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대형 건설사가 건설경기 침체로 눈높이를 낮추고 몸사리기에 들어갔다. 이에 재건축·재개발 시공권 확보를 위한 수주전도 실종된 모양새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조합이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감한 결과 응찰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어 유찰됐다.
조합은 이달 중으로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재공고에 나선다. 조합 관계자는 "오늘 이사회를 열고 구체적인 향후 일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락삼익맨숀 재건축은 송파구 송파동 166번지 일대 구역면적 5만871㎡에 지하 3층~지상 30층 아파트, 16개동, 1531가구와 부대복리시설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3.3㎡(평)당 공사비는 810만원 수준이며 전체 공사예정금액은 약 6340억원이다.
해당 사업지는 앞서 현장설명회에 유력 입찰 후보로 거론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을 비롯해 ▲GS건설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동부건설 ▲효성중공업 등 총 8개 건설사가 참석했으나 무응찰로 마무리됐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 1구역 재개발 조합도 같은 날 시공사 선정을 마감했으나 포스코이앤씨의 단독 입찰로 유찰됐다.
해당 사업지는 공동주택 2992세대, 지하 4층~지상 33층, 28개 동을 짓는 사업으로 총공사비는 1조900억원 가량이다. 당초 GS건설과 삼성물산 등이 관심을 보였으나 지난해 11월 건설사들의 무응찰로 한차례 유찰됐다. 노량진 뉴타운 중에서 가장 알짜 사업지로 불리지만 3.3㎡당 공사비가730만원에 불과해 건설사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던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에서 900만원이 넘는 3.3㎡당 공사비를 제시하고도 유찰이 되는 사례도 나왔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신반포27차 조합은 3.3㎡당 907만원대의 재건축 공사비를 제시했으나 지난달 22일 시공사 입찰 마감 결과 응찰한 건설사가 없었다.
공사비를 인상했으나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서울 중구 신당9구역 재개발 조합은 3.3㎡당 공사비를 742만원에서 840만원으로 인상했으나 시공사 선정이 세차례 유찰됐다.
주택사업에서 알짜로 통하는 도시정비사업이 이처럼 시공사 선정 난항을 겪는 배경으로는 공사비 인플레이션과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 등이 꼽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5일 '건설경기 변화에 따른 주요 건설자재 수요 동향 및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3년 동안 건설시장에서 건설공사비가 역대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공사비 지수는 2020년 11월 120.2에서 2023년 11월에는 27.6% 상승한 153.4를 기록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동성 증가와 환율 급등을 비롯해 러우전쟁, 자원 외교주의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공사비가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공사비는 크게 올랐으나 주택사업경기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
주택산업연구원이 한국주택협회 및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월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지난달에 비해 2.7p 하락한 64.0로 나타났다.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업체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100을 밑돌면 그 반대라는 것을 각각 의미한다.
주산연 측은 "정부의 1.10 대책에 대한 기대감은 있으나 고금리 등에 따른 시장 위축으로 사업자들이 체감하는 시장 경기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전국자재수급지수와 자금조달지수는 81.6, 58.4를 나타냈다. 각각 전월대비 6.4p, 7.7p 하락한 수치다. 특히 자금조달지수는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유동성 문제 및 고금리로 악화된 자금시장의 여건이 지속 되는 가운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 불안 요인이 커지는 등 자금시장의 불안정성에 따른 위기감이 악화된 것이라는 게 주산연의 설명이다.
상장 대형건설사 다섯 곳의 2024년 수주 목표액. (자료=각 사, 그래픽=뷰어스)
대형 건설사들도 위기를 감지하고 잇따라 연초 수주 목표를 낮게 잡았다. 국내 주요 상장 대형건설사 다섯 곳(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DL이앤씨·GS건설) 중 전년도 수주액 대비 수주 목표를 높게 잡은 건설사는 GS건설 뿐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도 공사비이지만 자금조달과 미분양 우려가 있어 수주 목표를 높게 잡기 힘들 것"이라면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환경으로 수요자 입장에서나 공급자 입장에서나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