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롯데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신세계그룹 CI. 사진=각사.
마지막으로 남았던 CJ그룹 인사가 해를 넘겨 단행되면서 유통 4대 그룹 인사가 마무리됐다. 다만, CJ의 선택은 '안정'이었다. 유통 3사가 주요 계열사 대표들을 교체한 것과 달리 소규모 승진 인사로만 결론지었다. 유통업계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2024년 경영환경이 '위기'인 가운데 CJ는 '초유의 위기'란 점이 가른 결과로 평가된다.
16일 CJ그룹에 따르면 그룹은 지난해의 실적 부진 상황을 반영해 임원인사를 소규모로 단행했다. CJ제일제당·CJ대한통운 등 주요 계열사 CEO를 교체하고 임원(경영리더) 총 19명을 승진시켰다. CJ그룹이 지난 2년 동안 대표이사급 인사 폭이 적었던 만큼 대규모 이동이 있을 것이란 관측에서 완벽히 벗어난 것이다.
CJ 관계자는 "'실적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기본 원칙 아래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이뤄진 인사"라며 "어려운 경영 상황 속에서도 미래 성장을 고려해 2020년(19명) 이후 최소폭의 임원 승진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필벌(必罰)은 없었다…'영리더'에겐 후한 '신상(信賞)'만
고심 끝에 내놓은 CJ의 결정은 계열사 대표의 유임이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신년사와 공식석상에서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을 숨기지 않았을 만큼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지자, 변화보단 성과에 상관없는 '검증된 베테랑'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구관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기초체력 회복에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룹 내부적으로는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등 2곳의 핵심 계열사 대표가 교체된 것이기 때문에 큰폭의 변화란 설명이다. CJ는 CJ제일제당 신임 대표이사에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를 내정했고, CJ대한통운 신임 대표이사에는 신영수 CJ대한통운 한국사업부문 대표가 취임한다.
그러나 신 대표는 CJ대한통운 내에서의 승진이고, 강 대표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3년 전 자리로의 복귀이기에 사실상 '승진인사'에 가깝다. 따라서 CJ그룹의 이번 인사는 '인적 쇄신'보단 '강한 조직력'에 촛점을 둔 것으로 읽힌다. 앞서 CJ그룹이 지난해 하반기 차례로 단행한 조직개편이 같은 맥락이다. 그룹은 지난해 7월 전략기획그룹 직책을 없앤데 이어 전략기획과 사업관리그룹을 통합 재편했다.
구체적으로는 사업관리그룹 산하인 재무전략실, 관리 1·2실을 모두 대표 직속 조직으로 편제하고 기존 재무운영실과 사업관리그룹 산하에 있던 재무전략실을 통합하면서 재무 조직도 단일화했다. 올해는 새롭게 구축한 중기전략 실행 원년으로 CJ그룹에 있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해인 만큼, 분산됐던 조직을 통합하고 집중력을 높여 지주사 본연의 기능을 강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급들은 '필벌'에서 배제했으나 젊은 인재들에겐 후한 '신상'이 내려졌다. CJ는 이번 인사에서도 '하고잡이' 젊은 인재들을 리더로 과감하게 발탁했다. CJ그룹의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신임 경영리더에는 19명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이재현 회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성과를 격려한 CJ대한통운과 CJ올리브영에서 각각 6명, 4명이 나왔다. 1980년대생 6명, 1990년생 1명을 포함해, 나이나 연차에 관계없이 성과만 있다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CJ그룹의 철학을 반영했다.
◆세대교체 태풍 불었던 롯데·신세계·현대百
CJ의 이 같은 결정은 유통 빅3과 다른 결단으로 더욱 눈에 띈다.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CJ는 구세대 경영진의 한계보단 '필요성'에 촛점을 두고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겠단 의지로 해석된다. 실제 앞서 롯데는 젊은 인력을 대거 전면배치하고 순혈주의를 대폭 깬 가운데 신세계와 현대백도 대표급을 대거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소비가 줄면서 유통업계가 경영 위기에 봉착했단 이유에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통시장내 극심한 불황이 우려되면서, 유통 빅3는 능력 위주의 젊은 인재를 경영 전면에 집중 배치, 변화와 혁신으로 불황 탈출에 나서는 행보를 보였다. 구세대 경영진의 한계에 대한 주장이 그룹 안팎에서 강하게 분출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롯데는 2024년 임원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 14명을 교체했다. 또 롯데 화학군(HQ) 총괄대표 김교현 부회장과 고(故) 신격호 창업주와 신동빈 회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 등 60대 롯데 계열사 대표이사 8명이 퇴진하면서 '올드보이'들이 대거 물러났다. 아울러 젊은 리더십을 전진 배치하고 6명의 대표이사급 임원을 외부전문가로 채우면서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인사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신세계그룹은 지난 9월 대표이사 약 40%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으며 현대백화점그룹은 인사 폭은 지난해에 비해 축소됐지만 대표이사를 3명이나 교체했다.
◆CJ 승계시계 '잠시 멈춤', 위기탈출이 '우선'
더욱이 CJ의 이번 인사 속 여타 유통그룹과 대조된 행보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의 승진 인사도 제외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통기업들이 유독 3·4세들을 경영전면에 내세워 '화려한 데뷔전'을 치루자, 재계는 이선호 경영리더를 줄곧 승진자 명단에 올려왔다. 1990년생인 이선호 경영리더로의 경영권 이동은 '예정된 미래'로, CJ가 수년에 걸쳐 승계 작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이선호 경영리더가 경영에서 1년여만이 제외됐을 뿐, 2021년 1월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담당 부장으로 복귀한지 1년만인 그해 말 임원으로 고속승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통상 총수 일가의 승계시기에 따라 젊은 경영진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데, CJ 현상황에선 '세대교체'에 대한 템포를 늦춘 결과로 관측된다.
반면,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는 지난해 초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부각하더니 연말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동시에 롯데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그룹 미래 먹거리 사업을 진두지휘토록 했다. 신 전무는 1986년생으로, 2020년 5월 일본 롯데 부장으로 첫 입사 후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1년 만에 전무로 올라섰다.
1989년생인 한화그룹 오너 3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 본부장도 지난해 전무에서 승진, 상무에서 단 2년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현재 한화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된 로봇·푸드테크 신사업을 맡아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다. 이외에도 1983년생인 김윤 삼양그룹 회장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는 지주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선임됐고,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는 10월 그룹 인사를 통해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