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달랑한줄 포스터
페미니즘 연극제는, 여성의 관점에서 연극에 다가가고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연극제다. 여성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고, 재고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연극제를 주최한 페미씨어터 나희경 대표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연극제의 계기가 된 거 같다. 사건 이후로 좋아하는 연극이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 퀴어, 여성, 페미니즘 등 생각이 확장됐다”라고 말했다.
연극을 좋아하던 나 대표는 ‘좋은 극’이라고 판단했던 극들에 대해, 미투 등 일련의 사태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극에서 그려지는 여성이라는 대상에 불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로에는 남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작품이 허다하다. 여성 캐릭터는 그저 남성 주인공을 위해 희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물론, 극들이 하루아침에 여성 중심의 서사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런 역사를 인정하고 바꿔나가자는 거지, 남성 서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본 작품이 그랬으니까 자각하기 어려운 거다. 페미니즘 연극제를 안 했더라면 나도 김기덕의 영화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서사를 이해하려고 한 거다.”
여성의 시사가 적은만큼 여배우가 펼칠 기회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학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성별의 벽을 허문 젠더프리캐스팅이 늘고 있으니 말이다.
“젠더프리캐스팅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여배우가 남성 역할을 하면 여성 고유의 경험이 들어가지 못하지 않나. 때문에 남성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작품과 인물에 대해 다양한 시선이 공존한다. 반대로 여성의 서사에, 남자배우가 여성의 역할을 하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의 얘기’라고 해석할 거라는 거다. 여성이 극에 오르면 인간의 이야기보다 ‘여성 이야기’에 집중된다.”
올해 두 살을 맞은 연극제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내년에 오르는 3회에 대한 계획은 어떨까. 2회를 맞이하면서 더 고민이 많아졌다. ‘연대’라는 주제를 통해 열린 이번 연극제에 대한 고민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생각이 더 많아지는 거 같다. 1회 때는 작품 수도 많고 다양했는데, 2회는 주제를 제시하면서 작품 수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가려고 했다. 3회는 어떤 방향으로 연극제를 올릴까 고민이 많다. 내부에서 주제를 정하고 공모를 하는 것에 대해 물음표가 생겼다. 주제가 상상력 제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작품을 공모하는데 페미니즘과 상관없는 작품도 많이 들어와서 불필요한 행정도 많아지는 거 같더라. 반면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공모가 필요한 거 같기도 해서 고민이다.”
연극제가 아직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진 못한 점도 나 대표의 고민이다, 나 대표는 “대중에게 다가갈 것이냐, 아니면 더 깊게 얘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 선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남녀평등을 주장으로 시작하지만, 뒤틀려진 의견이 더해지면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늘어났다. 나 대표는 “‘여성 연극제’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페미니즘 연극제’라고 했을 때, 뒤틀리게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목소리를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에 다양한 의미가 있는 거 같다. 한국 남자들을 다 ‘한남’이라고 통칭하지 않지 않나. 각자 다르겠지만, 성 평등을 주장하는 거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 고유의 목소리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페미니즘 연극제’는 갈 길이 멀다. 일각에서는 ‘그들만의 축제’라고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만의 축제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 1회 때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우리가 안정적인 플랫폼을 잡고 명확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다. 관객들이야 관심이 있으면 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은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에 연극제의 의미는 충분하다. 하지만 페미니즘 연극제를 언제까지 올리고 싶으냐는 질문에 나 대표는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오래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연극제 안 해도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