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두 번째 새해가 밝았다.

“진~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을사년에는 좋은 소식만 들리길 바랍니다.”

양력 해가 바뀌어도 고환율까지 더해진 경제위기는 언제 끝날 지 모를 상황이고, 지난해 파산신청을 한 기업(법인)이 1940건으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라는 경제의 비상벨 소리만 들리니, 서민과 중소기업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희망의 끈을 다시 부여잡고 싶은 마음에 ‘진~짜~’ 새해는 이제부터라며 덕담의 메시지를 여기저기 돌린다.

작년 ‘미장’으로의 탈 ‘국장’ 엑소더스 행렬에 속만 쓰렸던 필자는 우리만 이리 위기인가 하며 글로벌 인터넷 바다를 헤매던 중, 걱정만 더하게 된 파이낸셜 타임즈의 ‘창조적 파괴는 쇠퇴하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마주했다. 자산 기준 상위 1% 기업이 1930년대에는 미국 경제(부)의 70%를 점유하였으나, 최근(2022년) 90%까지 집중도가 올라가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장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에서 필리프 아기옹(콜레주 드 프랑스, INSEAD) 교수는 창조적 파괴의 감소가 선진국들 전반의 생산성 증가를 둔화시키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등장한 큰 정부가 낮은 금리로 취약한 회사들을 떠받치면서 혁신은 더뎌지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역동성은 거대 기업에 가로막혀 현상 유지의 힘만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미국은 ‘넷플릭스’에 ‘오픈AI’라도 있지,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수년간 제대로 된 혁신 하나 없는 삼성을 여전히 ‘국민주’로 불러가며 목을 매고 있는 우리 경제는 어쩌란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긴긴 연휴를 음식과 씨름하며 보내다 들어가 본 사회관계망 서비스엔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로 벌써 난리가 나 있었다. 2023년 중국의 85년생 량원펑이 설립한 딥시크라는 인공지능(AI) 기업이 전 세계의 데이터를 먹어 치우고 있는 오픈AI의 챗GPT를 뛰어넘어 무료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는 것. 게다가 딥시크는 오픈AI가 1억 달러를 들여 훈련한 것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인 560만 달러로 챗GPT보다 더 정확한 벤치마크 테스트(79.8%)를 기록할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는 것.

아! 그래, 낙관적 편향에 걸릴지언정 ‘불가능은 없다’는 창업자 정신이야말로 이 위기의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 아닌가! 충격인지 희망인지 모를 호기심에 그게 다인가, 좀 더 냉정히 들여다 보았다. 자본력도, 기술도 햇병아리인 딥시크가 전 세계를 흔들 성과를 낸 핵심은 압도적인 연산효율성이었다. 소위 ‘전문가 혼합(MoE, Mixture of Experts)’ 기법을 활용해 특정 작업에 필요한 부분만 활성화하여 연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엔비디아의 저사양 GPU(H800)를 사용해 비용을 크게 절감하면서도 고성능 AI를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IT 전문가가 아니다. 더더욱 AI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딥시크의 기술을 이 이상 논하고 싶은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바는 좋지 않은 복잡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핵심’을 찾아 ‘세상에 있는 모든 기술’을 활용하는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컴의 면도날-가장 간단한 설명이 대개는 옳은 것’을 이용해 복잡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치고,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 정의하고 혼란과 비효율을 야기하는 복잡한 과정은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임무 완수(mission clear!) 하는 것, 그것이 인류 진보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는 공공기관에서 진흥의 업무를 하고 있다. 공공 섹터는 관료주의적 특성의 대명사로 자주 언급된다. 공공기관 업의 본질은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사회적 가치 실현'이며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경제적 효율성을 조화롭게 달성하는데 존재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과에 따른 엄청난 보상(혹은 책임)보다는 대과가 없으면 안정적 직무가 보장되는 직역의 특성이 아무래도 내내 하던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행태를 답습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의 본질적 목적을 변화무쌍한 시대에 맞춰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달성할 것인가를 매번 새롭게 시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수요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복잡하고 불필요한 절차는 과감히 생략하거나 AI에 줘버리고, 수요자의 의지나 핵심역량(가능성)을 발견하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는데 집중해야 내 업의 본질을 달성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조력자를 쓸 수 있게 국회에서 새로운 비용을 책정해 주어야 하고, 짧은 기간 내에 소수의 사람이 해내기 힘든 정성적인 평가는 민관이 협력해서 발굴·축적한 노하우(경험치)를 지원 과정 중 최대한 공유할 수 있도록 해 더 많은 이들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토양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것이 공급자의 자기만족이라는 관료주의적 행정에서 탈피해 모두의 경험이 더 큰 가치로 창출되는 생태계 진흥 아니겠는가.

창업지원 업무를 하다 보니 많은 투자자들을 만난다. 7년 이하 스타트업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소위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에는 정부 지원금은 그야말로 마중물 이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라도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잡길 바라는 마음에 공개 IR(기업설명) 자리를 다양하게 개최하고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그런데 가끔 스타트업과 시장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하는 자리에서 몇몇 투자자들이 허심탄회하게 해준 얘기에 매우 실망했던 적이 있다. 요지는 공개 IR을 보고 투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 기업 대표에 대한 정확한 레퓨테이션(난 됨됨이와 가능성이라 해석했다)이 조회되고 관리되는 관계 속에서 추천과 수 차례의 만남을 통해 대표의 비전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지, 그 의지와 추진력은 얼마나 상당한지에 대한 확신이 들 때 한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의 행사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가 많은 결실을 가져오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구나, 결국 신뢰를 줄 수 있는 기업들의 데이터와 창업가들과 창업생태계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에 기여를 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며칠이 지났든 한 달이 지났든 새롭게 결심하고 시도하는 그 때가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우리 모두 서로 격려하고 끌어주며 극복하고 기쁨을 함께 누리는 생태계를 올해도 더 풍성하게 만들어 보자.


■ 법학박사로 국회, 청와대, 공공기관을 두루 거치며 교육, 과학기술, 창업 정책을 다뤘다. 교육정책에 매진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정책에 얼마나 많은 이해와 갈등이 얽히고설킬 수 있는지 깊이 체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재직 시절엔 ‘창의교육’과 ‘교육기부’에, 창업진흥원에서는 ‘창업’과 ‘혁신’에 꽂혀 정부정책과 현장 사이에서 동분서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