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셀스)

간혹 IR을 한번 했을 뿐인데 곧바로 언제까지 투자해 줄 수 있냐고 묻거나 LOC(Letter of Commitment, 투자확약서)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창업자분들이 있다.

최근에는 동료 VC가 투자 검토했던 기업에 투자 불가 통보를 하자 “왜 그동안 희망 고문을 했냐”며 화를 내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가 길어지며 창업자들의 절박함이 커진 것 대비, 벤처캐피탈의 투자심사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생기는 오해라고 보여진다.

사실 벤처캐피탈은 워낙 소규모 조직이고 폐쇄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내부 투자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벤처캐피탈이 어떤 절차를 통해 투자의사결정을 하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하우스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의 투자심사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1. 딜소싱(Deal Sourcing)

VC 심사역이 투자할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단계다. 주로 심사역이 소속된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펀드의 주목적 투자 분야에 부합하는 스타트업 중,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찾는 작업이다. 심사역 보유 네트워크를 통한 발굴, 액셀러레이터 및 창업보육기관들의 소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심사 및 멘토링을 통한 발굴, 동료 VC들의 소개 등의 방식이 선호된다.

마음에 드는 기업을 발굴한 투자심사역이 창업자를 컨택해 몇 번의 미팅 및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 회사를 정식으로 검토해보고 싶다는 판단이 서면, 창업자와 VC 경영진 및 타 심사역들 앞에서 IR발표를 할 일정을 잡는다. 이것을 ‘오피스IR’이라고 하는데, 이 오피스IR이 정식 투자심사 프로세스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창업자가 VC 심사역과 한 두 차례 미팅은 진행했으나 아직 오피스IR을 요청받지 않았다면, 정식 투자심사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은 심사역이 본격적으로 투자검토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2. 투자심사보고서 작성 및 예비투자심사

오피스IR 이후 내부 의견을 취합해 봤을 때 긍정적 반응이라면(혹은 부정적 의견이 많더라도 심사역이 의지를 가지고 통과시킬 의지가 있다면) 심사역은 본격적으로 ‘투자심사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투자심사보고서는 벤처캐피탈 하우스마다 다르지만 평균 20~50페이지 가량을 쓰기 위해 몇 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또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투자기업 창업자 및 경영진들에게 많은 자료 요청과 질문을 하게 된다. 이때 창업자분들은 바쁘시더라도 대응을 잘 해주셔야 투자심사보고서의 퀄리티 및 심사역의 이해도가 올라가 투심위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투자심사보고서 완성 후 심사역은 예비투자심사위원회를 열고 그간 스터디 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기업이 투자할만한 매력적인 기업임을 어필한다. 이전까지 심사역은 기업을 ‘심사’하는 역할이었지만, 이 단계부터는 지금까지 쓴 보고서 및 스터디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투자가 성사되길 바라며 기업 편에 서서 투심위원들을 설득하는 역할로 전환된다.

3. 실사(Due Diligence) 및 본투자심사

예비투자심사위원회가 통과되면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회계실사를 진행한다. 회계사들이 기업 측에 메일로 자료 요청을 해 놓고, 실제 실사는 하루 정도 나가게 된다. 실사보고서가 나오기까지 3~5일 정도가 소요된다.

VC 입장에서도 회계실사는 가장 변수가 많은 절차다. 단순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내역,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 가수금/가지급금 등과 관련 실사가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만약 심각한 결격사유가 발견된다면 투자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회계실사가 이슈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면, 심사역은 예비투심위에서 지적된 보완 사항과 실사결과보고서를 합쳐 본투자심사위원회를 진행한다. 이 본투자심사위원회는 투자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절차로, 담당 심사역이 내·외부 투심위원들을 잘 설득해 ‘투자 적정’ 의견을 받아내야만 펀드에서 돈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4. 투자계약 체결 및 투자금 납입

본투자심사위원회가 통과되었다면, 투자는 90% 이상 확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후, 양사간의 계약서 조율 및 확정, 신주발행을 위한 상법상의 절차를 진행, 계약 체결, 주금 납입까지 이루어지면 비로서 투자가 완료되는 것이다(상법상 주금 납입일의 익일이 투자자가 정식으로 주주가 되는 날이다).

경험 상 발굴부터 투자금 납입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3개월 이상 소요된다. 펀드 결성 시점에 운용사(VC)와 출자자(LP) 간의 약정을 담은 서류인 ‘규약’에 구체적으로 명문화 된 프로세스가 있기에, 드라마틱하게 단축하거나 생략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스타트업 창업자 분들께서는 투자유치를 시작할 때 최소한 3~4개월 이상은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이 있는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자금이 소진되기 최소 6개월 전부터는 펀딩 활동을 시작해야한다고 조언 드리고 있다.

가끔 이러한 VC 투자 프로세스가 너무 길고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은 LP(Limited Partners, 출자자)들이 출자한 자금을 신의성실하게 운용할 책임이 있는 펀드 운용사이므로, 규약에 명문화된 프로세스를 생략·단축해가며 철저한 검증 없이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운용사가 규약을 생략한 투자를 강행해서 LP들에게 손실을 끼쳤다는 트랙레코드가 남게 된다면 향후 펀드레이징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VC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이슈다.

만약 그럼에도 VC들의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는 피하고 싶다는 창업자분들은 펀드가 아닌 본계정(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주체를 통한 투자 유치를 추천 드린다.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곳은 대·중견기업 투자팀이나 패밀리오피스(고액자산가 등이 자산을 운용할 목적으로 설립한 기관) 등이 있다. VC와 투자 대상기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소 다를 수 있으나, 투자 프로세스 측면만 본다면 펀드를 운용하는 VC보다 상대적으로 간결할 것으로 생각된다.

모쪼록 투자유치를 준비하고 계신 창업자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이었길 빌며, 어수선한 대·내외 정치·경제 상황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실 창업가분들 모두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