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하나의 상품이 된 시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양질의 수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소비자의 니즈에 발맞춰 관련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숙면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으로 성장 중인 새로운 산업을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수면산업)라고 한다. 슬리포노믹스가 각광 받는 산업으로 떠오른 배경과 그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사진=Pixabay) [뷰어스=노윤정 기자]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슬리포노믹스 발달의 이면에 생각해볼 문제들은 없는 것일까.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은 숙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잠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긴 학습시간, 야근이 일상화되고 근무 시간이 길수록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보편화된 직장 문화를 갖고 있다. 공부 혹은 일을 하다가 수면 시간을 줄이는 건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고 구조다. 수면과 관련한 산업이 발달한다고 해서 이런 사회 구조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한국은 국민 평균 수면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2012년 기준 7시간49분/OECD 평균 수면시간 8시간22분) 수면 장애로 진료 받은 사람이 51만 명을 넘어서는 실정인데도(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 빅데이터, 2017년 기준) 국내에서 슬리포노믹스가 주목받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선도국들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져있다. 국내에서 슬리포노믹스가 각광 받기 시작한 뒤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은 오히려 현대인들이 그만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수면시간을 늘리기 어려우니 질이라도 높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또한 수면카페 등 수면공간 서비스의 증가세는 이처럼 양질의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휴게 공간이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양극화 문제다. 슬리포노믹스는 선진국형 산업으로 분류된다. 국민들의 평균 소득이 증가할수록 발달하는 산업이라는 의미다. 이때 나타나는 문제는 결국 ‘잠’이라는 상품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산업 발달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한 달 식비를 걱정해야 하고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숙면을 위한 투자'라는 말도 요원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사진=Pixabay) 최근 슬리포노믹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경기연구원 이은환 연구위원 역시 이런 지적에 대해 “슬리포노믹스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수면질환을 당장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말기 암 환자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암을 완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기술개발을 통해 최대한 수명을 늘리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슬리포노믹스 발달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가 한정적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보편화시키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슬리포노믹스 제품과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경제적 접근성이 높다면 지금 우리가 집에서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침구류들과 유사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슬리포노믹스에 대한 정의조차 없었고 지금도 매우 생소한 용어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개발과 연구를 통해 제품이 출시되고 슬리포노믹스 제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일상 안에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수면장애 문제가 개인의 기질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노동 구조 문제와 맞물려서 사회가 바뀌어야지 그냥 (슬리포노믹스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걸 찬양하는 인식이 남아있다. 신체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일이다. ‘숙면을 취해야 다음날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병 발병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사회 인식들을 바꿔줘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 몇 시간을 자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필요한 타이밍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느냐다. 슬리포노믹스도 언제 양질의 잠을 자느냐를 따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기계적으로 몇 시간 자느냐를 따지는 데 머물러 있다. ‘잠의 질’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 평론가는 슬리포노믹스가 일상과 분리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일터나 필요한 공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가 접근성 있는 형태로 의무적으로 배치돼야 한다. 돈이 있어야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 복지의 한 시행조치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숙면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몇 년 안에는 숙면 문제가 노동 공간과 연계돼서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수면공간이 상시적으로 접근 가능하도록 일상 속에서 확산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민간에서 행하기 부족한 부분은 공공 부분에서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수면, 산업을 만나다] ③슬리포노믹스 성장 이면의 문제들

노윤정 기자 승인 2018.09.10 10:09 | 최종 수정 2137.05.20 00:00 의견 0

잠도 하나의 상품이 된 시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양질의 수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소비자의 니즈에 발맞춰 관련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숙면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으로 성장 중인 새로운 산업을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수면산업)라고 한다. 슬리포노믹스가 각광 받는 산업으로 떠오른 배경과 그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뷰어스=노윤정 기자]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슬리포노믹스 발달의 이면에 생각해볼 문제들은 없는 것일까.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은 숙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잠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긴 학습시간, 야근이 일상화되고 근무 시간이 길수록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보편화된 직장 문화를 갖고 있다. 공부 혹은 일을 하다가 수면 시간을 줄이는 건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고 구조다. 수면과 관련한 산업이 발달한다고 해서 이런 사회 구조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한국은 국민 평균 수면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2012년 기준 7시간49분/OECD 평균 수면시간 8시간22분) 수면 장애로 진료 받은 사람이 51만 명을 넘어서는 실정인데도(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 빅데이터, 2017년 기준) 국내에서 슬리포노믹스가 주목받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선도국들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져있다.

국내에서 슬리포노믹스가 각광 받기 시작한 뒤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은 오히려 현대인들이 그만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수면시간을 늘리기 어려우니 질이라도 높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또한 수면카페 등 수면공간 서비스의 증가세는 이처럼 양질의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휴게 공간이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양극화 문제다. 슬리포노믹스는 선진국형 산업으로 분류된다. 국민들의 평균 소득이 증가할수록 발달하는 산업이라는 의미다. 이때 나타나는 문제는 결국 ‘잠’이라는 상품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산업 발달의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한 달 식비를 걱정해야 하고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숙면을 위한 투자'라는 말도 요원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최근 슬리포노믹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경기연구원 이은환 연구위원 역시 이런 지적에 대해 “슬리포노믹스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수면질환을 당장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말기 암 환자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암을 완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기술개발을 통해 최대한 수명을 늘리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 슬리포노믹스의 발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슬리포노믹스 발달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가 한정적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보편화시키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슬리포노믹스 제품과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경제적 접근성이 높다면 지금 우리가 집에서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침구류들과 유사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슬리포노믹스에 대한 정의조차 없었고 지금도 매우 생소한 용어다. 하지만 앞으로 기술개발과 연구를 통해 제품이 출시되고 슬리포노믹스 제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일상 안에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수면장애 문제가 개인의 기질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노동 구조 문제와 맞물려서 사회가 바뀌어야지 그냥 (슬리포노믹스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하는 걸 찬양하는 인식이 남아있다. 신체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일이다. ‘숙면을 취해야 다음날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병 발병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사회 인식들을 바꿔줘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 몇 시간을 자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필요한 타이밍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느냐다. 슬리포노믹스도 언제 양질의 잠을 자느냐를 따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기계적으로 몇 시간 자느냐를 따지는 데 머물러 있다. ‘잠의 질’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 평론가는 슬리포노믹스가 일상과 분리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일터나 필요한 공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가 접근성 있는 형태로 의무적으로 배치돼야 한다. 돈이 있어야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 복지의 한 시행조치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숙면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몇 년 안에는 숙면 문제가 노동 공간과 연계돼서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수면공간이 상시적으로 접근 가능하도록 일상 속에서 확산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민간에서 행하기 부족한 부분은 공공 부분에서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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