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성수동에서 월드코인 프로젝트를 위한 툴을 개발하는 기술 기업 ‘툴스 포 휴머니티(Tools for Humanity, 이하 TFH)’는 CEO 겸 공동창업자 알렉스 블라니아(Alex Blania)의 국내 첫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질문) "당신들은 세계 정부를 구상하고 있습니까?"
(답변) "AI가 불러오는 변화는 글로벌한 문제입니다. 모든 국가와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겁니다. 한국이나 독일, 싱가포르처럼 인프라가 좋은 국가도 있지만, 여전히 부진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 시나리오는 신원 인증 관련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 각 정부의 역량의 차이와 무관하게 공정한 AI 환경을 마련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3일 서울 성수동에서 '더 공정한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모토로 설립된 '툴스 포 휴머니티(TFH)'의 국내 최초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CEO인 알렉스 블라니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본소득 개념으로 월드코인을 뿌리고, 전세계인의 홍채 정보를 기록하는 이유가 '세계 정부'로 나아가는 구상 아니냐고.
대답은 'No'에 가까웠다. 알렉스 블라니아는 "TFH나 월드코인은 각 정부의 대체재가 아니라 상호보완재"라고 선을 그었다.
과연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는 그 말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한번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
미래에 당신에게 '기본소득'을 줄 주체는 누구인가? 국가인가, 지방 정부인가, 아니면 AI 개발사인가?
솔직히, 그게 누구든 상관 없지 않은가.
◇ 당신은 인간입니까
기본소득을 주는 주체가 그 누구이든, 당신에게 단 한가지의 질문만을 던질 것이다.
"당신은 인간(국민)입니까?"
월드코인의 구상에 따르면, 인간이기만 하다면 소득이 제공된다. 정부 차원에서 이야기 한다면, 국민이면 기본 소득은 보장될 것이다.
샘 올트먼은 인간과 AI를 구분하고 AI로 인한 일자리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보편적 기본 소득(UBI)'을 월드코인의 내러티브로 삼았다. AI에게 일을 빼앗긴 사람에게, 코인으로 보상한다는 아이디어다.
월드코인 측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월드 ID'라는 디지털 신분증을 발급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일정 금액의 가상화폐인 '월드코인'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기본 소득'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월드코인 측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전 세계 160개국, 600만 명 가량이 월드ID를 등록했다. 월드코인 가격은 3일 현재 2010원으로, 1년 사이 48.84% 상승했다. 1개월 사이에는 17.45% 하락했다.
◇ 샘 올트먼의 '보편소득'
"일자리 없는 시대에 AI로 번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기본소득을 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샘 올트먼도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ChatGPT의 세계를 창조하고서는, 그 세계가 인류를 무너뜨릴까봐 걱정한 셈이다.
"월드코인이 우리를 AI로부터 구하고자 합니다" / 자료=월드코인 앱
AI라는 기술은 이미, 정부의 역할, 국가 간 경계, 금융의 미래를 재편하고 있다. 다만, 구조조정을 하는 '보이지 않은 손'이 누구인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AI에게 인간이 상당수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측에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듯 하다. 이견이 갈리는 지점은 단순 노동을 빼앗긴 인간이 더 나은 직업을 발굴해낼지, 아니면 AI 그 이하로 전락할지 여부다.
샘 올트먼은 적극적으로 그 답을 찾아나섰다. 세계를 대상으로 '실험'에 돌입한 것. 사비로 수백억원을 털어넣을 수 있는 초특급 부자의 '기본소득' 실험이다. 지난달 3년 간의 실험이 마무리되고 지난 8월 그 결과가 공개됐다.
실험은 미국 텍사스와 일리노이주의 도시, 교외, 농촌 지역에서 소득 2만8000달러 이하 저소득층 3000명을 모집해 대상으로 했다. 총 6000만 달러가 투자된 이번 실험에서 샘 올트먼은 사비로 1400만 달러를 썼다. 지방정부와 특별 협약을 맺고 세금 이슈도 해결했다.
참가자 가운데 1/3은 실험군으로 3년 동안 매월 1000달러를 받았고, 나머지 대조군은 매월 50달러를 수령했다. 기존에 제공되던 복지 혜택은 그대로 유지됐다.
실험 결과 1000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월평균 310달러를 추가 지출했다. 저축도 대조군에 비해 25% 가까이 많았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실험군이 타인을 돕는 데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사실이다.
역시 문제는 실업률. 실험 2~3년 차에 실험군의 실업률이 대조군에 비해 올라갔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나태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긍정 회로를 돌렸다. 기본소득이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직업을 찾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유(실업)를 제공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해석은 영향력 있는 주체들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 1월 기업의 AI 도입은 생산성 개선을 넘어 인간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며, 생성형 AI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AI가 '지식의 민주화'를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란 전망인 것이다.
◇ 국민이 정부를 선택한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핵심 공약도 '기본소득'이다. 대선 후보 시절엔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100만원 지급을 주장했고, 더 나아가 전 국민 누구에게나 1000만원씩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준다는 ‘기본금융’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보편적 기본사회는 미리 준비하면 기회가 되지만 방치하다 끌려가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생산하는 만큼 소비하지 못하면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없으며, 극단적 양극화로 초부자와 대다수의 빈자로 나뉘어 사회가 분열될 것이라는 우려다.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 등 보편적 현금지원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전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 또한 '이재명법'이라며 막아 세웠다.
정부의 논리도 일견 타당하다. 돈을 뿌리면 건전 재정 기조가 무너지고, 물가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수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통하는 논리다.
그렇다면 '샘 올트먼식 기본소득'은 어떨까. 정부가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막아야 할까.
바야흐로 AI 기업과 정부가 비전 대결을 하는 시대가 왔다. 인간(국민)들이 어떤 정부를 선호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