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위 이 바닥을 잘 아는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예비창업패키지 → 초기창업패키지 → 창업도약패키지 → 팁스(TIPS)로 이어지는 성장단계별 지원 프로그램만 잘 따라가도 10억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극초기 단계 기업들에게도 담보 없이 수억원의 저금리 대출을 일으켜준다.

뿐만 아니라 국내 벤처캐피탈(VC)이 운용하는 펀드의 가장 큰 출자자인 모태펀드는 정책목표 달성을 수익률보다 우선시한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예술, 여성창업, 관광산업, 소셜벤처 등 수익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분야도 전용 펀드를 만들어 투자하는 등, 전세계 어느 나라 창업 시스템과 견주어도 우리나라 창업자들이 받는 혜택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계별 창업지원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다 보니, 이를 따라가며 성장하던 창업자들이 VC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엄격해진 잣대에 당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경험이 많지 않은 초기 창업가의 경우 벤처캐피탈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거나, 잘못된 접근법으로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글을 빌어 초기 창업가들이 투자 유치에 앞서 꼭 알아야 할 벤처캐피탈 (VC)의 본질과 구조 3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벤처캐피탈(VC)은 사모펀드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탈들의 가장 큰 출자자(LP, Limited Partners)가 정책자금인 ‘모태펀드’다. 그런데 간혹 벤처캐피탈을 정책자금을 심사하고 집행하는 ‘정책자금 운영 기관’ 정도로 생각하는 창업자들이 있다.

벤처캐피탈은 크게 보면 사모펀드의 일종으로 엄연한 투자회사다. 벤처캐피탈이 운용하는 펀드는 정책자금이 일부 섞여 있을 수 있지만, 민간 기업이나 개인의 자금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간 출자자들이 펀드에 출자하는 이유는 정책 목표 달성이나 창업기업 육성이 아닌, 높은 수익률이 목적이다. 따라서 벤처캐피탈은 펀드 수익률을 높여줄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

“팁스(TIPS) 지원금을 받아야하는데 팁스 운영사들이 투자를 해 주지 않아 지원금을 받지 못 한다”며 한탄하는 창업자를 만난 적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 창업자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은 그 어떤 VC도 투자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도가 낮은 사업이었다.

우리가 주식 투자를 할 때 수익성 관점에서 해당 주식의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재료 삼아 투자를 하듯, 벤처캐피탈도 성장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보유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벤처캐피탈은 영리 목적의 투자회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 벤처캐피탈은 자기 돈이 아닌, 조합(Fund)을 결성해 투자한다

대부분의 VC들은 투자조합(Fund)을 만들어 투자한다. 즉,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것이 아닌, 돈의 주인(LP, Limited Partners)이 위탁한 자금을 운용해주는 일종의 펀드매니저라고 보면 된다. 펀드 결성 시점에 VC와 출자자(LP)간에는 일종의 약정 서류인 ‘규약’을 작성하고, 투자자(LP) 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와 투자 프로세스를 이 규약에 명시한다.

따라서 기업의 사정의 딱하다거나, 돈이 급하다는 이유로 규약에 명시되어있는 절차를 건너뛰고 투자 집행을 할 수는 없다. 벤처캐피탈은 LP들이 준 소중한 출자금을 규약에 따라 신의성실하게 운용하는 것이 제 1덕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잘 모르는 초기 창업자들 중 통장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자금이 급하니 빨리 투자해 줄 것을 종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규약에 명시된 투자 프로세스 상 VC가 첫 미팅 후 3개월 이내에 투자금을 납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VC 투자는 아무리 빨라도 3~4개월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자금적 여유가 있을 때 선제적으로 움직일 것을 추천한다.

3. 구조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사업이 존재한다

VC들이 운용하는 블라인드 펀드의 존속기간은 통상적으로 7~8년 가량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펀드를 청산해 수익을 출자자들에게 배분해야만 한다. 즉, 펀드 존속기간 내에 투자한 기업들이 IPO가 되든, M&A가 되든, 적어도 다른 투자자에게 구주를 팔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기업이 되든, 회수가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해 줄 수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다.

따라서 소상공업, 자영업 모델과 같이 IPO를 타깃하기에 시장이 너무 작거나 성장 규모가 제한적인 사업은 VC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지분투자 후 기업가치 상승으로 인한 매각차익을 노리는 VC 투자 특성상 이익은 낼 수 있지만 급격한 스케일업이 불가능한, 소위 ‘제이커브(J-Curve)’를 그릴 수 없는 기업에 대한 투자도 쉽지 않다.

혹자는 배당을 통해 회수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배당은 당해 연도에 이익이 났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고 기존에 발생했던 결손금 다 메꾸고 난 후 자본준비금, 이익준비금 등을 제외한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지분율 대로만 배분이 가능한 제한적인 이익의 배분 방식이다.

대부분 10% 이내 소수 지분 투자를 하는 VC 투자 특성 상 청산시까지 배당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수익률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VC들은 배당을 투자금 회수의 방법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유한한 기간 동안만 운용해서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펀드 투자의 특성 상, 천천히 사부작사부작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투자가 쉽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쪼록 어려운 시기 투자유치를 준비하는 초기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란다. 앞으로도 ‘유지윤의 벤처직설’을 통해 창업자와 벤처캐피탈 사이의 정보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유지윤 라이징에스벤처스 팀장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