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허성진 작곡가 제공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기까지 보이지 않은 수고가 교차돼 쌓여야 한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 뿐 아니라 작곡가, 작사가, 뮤직비디오 감독, A&R, 편곡가, 세션, 앨범 디자이너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으로 최고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듣고 싶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뒤에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2016년 방영됐던 ‘태양의 후예’ OST ‘말해 뭐해’를 누구든 한 번 쯤은 흥얼거렸을 것이다. 4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노래는 즐겨 부른다.

허성진 작곡가는 ‘말해 뭐해’를 포함해 유성은의 ‘비 오케이’(Be Okay) 에일리 ‘홈’(Home) ‘노노노’(NO NO NO) 틴탑 ‘메리크리스마스’ ‘5계절’ 업텐션 ‘습관’ 등을 작업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OST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병원선’ OST ‘터치 오브 러브’(Touch of love) ‘너도 인간이니’ OST ‘눈을 맞추면’ ‘바람이 분다’ OST ‘투나잇’(Tonight)을 작업했다. 또 2019년 가장 사랑 받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OST ‘영화 속 나오는 주인공처럼’ ‘운명이 내게 말해요’를 썼다. 

허 작곡가는 스무살 초반부터 대중 가요 작곡을 시작해, 2013년 유성은의 ‘비 오케이’를 히트시키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3년 전 청담동에 작업실 마련해 다양한 의뢰를 받으며 작업 중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막연하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가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작곡을 알게 됐고 음악을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지방에서 자라 주변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어요. 지금처럼 실용음악학원도 많이 없었고요. 고등학교 때 드디어 허락해주셔서 밀양에서 부산으로 개인레슨을 다녔습니다. 독학으로 작곡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도 했고요. 교수님들도 컴퓨터 음악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보니 특별하게 봐주시고는 했어요”

작곡가는 많지만 모두가 알 만한 ‘말해 뭐해’ 같은 히트곡을 보유한 작곡가는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그는 지금 왕성하게 활동 할 수 있었던 공을 주변에게 돌렸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많고 나이도 먹어가고 잘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 작업을 하고 있죠”

그가 작업한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 OST 사이의 간격은 꽤나 넓게 느껴진다. 두 가지 분야의 음악을 작업하며 느낀 차이점과 작업 방식이 궁금했다. 

“작업하는 방식이 달라요. 아이돌 그룹은 무대 그림을 그리며 곡을 씁니다. 유튜브 들어가서 모티브가 될 수 있는 아티스트 작업도 찾아보고요. 신인 친구들은 가사 내용이 중요해요. 이런걸 고려해 작업을 합니다. OST는 가요보다 조금 여유 없이 작업에 들어가요. 시놉시스 받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며칠 만에 만들어야 할 때도 있어요. 시놉시스를 보고 들어갈 경우는 전체적인 그림을 알 수 없으니 테마를 정하고 이후에 가사를 많이 수정해요. 또 리듬이 너무 신나거나 강해도 안됩니다”

드라마 OST는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전락할 때도 있지만 극 중의 장면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OST가 그랬다. 동백이와 용식의 사연과 그들이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담긴 가사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더 젖어들게 했다. 허성진 작곡가는 헤이즈가 부른 ‘운명이 내게 말해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헤이즈가 부른 노래는 하루 만에 만들었어요.(웃음) 물론 수정편집을 많이 했지만요. 펀치 곡을 녹음한 날에 일주일 정도 잠을 안자고 작업했던 곡입니다. 헤이즈 같은 경우는 ‘동백꽃 필 무렵’의 팬이라고 들었어요.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드라마 이야기 하다가 작업하고 싶다고 한 말이 관계자에게 전달이 됐어요. 그래서 섭외가 되고 급하게 진행됐어요”

15년 가까이 활동하며 작곡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느낀 가치는 무엇일까. 

“기술적인 건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고, 자기 색깔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수도 돋보여야 데뷔도 빠르게 하고 인기를 얻잖아요. 녹음과 디렉션 진행은 직접적으로 부딪쳐야 하는 부분이고요. 한 가지만 잘한다고 안주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다 소화할 수 있어야 해요. 원래 댄스 음악을 너무 좋아했는데, 발라드와 미디엄 곡도 해보니 좋아하는 걸 제대로 알 수가 있었어요. 또 나의 강점도 여러 가지 해보면서 느끼게 됐고요”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를 ‘말해 뭐해’로 꼽았다. ‘태양의 후예’ OST 중 가장 사랑받은 곡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에게 행복을 가져다 드린 노래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은 아이돌 친구들을 잘 모르시잖아요. 그런데 드라마는 자주 보시니 제 노래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셨어요. 또 사시는 동네가 작다보니 주변 분들도 딸 칭찬을 해주니 그게 또 즐거우셨나봐요. 정말 뿌듯했고 보람 있었어요”

허성진 작곡가 제공


허성진 작곡가는 지금의 활동에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드라마 음악 감독이다. 허 작곡가는 드라마 OST 작업으로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토양을 다지고 있었다. 

“음악을 오래 하고 싶어요. 지금은 드라마 공부를 하며 음악 감독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곡만 쓰고 디테일하게 드라마를 살피지 않았는데, 지금은 꿈을 갖게 되니 드라마와 음악을 모두 신경써요. 그래서 개미 감독님에게 많은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음악이 좋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드라마와 상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잖아요. ‘호텔 델루나’ 같은 경우는 OST가 이슈 되면서 더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호텔 델루나’가 기대작이 아니었지만 태연 거미 레드벨벳 등 쟁쟁한 가수를 섭외한 것도 다 음악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허성진 작곡가는 앞서 이야기 했듯, 개미 감독과의 호흡을 통해 음악 감독이 갖춰야 할 재목을 하나, 둘 씩 알아가고 있다. 

“개미 감독님은 굉장히 디테일 하세요. ‘태양의 후예’ ‘동백꽃 필 무렵’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지금의 자리에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를 여실히 느껴요. 제가 놓치는 부분을 알려주세요. 곡 색깔도 확실히 있으시고 영상과 붙는 곡을 확실히 감각 있게 선택하는 것 같아요. 또 예전 감성과 요즘 감성도 다 아우르시더라고요. 저는 아직 많이 배워야죠”

보통 의뢰를 받으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을 때는 어떤 경로로 발표를 할까. 

“10년 전에 함께 음악을 하며 응원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 잘됐어요. 작곡가는 물론 소속사 A&R 등으로 활동하다보니 다 연결돼 있어요. 그쪽을 통해 건네기도 해요. 음악적인 교류를 하니 보통 피드백을 서로 주기 편해요”

그는 작곡가란 직업에 높은 만족도를 표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자신에게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지만, 가장 큰 만족도는 곡 발표에 있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결과가 나오면 만족도가 커요. 일이 일정하지 않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직업을 찾아가시는 분도 많은데, 지금 이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맥이 중요한 업계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작곡가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다. 

“인연이 돼서 곡을 팔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작곡한 곡을 들려줄 수도 없는 분들도 있지요. 노래를 들려줄 루트를 찾아야해요. 제가 추천드리는 건 퍼블리싱 계약을 해주는 회사에 곡을 보내는 겁니다. 소속사로 직접 보내는 경우도 있고요. 일단 망설이지 말고 부딪쳐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