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플레이어'의 주인공 강하리 역의 배우 송승헌(사진=더좋은이엔티)
OCN '플레이어'의 주인공 강하리 역의 배우 송승헌(사진=더좋은이엔티)

 

[뷰어스=손예지 기자] “연기가 재미있어요”

최근 OCN ‘플레이어’를 끝내고 만난 배우 송승헌의 말이다. 19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사랑받고 어느새 데뷔 24년 차에 접어든 배우의 ‘연기 사랑’은 어쩐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오히려 20~30대에 열정이 덜했거든요” 송승헌은 이렇게 고백했다. 

“연기자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방송국에서 ‘다음주부터 나오라’고 해서 배우를 시작한 거예요. 운이 좋았던 만큼 연기 고민을 할 틈 없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재미보다는 돈벌이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철저히 일로써만요. 그러다 군 제대 후 팬레터를 받았어요. 대개 팬레터 내용이 비슷한데 어떤 팬이 ‘우연히 당신 작품을 보고 좋아하게 됐다. 당신 연기로 감동하고 행복함을 느꼈다. 당신이 하는 일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데 고마워하며 살라’고 적었더라고요. 와 닿았어요. 내가 일로 생각한 직업이 누구에게 감동을 준다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생각이 바뀌었어요.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요. 20대~30대의 내가 정의롭고 멋진 캐릭터만 하려고 했던 데 반해 (팬레터 이후) 갇혀온 방식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가 이미지 탈피를 위해 출연한 작품이 2014년 개봉한 영화 ‘인간중독’이었다. 최상류층 군관사 안을 배경으로 펼쳐진 ‘인간중독’에서 송승헌은 부하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김진평 역을 맡았다. 이를 두고 송승헌은 “20대~30대의 나라면 안 했을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전까지는 반듯하고 정의로우며 멋진 캐릭터만 맡고자 하는,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중독’ 이후 스스로를 얽매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시야가 넓어졌고 마음도 훨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연기하는 재미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장르물에 도전하게 됐죠. 지난해 OCN ‘블랙’을 통해서요. 당시에 ‘왜 진작 출연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장르물의 재미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올해 ‘플레이어’로 다시 한 번 실감했어요. 특히 이번에는 내가 갖고 있던 연기 습관을 많이 버렸어요. 이를테면 극 중 심각한 상황에는 좀 힘을 줘서 연기해야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PD님은 ‘오히려 더 쿨하게 웃으면서 가자’시더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반응이 더 좋았고요”

(사진=더좋은이엔티)
(사진=더좋은이엔티)

 

‘플레이어’에서 송승헌이 연기한 강하리는 완벽한 외모와 언변술을 타고난 천재 사기꾼이다. ‘플레이어’는 하리가 베스트 드라이버 아령(정수정) 해킹 마스터 병민(이시언) 싸움꾼 진웅(태원석)을 모아 대한민국 ‘윗분’들의 ‘검은 돈’을 환수하고자 분투하는 내용을 그렸다. ‘플레이어’가 이 과정을 블랙 코미디와 결합시키면서 송승헌의 능글맞은 말투와 거침없이 망가지는 코믹 열연이 빛을 발했다.

“하리를 연기하면서 너무 편했어요. PD님이 KBS2 ‘여름향기’(2003) 조연출로 나를 처음 만났어요. ‘블랙’에서 B팀 감독을 맡기도 했고요. 평소에 형동생하는 사이죠. 그래서 ‘플레이어’에 대한 계획도 미리 알고 있었어요. 어딘가 모자라지만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더라고요. 특히 하리와 내가 비슷하다고 했어요.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안 그러거든요. 편하게 욕도 하고 장난도 치고… PD님도 나의 그런 모습을 아니까 하리를 통해 보여주기를 원했죠. 덕분에 팬들도 ‘다시 봤다’ ‘새로웠다’고 이야기해요. 신기했습니다”

특히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이전까지 작품에서 만나본 적 없는 사이라 ‘우리 네 명의 조합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했으나, 금세 친해졌다고 떠올렸다. “시언이도 밝은 것 같지만 내성적이고 수정이는 더했다. 원석이는 비중이 큰 역할을 처음 맡는 것이기도 했고, 나중에 들어보니 다들 나를 어려워했단다”며 웃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식사도 배우들 각자 스태프들과 하고 다시 모여서 연기하고 헤어지는 식이었는데 ‘플레이어’는 거의 같이 밥을 먹으러 다녔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팀워크가 끈끈했다. 촬영이 다 끝나고 수정이가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은 처음이었다’면서 많이 아쉬워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애드리브도 너무 많았어요. 중요한 건 애드리브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너무 넘쳐도 작품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PD님이 판단했을 때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어요. 애드리브를 철저히 편집하는 제작진도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배우의 입장에서 조금 의욕이 떨어지기도 해요. 물론 제작진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는 건 맞지만, 캐릭터에 있어서는 배우가 더 잘 알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열정을 갖고 없는 대사를 만드는 건데 (방송에서) 다 잘려 나오면 김이 빠져요. 그런데 ‘플레이어’는 오히려 PD님이 ‘얼마든지 생각해오라’면서 작가님과 의논해 반영시켜주셨습니다. 덕분에 배우들 모두 (연기에) 더 욕심을 갖게 됐죠”

(사진=더좋은이엔티)
(사진=더좋은이엔티)

 

이런 가운데 ‘플레이어’ 시즌2를 바라는 시청자가 많다. 송승헌도 “이대로 끝나면 아쉽지 않겠냐”면서 “시즌1이 국내의 검은 돈을 환수하는 내용이었으니 시즌2는 외국에 숨겨둔 돈을 찾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특히 “친구들과의 호흡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시즌2가 결정된다면 함께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플레이어’는 내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여유있는 현장이었어요. 최근에는 드라마 제작 환경이 확실히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스태프 처우에 대한 배려가 깊어졌어요. 예전에는 아침에 모여서 새벽 3~4시까지 촬영하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집합했어요. 그런 식으로 서너 달을 살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도 요즘은 휴식시간을 보장해주려고 하니까요. 물론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졌어요. 사전제작 시스템도 많아지는 것 같고요. 연기자로서 스태프들이 더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송승헌은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않았다. 올 겨울은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다만 “작품에 대한 욕심은 많다”고 힘줘 말했다. 과거 한 선배로부터 ‘네가 고민한다고 보내는 몇 년, 대중은 이해해주지 않는다. 한국 배우들은 작품을 너무 안 하는데 흥행에 집착하지 말고 최대한 많이 하라. 남는 건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30년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를 언급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에서 톰 크루즈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15살이나 많은 아저씨가 뛰어다니는 것도 대단하고, 여전히 그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도 굉장한 일이라고 느꼈다”며 미소 지었다.

“지금은 장르물의 재미에 빠진 상태예요. 그래서 ‘앞으로 사랑 때문에 우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긴 합니다(웃음) 닭살스럽지 않을까요? 최근에 TV에서 KBS2 ‘가을동화’(2000) 재방송을 해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풋풋하던데요. 하하. 그런데 요즘에는 ‘가을동화’ 같은 멜로가 없잖아요. 같이 자란 남매가 알고 보니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누가 볼까 싶기도 해요. 시대가 변했으니까요. 그래도 유행은 돌고 돈다고 언젠가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다시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