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임직원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5.9.29(자료=연합뉴스)
새 정부 들어 금융당국은 ‘소비자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이런 가운데 홍콩ELS 사태 등으로 대규모 과징금이 예고된 은행들의 긴장감도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이 지난 22일 입법예고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안’이 실적 등 향후 회사 경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2021년 3월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과징금’ 제도가 도입됐지만 업계에서는 과징금 산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금소법에는 ‘수입등’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수입등’의 의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홍콩 ELS 사태의 경우 ‘수입등’을 판매액으로 해석할 경우 은행 16조원 등 규모가 총 19조원에 달한다. 과징금 10%만 부과해도 1조9000억원으로 조 단위 금액이 된다. 판매액이 아니라 ‘수입(수수료)’으로 해석하면 총 2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최대 50% 부과를 결정해도 과징금은 1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논의 끝에 ‘수입등’의 기준을 ‘거래금액’으로 정했다. 위법행위로 얻은 경제적 이익의 환수, 위반행위 억제 등 과징금 제도의 입법 취지 등을 적극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예금상품은 예금액, 대출상품은 대출액, 투자상품은 투자액, 보험상품은 수입보험료가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된다. 홍콩 ELS는 투자상품이므로 투자액(판매액)이 기준이 돼 조 단위 과징금이 현실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소법 시행령·감독규정 개정안 중 과징금 부과기준율(자료=금융당국)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거래금액’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할 수도 있어 별도의 방식으로 산정하는 기준을 감독규정에 반영했다. 현행 검사·제재규정상 기본과징금 산출에 활용되는 ‘부과기준율’은 3단계(50%-75%-100%)인데, 바뀐 규정에서는 1~30%(중대성 약함), 30~65%(중대), 65%~100%(매우 중대)로 규제의 경직성이 완화됐다.
아울러 절차·방법상의 규제를 일부 위반한 경미한 위법행위의 경우 중대성 평가 점수에 따라 도출된 부과기준율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위법성 비례 부과 원칙에 따라 다양한 가중·감경 사유도 마련했다. 부당이득액이 과징금에 비해 클 경우 가중을, 소비자 피해 사전·사후 노력이 인정되면 감경(최대 75%)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
덧붙여 금융당국은 위반행위자의 납부능력, 위반행위로 취득한 실제 이익의 규모,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한 경우 과징금을 추가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부당이득의 10배 초과분에 대해선 감액이 가능토록 한 것.
바뀐 규정을 홍콩 ELS 사태에 적용해 보면 이론적으로는 은행권 판매금액(16조원)의 절반인 최대 8조원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지만,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이 1800억원에 불과한 점, 은행별 불완전판매율이 10~40%인 점 등을 감안해 별도의 방식으로 기본과징금이 산정될 가능성이 높다.
중대성 평가에서 중간값인 ‘중대’ 평가를 받더라도 부과기준율 30%, 경미한 위법행위가 적용되면 기본과징금은 2조4000억원(16조원×0.3×0.5)이 된다. 여기에 은행권의 선제적 자율배상 조치 등이 반영돼 최대 75% 감경을 받을 경우 과징금은 6000억원으로 확 줄어든다. 홍콩ELS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약 8조원) KB국민은행의 경우 과징금 규모는 3000억원 안팎이라는 계산에 도달한다. 불완전판매 비율까지 감안할 경우 과징금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은행권이 최악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조 단위 과징금은 피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다만, 새 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소비자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제시하고 있어 긴장감을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이찬진 원장 취임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지난달 29일에는 전 임직원이 참여한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결의대회’ 행사를 개최했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조직개편도 실시했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생명 회계기준’ 이슈와 관련해서도 금융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좌고우면 없이 ‘원칙대로 처리’ 방침을 과감히 밝혔다.
이재명 정부의 실세로 평가받는 이 원장이 금융권에 소비자보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벌백계’ 방침을 정하고 금융위원회가 이에 보조를 맞출 경우 조 단위 과징금 부과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입법예고안을 살펴보면 두루뭉술했던 ‘수입등’의 기준이 구체화, 명료화된 것은 긍정적인 것 같다”며 “다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당국이 마음먹기에 따라 적게는 1%, 많게는 100%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는 결론이어서 금융권의 당국 눈치보기는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