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군사쿠데타의 아픈 기억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렸듯이, 2025년의 우리 국민이 우리의 미래를 구할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하고 내란마저 극복한 대(大)한국민’임을 마침내 증명할 것입니다.”
지난 2월10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힘줘 말한 대목이다. 이제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새 시대를 책임진 그는 이 대표연설을 6월 대선을 준비하는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 및 기조를 국민께 보고하는 자리로 삼았다.
‘기본사회’도 챙기면서 이를 위한 ‘회복’과 ‘성장’,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경제 살리는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민생 살리는데 색깔이 무슨 의미냐. 진보정책이든 보수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며 ‘잘사니즘’을 거듭 앞세웠다.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고, 제왕적 의회의 권력 남용도 제한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며 대표연설을 통해 분권형 개헌을 제안했다.
현행 국회법상 제 정당의 국회 대표연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단 2개 당에 국한된다.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김태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국민주권정부의 문을 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장·차관 후보자를 포함한 고위급 인사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추천받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돼 직접 참여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진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일꾼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재명 정부가 이처럼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만큼 그 시금석의 하나로 정권 초기에 필히 국회 교섭단체 요건 또한 국민주권 취지에 걸맞게 전향적으로 완화하는 게 요구된다.
국민의 대표성을 더 끈끈하게 반영할 길 중 하나는 집권 여당이 자처해 국회 문턱을 낮추는 것이며 그 첫 단추는 양당제 폐해를 극복하는 교섭단체의 민주적 활성화다.
국회 개혁을 통해 기득권 정치집단의 고질적 폐해를 도려내는 일 또한 시급한 국민주권정부의 과제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난 대선 때 보수층에서 주장했던 ‘제왕적 의회독재’의 가능성과 유혹을 견제할 수 있는 일거양득 방안이기도 하다.
마침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재차 확인했다. 우 의장은 기회 닿을 때 마다 “꽉 막힌 정국에서 교섭단체가 여럿 있으면 국회의 원만한 운영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교섭단체 요건 완화론을 펼쳤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에 “교섭단체(완화)문제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맞다”며 “이것은 ‘게임의 룰’에 가까워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본과 원칙을 위해 힘을 모아 나가야겠다”고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정치적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소수 정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교섭단체 요건 완화가 요구된다. 물론 정국 사안에 따라 국회 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다양성과 정치적 효율성간 적절한 균형을 잡아 기득권 양당 정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협치와 통합의 길을 터야 한다.
이재명 정부 탄생에 일조했던 소수 정당들은 민주당에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정치적 약속 이행을 강하게 요구중이다.
조국혁신당은 최근 민주당 측에 지난 2월 야5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이 출범시킨 '내란 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원탁회의)'의 속개를 요청했다고 한다.
원탁회의의 지난 4월 15일 2차 선언문에는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이 담겨있다.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野) 4당 간 공조강화의 방편으로 ‘공동교섭단체’구성안을 내놨다.
▶소수정당의 교섭단체 요건 완화 요구가 관철될지, 민주당이 원탁회의의 정치적 약속을 이행할련지.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현 20석 이상의 교섭단체 요건을 10석으로 낮추자는 국회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했다. 교섭단체 기준을 몇 석으로 완화할지에 따라 국회 내 역학관계가 크게 달라진다. 원내 교섭단체가 되면 위원회별로 간사를 파견하는 등 국회 운영에 대한 발언권이 커지고, 정당 국고보조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15석으로 완화하자는 개정안을 지난 3월 대표 발의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교섭단체 요건이 낮아지면 국민의힘 내 불만 의원들의 이탈 및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진보진영 소수정당은 교섭단체 문턱을 하루라도 빨리 낮추려하지만 거대 양당인 보수 국민의힘은 물론 이제 여당이 된 민주당도 선뜻 대화테이블에 나서지 않으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과거 교섭단체 요건 완화 추진 및 결국 무위에 그친 사례를 볼 때 손에 쥔 떡을 나누는 게 쉽지만은 않다. 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교섭단체 요건 완화는 전적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극단적 진영론에 빠진 정치를 다원화하고,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정치에 반영하는 길을 국민주권정부는 닦아야 한다. 양당 기득권의 묵은 때를 과감하게 씻어내야 한다.
■명재곤은 헤럴드경제, 뉴스핌, 브릿지경제 등 언론사에서 30여년 간 기자 및 데스크로 활동했다. 석재조합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소통해 왔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는 편이지만 한때 기업에서 일한 터라 공급자 처지도 이해한다. 경제나 정치에서 극단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