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간혹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을 주는 이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과는 단순히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하나하나, 신중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순간들은 인터뷰이를 연예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 비춘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음악이, 연기가, 표현이 읽힌다.
듀오 훈스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드러냈다. 훈스는 2017년 데뷔한 신인 듀오다. 싱글을 발표하다가 최근에야 첫 번째 미니앨범 ‘90 BPM’을 완성했다. 사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콘셉트를 내세운 이들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 메이킹을 잘 했다’라는 인상을 줬다. 그러나 멤버 이상훈, 이종훈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보이는 이미지보다 음악에 자리한 담백한 진정성이 더 먼저 와 닿는다.
■ 훈스가 마주한 새로운 세상
“그간 조용히 음악을 했어요. 요즘에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저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주어져서 좋아요. 회사에서 저희를 위해 엄청 열심히 해주시거든요. 직원 분들이 ‘24시간 동안 근무한다’고 장난치시는데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아, 우리가 열심히 안 하면 안 되겠구나.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죠(이상훈)”
훈스에게 요즘은 새로운 세상 투성이다. 콘셉트를 잡아 사진을 찍는 화보촬영도, 첫 데뷔를 치른 음악 방송도 모두 처음 겪는다.
“음악방송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표정을 짓는 것도 어색했죠(이종훈)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객석에 계신 다른 가수 팬 분들이 저희가 생경할 텐데도 무대에 호응을 해주셔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이상훈)”
아직 화면 속 모습을 어색하게 느끼는 이들이다. 여기에 점차 적응하고자 멤버들은 웃는 연습도 하고 다른 화보를 보고 포즈를 따라해 보며 ‘신세계’에 적응 중이다.
훈스(사진=이동환 기자)
“사실 셀카도 못 찍기로 소문나 있거든요. SNS 프로필 바꾸려고 사진 올리면 댓글에는 다 웃기만 하거나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줘’라는 말들이 달렸어요. 누가 찍어주는 것도 부끄러웠고요. 그런데 저희를 위해 열심히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연습하려고 거울을 보면서 ‘난 멋있어’라고 최면을 걸었어요. 다만 다른 분들은 멍 때리는 표정도 몰입감 있게 소화해내는데, 내가 하면 그냥 멍 때리는 거더라고요. (웃음)(이상훈)”
“어, 나는 화면에 좀 잘 나오는 것 같아서...(웃음) 그런데 자연스럽게 웃는 걸 잘 못하긴 해요. 그래서 사진 찍으시는 분도 아예 ‘웃지마 종훈아’라고 계속 말씀하시고요. 뮤직비디오에서도 무표정인 신은 잘 찍었는데, 웃는 게 어려웠어요. 그런 건 상훈이가 잘 하거든요. 심쿵하게 만드는 미소. 보면서 많이 연습하고 있어요(이종훈)”
이종훈은 “내가 어색해하고 로봇처럼 되는 걸 팬 분들이 재밌어 하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종훈은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어색한 입꼬리를 보여 큰 웃음을 줬다. 이상훈은 공연할 때마다 그런 이종훈을 보고 “알파고냐”면서 놀리고 장난을 친단다.
■ 고민으로부터 나오는 ‘서정성’이 주는 진심
훈스가 최근에 발표한 ‘우리라고 쓰고 싶어’와 ‘얘가 이렇게 예뻤나’는 따뜻한 봄과 어울리는 설렘이 가득한 곡이다. 봄 시즌송의 흥행을 노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훈스가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계절감’이다. 이는 나머지 트랙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마음을 간지럽게 만드는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서정성은 콘셉트가 아닌, 훈스의 음악을 관통하는 개성이다.
“신나는 노래를 해도 조용한 노래를 해도 서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그걸 계절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각 계절에 맞는 서정성을 담아내는 거죠.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어떤 감정과 감성인지 계속 곱씹어봐요.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막 그러다가 ‘아, 이거지’하고 확실하게 감정 정리가 되면 그때 종훈이랑 공유를 해요. 그러면 종훈이도 ‘이건 이런 거였던 것 같아’라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줘요(이상훈)”
“상훈이 목소리가 서정적이고 분위기가 있어서 어떤 곡이든 상훈이가 부르면 훈스만의 색깔로 변하는 것도 있어요(이종훈)”
감정의 종류가 무엇이든 노래가 나오기까지는 진중한 고민과 깊은 고찰이 있었다. 덕분에 훈스의 음악은 겉도는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노래가 흩어지지 않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훈스(사진=이동환 기자)
■ 음악의 방식이 곧 삶의 방식
내 이야기 같은 공감을 추구하는 훈스에게 누군가의 경험담은 가장 좋은 아이디어 원천지다. 가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쓰는 신조어 표현 등도 익혀서 더욱 실감나는 글들을 완성해낸다.
“SNS에 있는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도 많은 생각을 얻어요. 글쓴이가 겪은 일을 쓴 거니 감정이입도 잘 되고요. 그러다가 발견한 글이 친구로 지내던 여자에게 갑자기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인데요.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아, 사랑이구나’ 깨닫는 과정을 보면서 곡으로 쓰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봄이라서 그런지 ‘썸’에 관련한 내용들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이상훈)”
“또 다들 필력이 좋아요.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빠져들어요. 내용이 하나같이 영화나 드라마 같아요(이종훈)”
“예를 들어 ‘얼굴에 치인다’와 같은 신조어를 잘 안 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 얘기처럼 느꼈으면 좋겠고,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투에 착안을 많이 했어요(이상훈) 공부도 많이 했죠(이종훈)”
현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심플한 노래는 깔끔한 인상을 주는 훈스의 색깔과 일맥상통한다. 보컬도 편하게 들리는 음색을 내는데 집중했다. 이상훈은 “말할 때와 노래할 때 목소리에 차이가 없도록 신경 쓴다”고 말했다.
“포크가수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는데요. 공연할 때도 기타 하나 들고, 목에 하모니카 걸고 하는데 멘트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노래를 이어 가요. 멘트 따로, 노래 따로가 아니라 서서 연주하고 노래하고 말하는 그 자체가 다 공연인 거예요. 나도 그렇게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이상훈)”
“피아노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만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연주여도 감정이 느껴질 수 있는, 보컬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연주를 하려고 해요(이종훈)”
“종훈이가 보컬 곡도 잘 쓰는데 기악곡도 훌륭하게 써요. 그게 내가 처음에 종훈이에게 반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종훈이는 연주할 때 뺄수록 좋다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최소한의 것으로 가장 좋은 걸 만들려고 하는 거죠. 뭔가를 더 입히기 시작하면 음악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 엄청 신중해요. 음악을 다룰 때나 삶의 방식이나 가 다 그래요(이상훈)”
훈스(사진=이동환 기자)
■ ‘뽀시레기’의 종착지, 좋은 사람 그리고 꽉 찬 음악
훈스와 대화를 나누며 뜻밖의 인간적인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멤버들이 말을 할 때 단어나 표현을 선택하는데 있어 굉장히 신중하게 고르는 게 눈에 보이는 거다. 그들이 내뱉는 말에는 조심스럽고도 전달력이 있는 힘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랑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러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걸 겪다보니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라고 잘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그래서 말을 고를 때도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고요(이상훈)”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고자 하는 훈스의 진중함은 이상훈과 이종훈이 서로를 이해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성격은 달라도 결이 비슷한 친구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친밀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 봐도 원래 알던 사이처럼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관점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요. 그래서 종훈이와 처음부터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종훈이와 있으면 침묵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땐 안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그런 침묵도 대화처럼 보낼 수 있어서 좋아요(이상훈)”
이상훈은 이종훈을 만난 게 가장 큰 인복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두 멤버 모두 삼수를 해 대학교를 갔는데, 그 덕분에 인연이 됐으니 ‘삼수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이상훈은 “종훈이는 솜 같은 친구”라면서 “나는 잘 표현하는 편인데 의외로 소심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섬세한 성격이라 그런 면을 잘 알아준다. 의지할 데가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예쁜 마음가짐은 음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훈스(사진=이동환 기자)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해요. 최근에 나의 단점들을 알게 되면서 나를 싫어하게 됐는데, 그것도 사랑하려고 하고요. 어렸을 때는 마치 경주하듯 승부욕으로 친구보다 더 어른인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진짜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들도 아는 체하며 말을 내뱉게 되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어 있지 생각했어요. 내가 아는 것들을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글 쓰는 습관도 생겼고요. 그렇게 나를 잘 알아가고 남을 이해하는 과정들을 겪으며 성숙해지고 싶어요. 여물고 싶고요. 그런 게 음악으로 잘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의 생각이나 말투는 노래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정말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힘들 때 ‘잘 될 거야’라는 말만큼 맥 빠지는 응원이 없잖아요. 마음은 알겠지만 말이 와닿지 않는 거죠.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위로를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이상훈)“
“상훈이가 말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물어가면 좋겠어요. 그러면 음악에서도 점점 더 깊이 있고 솔직한 가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멜로디에 있어서도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 모습들을 천천히 보여드리고 싶어요(이종훈)”
훈스는 자신들을 두고 ‘뽀시레기’라고 칭한다. 소박하고 귀여운 수식어다. 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뽀시레기’에서 진화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뭘로 변화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두 멤버 다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잇다는 것, 그러니 훈스의 음악은 분명 아름다움이 스며 있을 거란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도 생각이 갑자기 확 들고 정리가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적어놓고 음악에도 담아요.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음악으로 잘 풀어내면 좋겠고, 그에 맞는 음악성과 실력도 따라줬으면 좋겠어요(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