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페미니즘 연극제 포스터
‘페미니즘 연극제’가 올해 두 살이 됐다. 올해 ‘페미니즘 연극제’는 6월 20일부터 7월 21일까지 관객을 찾았다. ‘코카와 트리스 그리고 노비아의 첫날밤’(극단 종이로 만든배)과 ‘마음의 법죄’(프로덕션 IDA), ‘너에게’(극단 907), ‘남의 연애’(프로젝트그룸 원다원), ‘달랑 한 줄’(극단 문), 이렇게 다섯 작품이 올라왔다.
또 네 개의 부대 프로그램으로 연극제의 다양성을 더했다. 이 작품들은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마로니에 공원 다목적 홀 등에서 진행됐다.
페미니즘 연극제는 페미씨어터 나희경 대표와 장지영 드라마투르그(연출가와 함께 작품의 해석 및 각색을 해 문학적인 조언과 레퍼토리 선택 등에 관여하는 사람) 등이 의기투합해 주최했다. 페미씨어터는 페미니즘 연극제 운영와 페미니즘 연극 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연 제작사다.
연극제는 관객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진행됐다. 올해 페미씨어터에서 진행한 텀블벅 모금은 당초 목표였던 1500만원을 넘기고, 약 430명의 후원자가 모여 총 1669만 원을 모았다. 이는 많은 이가 연극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미씨어터에 따르면 작년 열린 연극제 1회는 큰 수익은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연극제가 시작된 자체로 의미 있었다. 당시 페미씨어터는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 내 위계 문제, 성폭력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확산 되며 ‘페미니즘 의식’은 생겼지만, ‘페미니즘 연극’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연극계 페미니즘이라는 커다란 발자국을 새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연극제 1회에 오른 9개 작품은 다양함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 평등 문제부터 성폭력, 미투 운동까지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폭넓게 다뤘다. 극단 호랑이 기운의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는 연극계 미투 운동 이후 다른 태도로 살아보려는 배우 경지은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히기 망설여 하는 지옥이의 얘기다.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소극장에서 공연하던 배우 이리가 이리저리 떠돌다가, 일본 요코하마의 뱅크아트가와마타홀을 거쳐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무대를 펴는 얘기다. 연기, 오퍼레이팅, 홍보도 직접 하는 이리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건만남/기억이란 사랑보다’는 극단 애인의 작품이다. 소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차이를 다룬 작품이다. 인간의 진정한 이해에 대해 얘기한다.
극단 문의 ‘시골여자’는 4등분 된 한반도를 상상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극대화해 이를 국가재건에 사용하려는 시골여자의 계획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정치적 각성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상식적인 페미니즘이 비상식적인 한국사회와 만나 일그러지는 과정이 여성의 프레임으로 담았다.
창작집단3355의 ‘이방연애’는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퀴어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애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프로덕션 IDA의 ‘환희, 물집, 화상’은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주제를 풀어낸 작품이다. 연극에서 볼 수 없었던,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두 여성의 경험들이 페미니즘 이론과 얽히며 유쾌하게 전개된다.
극단 불한당의 ‘노라이즘’은 진규가 자신의 아내를 최고의 현모양처를 찾는 TV프로그램에 신청하면서 시작한다. 노라도 모르게 그의 일상이 TV를 통해 전해지고, 사람들은 노라의 모습을 보고 현모양처의 자격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프로덕션 IDA는 관객들이 노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각자의 인형의 집에서 박차고 나오라고 전한다.
무아미아의 ‘무례한 미아의 이동좌담회’는 세상의 무례함이 곧 페미니스트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 ‘아담스 미스’는 가부장적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에 관한 얘기다. 권력이 폭력이 되는 현실과,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세상에서 폭력적인 사회구조를 설계한 자에 대해 다룬다.
올해 2회는 ‘연대’를 주제로 꾸며졌다. 우선 ‘코카와 트리스 그리고 노비아의 첫날밤’은 생계형 킬러인 두 여성, 코카와 트리스가 의뢰인의 요구대로 한 남성을 납치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미스터리 심리극으로 다룬 극이다. 여성들의 불안과 공포를 통해 공동체의 비극적인 민낯을 드러냈다.
‘마음의 범죄’는 남편을 총을 쏜 막냇동생의 소식으로 인해 오랜만에 모인 세 자매에 관한 얘기다. 이들은 아빠의 가출과 엄마의 자살, 할아버지에 대한 애증, 불행한 결혼 생활 등 잊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페미니즘 연극제’ 중 가장 이상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너에게’는 10대 도미나트릭스 돌로레스, 30대 가정 조산사 엘레나, 40대 곤충학 교수 모건과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아기가 등장한다. 극 중 “난 약한 여자들을 경멸해. 약한 사람들은 다 싫지만, 특히 약한 여자들이 정말 싫어.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들. 비극 앞에서 용기도 자존감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그래서 난 최선을 다했어요.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말도 못해. 내가 당신 엄마라면, 난 진짜 자랑스러울 거야”라는 대사는 여성과 출산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너에게’는 분노에 휩싸인 세 여자가 아기를 통해 만나게 되는 과정 안에서, 여성이 사회에서 마주하는 여러 면모를 다양하게 그렸다.
프로젝트그룹 원다원의 버베이텀 1인극 ‘남의 연애’는 타인의 관계와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남의 연애’라고 하면, 쉽게 판단하고 얘기할 수 있다. 모든 연인이 아무 사건 없이 만나고 헤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같은 시선을 작품을 통해 ‘연대’라는 연극제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달랑 한 줄’은 제목대로 책의 ‘한 줄’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번역하던 명희가 책에 나오는 표현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번역을 중단하지만, 오히려 출판사에서 계약을 통보한다. 분노한 현주는 “문장을 바꾸자”라며 의지를 불태운다. 이는 ‘더 이상은 외면하지 않겠다’라고 외치고 투쟁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밖의 다양한 포럼을 통해 여성들의 생각을 나누는 기회도 가졌다. ‘페미니즘연극제X서울변방연극제’에서는 ‘연극을 퀴어링!’이라는 공동포럼을 통해, 주위를 둘러보면 퀴어 관련 예술가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고 전한다. 이밖에 ‘페미니즘연극제X연극비평집단시선’에서 내보인 ‘연극하는 페미니스트 모여라’는 다양한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연대를 만드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