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역전로 '2024 구미 라면 축제' 행사장 전경. (사진=김성준 기자)
#. 구미시를 가로지르는 구미중앙로를 따라 걷는 길. 과거 구미시 중심가였지만 곳곳에 공실이 된 상가와 유리창에 붙은 ‘임대’ 문구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구미역 앞에 도착하니 역 앞으로 쭉 뻗은 역전로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양쪽에 ‘신라면’과 ‘신라면 툼바’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대문을 지나면, 역전로를 따라 농심 팝업 부스 뒤로 온갖 천막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랗게 늘어서 있다. 다양하게 라면을 즐기는 사람들로 분주한 거리에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1일 오후 구미시 구미역 앞 역전로 ‘2024 구미 라면 축제’ 행사장은 궂은 날씨로 방문객이 적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인파로 붐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에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라면을 든 방문객들이 행사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는 방송인 ‘조나단’과 ‘파트리샤’가 참여한 ‘스타팝업’ 행사를 구경하는 관람객도 가득 찼다. 라면을 판매하는 부스 앞마다 라면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고, 천막 아래 마련된 식탁에서는 방문객들이 각양각색 ‘라면 요리’를 맛봤다. 인파가 몰리다 보니 경찰관 등 이동로를 통제하는 안전요원들이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구미 라면 축제’는 올해로 3년차 맞았다. 지난 2022년부터 농심과 구미시가 손잡고 기획한 지역축제로, 올해는 ‘세상에서 가장 긴 라면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로 역전로 475m에 달하는 도로를 ‘라면거리’로 조성했다. 지난 두 차례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8개월에 걸친 치열한 준비를 거쳤다. 2명의 ‘푸드 디렉터’ 등 외부 전문인력을 초빙한 기획단을 꾸리고, 라면 부스를 운영할 상인들에게 위생 교육을 진행하는 등 축제 바로 전날까지 점검을 이어갔다.
윤성진 구미라면축제 총괄기획단장은 “‘무슨 라면 축제를 8개월이나 준비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축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메뉴 개발에서부터 공을 들여 상인들이 ‘라면 맛집 셰프’가 된다는 느낌으로 자부심을 갖고 라면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 핵심축 구미 공장, 지역 활성화 팔 걷는다
'구미 라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방문객들. (사진=김성준 기자)
농심과 구미시의 인연은 지난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심은 1990년 구미시 산업단지 내에 ‘구미공장’을 설립한 이래 35년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대기업 다수가 사업장을 운영하는 구미시 내에서도 식품회사로서 매출액 10위를 차지할 만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현재 645명의 근무자가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누적 근무자는 65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농심 구미공장에서 발생한 매출은 약 7700억원으로, 지역 경제 효과는 연간 4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농심은 구미공장에 꾸준한 설비 투자를 진행하며 생산 효율화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구미공장 일 생산능력은 665만식으로, 이는 대구·경북 주민 550만명이 라면 하나씩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반면 구미시는 최근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구미시를 떠나는 추세가 이어지며 인구 40만명 선이 위협받고 있다. 구도심이 쇠퇴하고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농심이 구미공장 생산량을 늘리며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효과는 커졌지만, 구미시는 단순한 경제 효과를 넘어선 ‘무언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구미시가 주목한 것은 ‘대표 K푸드’로 떠오른 라면이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은 신미정 구미시 낭만관광과장이었다. 농심 국내 최대 라면 생산공장이 구미시에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라면 축제’를 통해 구도심 인근 상권을 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라면 축제’가 식상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신 과장은 농심 구미공장에서 나온 ‘갓 튀긴 라면’을 활용한다면 충분한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농심도 축제 관련 콘텐츠에 라면을 지원하고, 신라면 등 주요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등 손을 거들었다.
■‘갓 튀긴 라면’ 뜨거운 관심…구미를 ‘라면 성지’로
'갓 튀긴 농심 라면 판매소'에서 라면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방문객들. (사진=김성준 기자)
시범 성격이 짙었던 1회차 축제에 이어, 지난해 2회차 축제부터는 ‘구미 라면 축제’로 이름을 바꿔 달며 대성황을 이뤘다. 구미시가 KT와 함께 집계한 방문자만 9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구미시는 휴대전화가 없는 어린이까지 포함하면 방문 인원이 10만명을 넘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고무적인 점은 이 중 36%에 달하는 인원이 외지에서 방문했다는 점이다. 축제 기간 중 구미시 소비금액은 전후 일주일 대비 17% 상승했을 정도로 경제 효과도 컸다.
특히 ‘갓 튀긴 라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이날 ‘갓 튀긴 농심라면 판매소’ 앞에는 라면을 구매하려는 방문객들의 줄이 계속 늘어져 있었다. 축제 현장에서도 방문객들이 한 보따리씩 라면을 사들고 가는 모습이 꾸준히 눈에 띄었다. ‘갓 튀긴 라면’을 활용한 다양한 ‘라면 요리’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8개 ‘구미 라면 레스토랑’ 메뉴를 소개하는 현수막 앞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울산에서 친구들과 축제를 찾은 30대 A씨는 “김밥 축제가 인기를 끈 것을 보고 비슷한 축제가 없나 찾아보다가 라면을 주제로 한 축제가 있다고 해서 방문하게 됐다”면서 “구미에 온 것은 처음인데,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생각보다 더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용인에서 아내와 방문한 40대 B씨는 “지난해 공장에서 갓 나온 라면을 먹어보고 싶어서 방문했었는데, 올해는 확실히 축제가 훨씬 더 풍성해진 것 같다”면서 “라면 자체가 방문 목적이 될 만큼 매력적인 요소라고 느꼈고, 실제로도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라면 메뉴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3회차를 맞은 구미 라면 축제는 이제 장기적인 목표를 그려가고 있다. 단순히 축제 기간에만 반짝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라면 마니아들이 1년 내내 구미를 찾도록 할만한 유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구미시는 이를 위해 상인들이 다양한 라면 특화 메뉴를 파는 식당을 인근에 차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올해 축제에서도 ‘푸드 디렉터’들이 직접 상인들을 교육하고 메뉴 개발을 도왔다. 축제에서 반응이 좋은 메뉴는 상설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농심도 해당 식당에 ‘갓 튀긴 라면’을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차별성을 한층 강화한다. 장차 구미시를 ‘라면의 성지’로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다.
김상훈 농심 구미공장 공장장은 “농심 구미공장은 올해 35년째 사업을 영위하며 구미시 경제 활성화와 고용증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구미시와 함께 ‘구미 라면 축제’를 발전시켜서 기업과 지역 상생의 새로운 모범사례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