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가 지난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준 기자)
[필리핀=김성준 기자] “필리핀은 소주 세계화와 진로 대중화가 가장 모범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입니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편의점, 마트, 온라인 쇼핑몰, 심지어 독립된 카페와 칵테일 바에서도 ‘진로’는 트렌디하고 친근하며 즐거운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지 소비자 일상 속에 녹아든 브랜드로 사랑받는 것이 하이트진로가 소주 세계화를 추구하고 진로 대중화를 통해 가고자 하는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가 지난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말이다. 하이트진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필리핀 시장 현지화 성과를 소개하며 글로벌 비전인 ‘진로(JINRO)의 대중화’ 방향성을 제시했다. ‘진로’를 필리핀 생활의 일부로 각인시키며 필리핀 시장에서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이룬다는 목표다.
27일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필리핀 소주 수출량은 연평균 약 41.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필리핀 내 재외 동포 수가 약 61% 감소한 반면,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소주 수출량은 약 3.5배 증가했다. 특히 2021년에는 과일리큐르 제품 판매가 61%를 차지했지만, 작년에는 일반 소주 비중이 약 68%를 기록하며 역전됐다. 필리핀 내에서 한국과 유사한 주류 소비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란 회사측 분석이다.
앞서 지난 2016년 ‘소주 세계화’를 내세웠던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 비전으로 ‘진로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오는 2030년까지 전세계 주류 시장에서 ‘진로’만의 독보적인 브랜드 경쟁력을 구축하겠다는 포부였다. 필리핀 시장은 이 같은 ‘진로의 대중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지에서 진로 주요 소비층이 한국 교민에서 필리핀 현지인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들이 소비하는 제품도 과일소주(과일리큐르)에서 일반 소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 소비층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필리핀 소주 시장은 현지 교민 수가 감소하면서 2015년 정체기를 맞은 바 있다. 따라서 하이트진로는 더 이상 한국인 시장만 보기엔 한계가 왔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펼쳐 왔다. 필리핀 소비자 기호와 문화에 맞춰 현지 음식과 페어링 콘텐츠 개발, K-팝 콘서트 후원, 디지털 마케팅 등을 확대하며 브랜드 인지도와 소비자 친밀도를 높였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필리핀은 과일소주로 촉발된 현지인들의 관심이 일반소주로 넘어가는 과도기 과정에 있다”면서 “젊은 세대 확대, K컬쳐 확대, 지역적 확대, 로컬 아이콘 활용 확대 4가지에 집중해 안정적인 고성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철저한 현지 시장 분석 통해 소비자 일상으로 ‘성큼’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이 지난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필리핀 소주 시장 단계별 활성화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성준 기자)
하이트진로는 필리핀 주류 소비시장 특징을 ▲소셜 리츄얼(주류를 여러 사람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문화) ▲타가이(Tagay, 한 개의 잔을 여러 사람이 돌려 마시는 필리핀 전통 단체 음주 방식) ▲팀프라도(Timplado, 주류에 과일 등을 섞어 자신만의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기는 성향) ▲푸루탄(Pulutan, 술과 다양한 음삭을 곁들여 먹는 안주 문화) 등으로 분석했다. 소비자 기호와 문화를 브랜드 활동과 연계함으로써 진로가 현지인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보드카, 럼주 등 현지 증류주들과 경쟁하기 위해 진로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히면서도, 소비자가 원하는 시점에 언제나 구매할 수 있도록 접근성 확대에 주력했다. 이는 주변 국가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필리핀 상황과 맞물려 높은 성장률로 이어졌다. 하이트진로는 가정시장 비중이 높은 필리핀 주류 시장 특징을 반영해 전국 단위 유통망을 구축했다. 현재 진로는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와 SM그룹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 있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 매장 S&R 멤버십 쇼핑, 4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세븐일레븐 등 주요 유통 채널에 입점했다. 기존 진열 위주 전략을 넘어 실제 음용 및 구매까지 연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시음행사 등 프로모션도 펼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필리핀 주류 시장에서 소주 판매가 활성화됨에 따라 진로를 ‘필리핀 생활의 일부’로 각인시킨다는 목표다. 우선 대학생 모임 등을 지원하며 주요 타깃인 젊은 소비층을 공략한다. 특히 한류 콘텐츠 확산에 발맞춰 K컬처 커뮤니티 조직을 별도 선별해 K팝 아이돌 팬클럽 등 소규모 동호회 모임도 지원한다. 소주가 필리핀 음식과 잘 맞는다는 것 알리기 위해 SNS를 통해 다양한 푸드페어링 콘텐츠를 선보이고, ‘메가볼(필리핀에서 그해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를 뽑는 행사)’도 별도지원하는 등 소비자 노출 효과와 신뢰도를 한층 높인다.
최근에는 한류 확산과 함께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지 인기 삼겹살 프랜차이즈 ‘삽겹살라맛’과 ‘로맨틱 바보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젠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및 현지 커피브랜드와 협업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가정 내 일상 소비부터 외식·유흥 채널에 이르기까지 필리핀 소비자 일상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오늘날 고령화와 경제위기, 음주문화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오늘날 주류 산업은 OTT, 여행, 스포츠들과 경쟁해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생한 제품을 시장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제품과 문화, 시간과 공간까지도 제공을 해야만 주류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