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IBK기업은행
IBK기업은행은 여러모로 독특한 회사입니다. 우선, 대한민국 정부가 대주주입니다. 기획재정부가 59.5%의 지분을 갖고 있죠. 망할 염려가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상장 국책은행이기도 합니다. 1961년 설립돼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했고, 1994년 코스닥에서 처음 기업공개가 이뤄졌습니다. 2003년에는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죠.
공공기관이지만 수익성도 좋습니다. 최근 3년 연속 2조6000억원 이상의 연간 순이익을 거뒀습니다. 안정적인 이익을 바탕으로 은행업계 최고 수준의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국내 대표적인 배당주입니다.
실제로 기업은행 주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투자자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투자성향은 매우 보수적인데 은행 이자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주식이라고 입소문이 났습니다. 특히 올해 비교적 단기간에 큰 수익을 거둬 예년에 비해 재미가 더 쏠쏠하다고 합니다.
고배당주인 기업은행의 결산 배당금 기준일은 올해 3월 31일이었습니다. 당시 기업은행 주식을 산 투자자는 현재 얼마의 이익을 거뒀을까요.
배당락 직전 5거래일의 평균 주가는 대략 1만5700원입니다. 기업은행이 공시한 결산 배당금은 1주당 1065원이었습니다. 배당락일인 3월28일 종가는 1만4540원. 떨어진 주가(1160원)가 배당금보다 더 커서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배당락 이후 차츰 주가가 회복돼야 정상이지만 미국발 관세 이슈로 주가가 추가로 더 떨어져 버렸습니다. 4월 9일에는 연중 최저인 1만36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1000원 배당금 받으려고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2000원 곤두박질쳐 손실이 난 것이죠.
여기까지만 보면 ‘새드 엔딩’이지만 이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4월초 바닥을 찍은 후 꾸준히 주가가 상승해 대통령선거일 다음날인 6월 4일에는 매수가(1만5700원)를 회복합니다. 약 두 달만에 배당금이 온전히 수익금으로 잡히게 된 것이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급등세가 이어져 지난 16일에는 1만7000원을 돌파했습니다. 24일 종가(1만8060원) 기준 주가 상승률은 15.0%에 달합니다.
3월말 기업은행 주식 1000주(1570만원)를 사서 24일 매각한 투자자라면 배당금 90만원(배당소득세 15.4% 반영)과 주가 상승 차익 236만원(세전)을 합해 총 326만원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약 3개월의 투자 기간 동안 20.8%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셈입니다. 은퇴자가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면 3200만원의 수입으로 노후생활에 상당한 보탬이 됐을 것 같습니다.
기업은행 최근 3개월 주가 추이(자료=KRX)
사실 대선 다음날 4대 금융지주 주가가 날아오를 때 기업은행 주식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KB금융 7.9%, 신한지주 7.4%, 하나금융지주 6.4%, 우리금융지주 7.5% 등 6~7%대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동안 2.4%(370원)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4대 금융지주가 새 정부의 주주환원 강화 수혜주로 분류된 반면, 기업은행은 ‘빚 탕감’ 등 취약계층 지원책으로 국책은행 특성상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강한 반등이 나타나며 연중 최고가를 기록합니다. 새 정부가 배당 촉진을 위한 세제개편 방침을 천명하면서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뒤늦게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배당성향 35% 이상 상장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소득의 경우 별도의 세율로 분리 과세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배당소득세는 14%(지방소득세 포함시 15.4%)로 크게 높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합한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에 합산돼 세율이 최대 49.5%까지 올라갑니다. 상장회사의 지배주주 대부분은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배당을 기피하는 이유입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국가별 배당성향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20%대로 세계 꼴찌 수준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30%대)보다도 낮습니다. 반면, 홍콩과 싱가포르는 배당세가 아예 없고, 미국은 배당소득에 대해 15% 분리과세를 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도입한다면 어떤 주식을 사야 할까요. 금융 분야만 놓고 본다면 지난해 결산 기준 배당성향 35% 이상인 상장 금융사는 기업은행(35%), 카카오뱅크(39%), 삼성카드(45%) 뿐입니다. 대형은행 중에서는 기업은행이 유일합니다. 상생금융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은행 주가가 단기 급등한 배경입니다.
기업은행의 배당성향은 꾸준히 상승해 왔습니다. 2020년까지 20%대를 기록하다 2021년(30.7%) 처음으로 30%를 넘겼고, 지난해에는 35%를 찍었습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보통주자본(CET1)비율에 따라 배당성향을 점진적으로 40%까지 올리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아울러 배당락 완화 효과가 있는 ‘분기배당 도입’을 위해 올해 정관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배당소득 분리과세 개정안의 수혜주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 시선은 4대 금융지주 쪽으로 옮아갑니다.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서 4대 금융지주는 배당성향을 높이기보다 총주주환원율을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작년말 기준 KB금융 23.6%, 신한지주 24.5%, 하나금융 27.2%, 우리금융 28.9%로, 대부분 20%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주환원율은 배당금에 자사주 매입 비용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해 4대 금융지주 모두 35% 이상을 기록 중입니다.
4대 금융지주가 배당성향보다 주주환원율에 초점을 맞춘 것은 ‘국부유출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KB금융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78.2%로, 80%에 육박합니다. 신한지주와 하나금융도 각각 59.0%, 67.8%로 높은 비율을 보입니다. 민영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 우리금융(46.8%)만 50% 미만을 기록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배당으로만 주주환원에 나설 경우 국부 유출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내국인에게 이자장사로 번 돈을 전부 외국인에게 갖다 바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죠.
만약 이소영 의원 법안대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기준이 배당성향(35%)이 될 경우 은행주 중에서는 기업은행 주주들만 혜택을 보게 됩니다. 국책은행 특성상 자사주 매입·소각이 쉽지 않은 점이 그동안 기업은행의 약점으로 시장에선 평가돼 왔는데 일대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죠. 반면, 4대 금융지주 주주들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산 주식이 배당성향 기준에 미달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기분 좋은 이가 누가 있을까요. 경영진은 기존 밸류업 프로그램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상법 개정 못지않게 세법 개정에도 시장의 관심이 지대한 이유입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지긋지긋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끝내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가능성은 매우 커 보입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서민들도 우량주를 사서 중간배당을 받아 생활비로 쓰는 시대가 진짜 오는 걸까요. 4대 금융지주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변화를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