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금융감독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은행권의 금리 인상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25일 KBS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의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며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권에선 지난달 시장금리 하락 상황 속에서도 당국의 가계부채 증가 우려에 따라 자체적으로 금리 인상 움직임이 일었다. 이 같은 움직임에 3%대까지 떨어졌던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은 현재 4% 위로 올라섰다. 이는 당국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에 따른 결과로 풀이됐다.
은행 입장에선 대출 수요가 증가한 상황에서 당국에서 대출을 늘리지 말 것을 주문하니 금리인상으로 대응한 것인데 금감원장이 뒤늦게 금리인상이 잘못됐다고 한 것. 은행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주담대 증가세는 4월부터 시작됐는데 7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DSR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대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4~6월 실수요자들이 몰린 영향이 컸다”며 “그런데 정부가 스트레스 DSR 시행을 갑자기 두 달 늦추면서 대출 수요가 8월까지 연장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DSR 시행을 두 달 늦추지 않았다면 7월부터 주담대 증가세가 자연스럽게 진정됐을 텐데 당국이 부동산 PF 연착륙을 이유로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전격 연기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원인 제공은 당국이 했는데 책임은 은행에 묻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최근 은행권 주담대 증가세는 수도권 아파트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 영향이 컸다. 2022년 하반기부터 고금리 추세가 지속되고 부동산 PF 문제까지 불거지자 아파트 실수요자들은 지난해 시장을 관망하며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해 왔다.
지난 5월부터 금융채 등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7월부터 스트레스 DSR 시행으로 대출 한도도 축소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4~6월 가계대출 신청이 17조원 급증했다. 7~8월에도 13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장의 이런 흐름에 이복현 원장은 “금융당국이 바란 부분은 미리 미리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라면서 금리 인상이 아닌, DSR로 은행이 자발적인 총량 규제를 해주기를 바랐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은행들이 '예대금리차'를 노리고 당국의 가계대출 축소 요청을 손쉬운 금리인상으로만 대응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은행들 간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대출 총량을 정하는 것은 경쟁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전 정부에서 총량 규제를 실시했을 때 부작용도 컸다”고 항변했다.
한편, 이날 우리은행은 다음달 2일부터 주담대 총량관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이고 대출 모집법인 한도도 월 2000억원 안팎으로 묶겠다는 것. 갭투자 방식의 전세대출 취급을 제한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전날 방송에서 이복현 원장은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 “현 경영진이 보고받고도 조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법상 권한을 최대한 가동해 제재하겠다”는 방침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