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 시장의 판을 바꾸는 치료제가 등장했다. 바로 방사성의약품이다.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밀표적 치료제'로 주목받는 이 치료제는 치료 불응 환자들에게 새로운 생존 기회를 제공하며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성 동위원소와 특정 수용체를 표적하는 분자를 결합해, 암세포에만 방사선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RLT(방사성 리간드 치료)로, 노바티스의 Pluvicto(전립선암)와 Lutathera(신경내분비종양)가 그 대표 사례다. 이들 치료제는 생존 기간 연장 효과를 임상에서 입증하며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이미 전 세계 시장에서 상업화됐다.


무엇보다 RLT는 부작용이 적고,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시장은 이제 전립선암과 희귀종양을 넘어 폐암, 유방암, 흑색종 등 주요 고형암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전략도 개발 중이다.

그러나 방사성의약품 산업의 진입 장벽은 결코 낮지 않다. 첫째, 짧은 반감기 특성상 생산과 투여가 병원 인근에서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는 생산시설과 병원의 긴밀한 연계를 요구한다. 둘째, 의약품 규제 외에도 원자력 관련 규제를 동시에 만족해야 하며, 전용 제조 시설과 안전 차폐 설비 등 특수 인프라가 필수다. 셋째, 동위원소 공급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글로벌 소수 기업만이 안정적 생산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은 과점 내지 독점에 가까운 구조를 띠게 된다.


이처럼 높은 진입장벽은 동시에 소수 기업에게는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노바티스는 Pluvicto의 2025년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4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방사성의약품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기에 바이엘, BMS, 아스트라제네카 등 빅파마들도 인수합병(M&A) 전략으로 뒤늦게 합류하며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 역시 기회는 있다. 퓨쳐켐은 전립선암 치료제 ‘FC705’로 임상 3상에 진입했고, 셀비온과 듀켐바이오, SK바이오팜 등도 진단제와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정부 차원의 동위원소 자급화 정책, 건강보험 적용 심사 기간 단축 추진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며 산업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미국 FDA가 방사성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전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임상설계, 방사선 노출 관리, 용량 기준 등이 명확해지면서 개발사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글로벌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미국 메디케어의 방사성 진단제 보상 확대는 병원의 채택을 가속화하며 치료제 사용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구조다.

방사성의약품은 더 이상 틈새시장의 대체 치료제가 아니다. 암과 신경계 질환이라는 거대 시장으로 확대되며 ‘진단과 치료가 연결된’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 구조는 고도로 집중돼 있고, 진입은 어렵지만 일단 시장에 들어선 기업에게는 독점적 기회가 열린다. 국내 기업들이 지금 이 흐름을 잡는다면, 한국은 단순한 수요처를 넘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의 공급자로 부상할 수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방송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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