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1,2호기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탈원전’은 진보의 상징처럼 통했다. 하지만 2025년 대선 레이스에서 탈원전은 사라졌다. 대신 등장한 키워드는 ‘현실적 전환’이다.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에 가깝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 힘 후보는 모두 일방적인 ‘탈원전’ 혹은 ‘친원전’ 정책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그 방법론은 판이하다.
이분법적 프레임이 자취를 감춘 대신 등장한 쟁점은 ‘원전을 어떤 관점으로 활용한 것인가’이다. 두 후보 모두 “이제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원전을 일정 부분 유지 또는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접근 방식과 활용 전략은 크게 다르다. 특히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는 SMR(소형모듈원자로)의 활용을 두고 그 차이가 극명하다.
■ SMR 둘러싼 전략적 시각차
김문수 후보는 SMR을 차세대 원전으로 보고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데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 수출 확대 등 국가 에너지 주권의 핵심 수단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2030년까지 국내 상용화 로드맵을 앞당기고 민간기업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SMR을 활용한 분산형 전력 공급망 구축은 물론, SMR 수출을 국가 차원의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재명 후보 역시 SMR의 가능성에는 동의하지만, 관점은 다르다. 그는 SMR을 내수 전력 수단보다는 기술 수출과 산업 생태계 육성의 핵심 자산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는 SMR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부품 산업 클러스터 조성, 그리고 이를 활용한 국제 수출 전략에 방점을 둔다. 특히 삼성, 현대차, 두산 등과 연계한 SMR 수출·부품 생태계 조성, 지역 일자리 창출, 기술 독립 등을 주목한다.
■ 원전 바라보는 시선···‘얼마나’ vs ‘어떻게’
김문수 후보는 원전을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전략 자산으로 본다. 그는 신규 원전 건설 재개와 기존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고리2호기, 월성1호기 같은 원전들의 재가동을 “경제성과 안전성을 따져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원전 비중 확대 노선을 공식화한 셈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원전을 전환기의 제한적 에너지 수단으로 보면서 그 산업적 가치에 더욱 주목한다. 그는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보류’ 입장을 취하고, 기존 원전에 대해서도 철저한 안전성 점검과 지역 주민의 동의를 전제로 유지 가능성을 열어둔다. 탈원전 기조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무조건적인 확대는 아니며 신중한 관리·활용을 강조한다.
산업계는 양측의 원전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은 기업 활동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문수 후보의 ‘전력 요금 안정’ 공약은 제조업계엔 반가운 소식이지만, 신규 원전 투자에 따른 재정 부담이 우려된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신재생에너지와의 병행 투자가 전제되므로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믹스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다변화에 따른 리스크 분산 효과가 기대된다.
■ 이분법 벗어난 원전 활용 전략···산업 철학 드러내는 새 쟁점
결국 이번 대선에서의 원전 정책은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라는 단순한 구도에서 벗어나, 국가 에너지 전략과 산업철학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원전의 존재 여부보다, 그 용도와 방식, 정책의 우선순위가 새 쟁점이 됐다. 원전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바라보는 두 후보의 시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에 정책 선택의 무게는 유권자에게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