩스의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제기된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화학과 제약바이 산업은 R&D, 기술력, 운용 능력뿐 아니라 업계 네트워크, 이를 가능케 하는 장기간의 업력이 요구된다"며 "과거 국내 화학산업 내에서의 확장 케이스에서도 간혹 실패한 사례들이 있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