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서울시가 충전 제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정책이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과 별 효과없는 '보여주기식 규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과연 전기차 100% 충전을 제한하면 화재를 줄일 수 있을까.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이후 서울시가 ‘전기차 80~90% 이하 충전 제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도 ESS(에너지저장장치)의 충전율을 낮춰 화재 발생을 줄인 사례가 있다며 서울시 정책에 찬성했다.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계는 이미 배터리에는 과충전을 감안한 충전 제한 설계가 이미 적용됐고, 충전율보다 제조불량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단락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 일러스트 (사진=DALL·E 생성)
■ 서울시, 전기차 충전제한 정책 추진…“ESS 충전율 낮춰 화재 줄어든 사례 있어”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작사는 전기차 소유자가 요청할 경우 90%로 충전 제한을 적용했다는 인정서까지 만들어주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전기차 소유자가 요청하면 제조사가 현재 3~5% 수준으로 설정된 전기차의 내구성능 및 안전 마진을 10%로 상향 설정하도록 하고, 해당 차량에는 제조사에서 90%로 충전제한이 적용됐다는 ‘충전제한 인증서(가칭)’를 발급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는 지켜야 할 규칙을 담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다음 달까지 개정해 배포할 예정이다. 이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단지 내 규약을 만들 때 참고하는 표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공영주차장 등의 공공 충전기는 충전율을 80%로 제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충전율을 제한하는 것이 전기차 화재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선 학계와 산업계 등에서도 일부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이 화재 예방과 내구성능, 안전 증가에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현시점에서 충전 제한이 전기차 화재 예방에 유의미한 방법이라 보고 전기차 90% 충전제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실제로 전기버스의 경우 배터리 수명 및 내구성 등을 고려해 제조사에서 내구성능·안전 마진을 15%로 설정해 85%로 충전을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기차협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서울시의 이번 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김 교수는 “지상은 그렇다 쳐도 지하 주차장의 경우는 전기차 충전율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제로 ESS(에너지저장장치)의 경우도 과거 대규모 화재 사건이 많았는데, 현재 충전율을 80% 이하로 낮추면서 화재 발생이 줄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선박회사들도 전기차 운송 시 배터리 충전율을 30% 이하로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기차 화재의 경우 원인 규명이 어렵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차단이 대책이 될 수 있다”며 “충전율 제한과 함께 전기차 운전자에 대한 인식도 바꿔줘 방지턱 통과 시 하단부가 닿지 않도록 한다든지 하는 안전운행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배터리 제조사의 경우 셀 검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하지만 전수 검사를 하지 않고 있어서 문제다. 배터리 셀 전수 검사를 의무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완성차·배터리사 “이미 과충전 방지 설정”…“화재는 불량·충돌단락 때문”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계, 전문가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미 배터리는 애초부터 과충전이 되지 않도록 내구 성능 마진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100% 완전충전이 실제로는 안전한 충전 용량보다도 더 밑으로 여유 공간을 두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는 이미 과충전이 방지되도록 제한한 용량을 한 번 더 제한하는 꼴이다.
현대차·기아의 자사 전기차 배터리 관련 자료에 따르면, 삼원계(NCM) 배터리는 g당 275㎃h를 담을 수 있는데, 배터리 제조사는 이보다 낮은 g당 200~210㎃h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한다. 여기에 전기차 제작사도 추가로 여유를 둔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 충전상태 화면에서 100%라고 쓰여 있더라도 실제로는 배터리가 완전히 채워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배터리 화재 주요 요인과 배터리 안전 설계 관련 이미지 (사진=현대차그룹)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납품 시 완전히 100% 충전이 안되도록 여유공간인 마진을 두고, 완성차 업체도 추가로 마진을 둔다”며 “이에 80~90% 충전을 추가로 또 제한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제조사는 또한 BMS(배터리관리시스템)를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해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BMW를 통해서 사용 가능 용량을 재조정하면 충전 여유 공간은 더 생긴다. BMS가 배터리 셀 중 전압편차가 생기면 이를 줄이기 위해 셀 밸런싱 제어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과충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안전 장치를 갖췄다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화재가 충전량보다 제조 불량, 외부 충돌에 따른 단락 등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배터리 화재는 제조 불량이나 외부 충돌 등에 의한 배터리 내부의 물리적 단락으로 높은 전류가 흐르면서 열이 발생하고 이때 화학물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산소나 가연성 부산물로 발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충전량이 화재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내부 물리적 단락이나 쇼트 발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충전율과 화재는 관련이 있지만 지배적인 원인은 아니다”라며 “100% 충전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최근 전기차 화재로 인해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 전기차 충전제한을 통해서라도 전기차 화재 예방에 상당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아파트 등에서 충전율 제한을 강제하면 전기차 소유자에 대한 차별 논란 등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충전율을 제한하면 전기차 소유주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짧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