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AI 반도체의 수요 증가로 인해 반도체 패키징 기술도 혁신이 요구되는 있다. 기존 수지 계열 기판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유리기판(Glass Substrate)이 급부상하고 있다. 유리기판은 열전도율이 뛰어나고 변형이 적으며, 더 얇고 넓은 기판 설계가 가능해 반도체 성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미 인텔, AMD, 브로드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강자들이 유리기판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SKC(앱솔릭스), 삼성전기, LG이노텍 등이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2024년 2300만 달러(약 334억원) 규모인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이 2034년까지 42억 달러(약 6조 1047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의 판도를 바꾸는 유리기판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패키징 기술은 성능 차별화의 중요한 요소다. 특히 AI 반도체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반도체 회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으며,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 담는 ‘멀티칩 패키징(MCP)’ 기술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수지 계열 기판은 열 내구성이 낮고, 칩 크기가 커질수록 기판의 휨 현상이 심해지는 단점이 있다. 또한 공간 부족으로 인해 더 많은 칩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유리기판은 열팽창 계수가 낮아 고온에서도 변형이 적고, 기판 내부에 수동소자(MLCC)를 내장할 수 있어 전체 높이를 낮출 수 있다. 이는 반도체 패키징의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인텔은 2030년까지 유리기판을 적용한 반도체 칩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AMD도 2028년 고성능 컴퓨팅(HPC) 반도체에 유리기판을 도입할 방침이며, 브로드컴과 엔비디아 역시 관련 기술을 검토 중이다.


중국 AI 반도체 저가 경쟁에도 CAPEX 투자 지속

최근 중국의 AI 챗봇 ‘딥시크(DeepSeek)’가 높은 성능을 저렴한 비용에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AI 반도체 하드웨어 수요 감소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딥시크는 ChatGPT와 달리 음성 모드와 같은 고급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며, 다국어 및 창의적인 작업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는 AI의 미래로 평가되는 범용 인공지능(AGI) 기술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사하며, AI 반도체 시장의 근본적인 성장세를 위협할 요소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AI 반도체를 포함한 하드웨어 시장에서의 자본적 지출(CAPEX) 투자는 지속될 전망이며, 이는 유리기판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유리기판 개발 경쟁

국내에서도 유리기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유리기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조지아 주에 1공장을 완공하고 2025년 하반기 시제품 생산을 계획 중이다. 삼성전기도 2024년 세종 사업장에 유리기판 제조 파일럿 라인을 구축했으며, 2026~2027년 양산 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또한 LG이노텍은 2025년 말부터 시제품 생산을 시작으로 유리기판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반도체 패키징 장비를 제조하는 필옵틱스, 테스트 소켓을 개발하는 ISC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유리기판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리기판 제조 공정의 기술적 과제

유리기판 제조는 ▲TGV(Through Glass Via) ▲구리 도금 ▲회로 형성 ▲ABF 필름 부착 ▲싱귤레이션 등의 복잡한 공정을 거친다. 특히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 TGV 공정에서는 균열을 방지하는 정밀 가공 기술이 필수적이다.

또한 유리는 금속과의 밀착력이 낮아 구리 도금층이 쉽게 박리될 위험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와이엠티와 씨앤지하이테크 등 국내 기업들이 밀착력 향상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필옵틱스는 유리기판의 싱귤레이션 장비를 자체 개발해 반도체 제조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유리기판,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으로 자리 잡나

유리기판은 고성능 AI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AP, 서버용 반도체 등 다양한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유리기판 도입을 검토하면서, 향후 10년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반도체 패키징의 차세대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AI 반도체와 같은 고성능 칩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리기판 시장은 성장 초기 단계에 있지만,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빠르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칠지 주목된다.


필자인 이재모 그로쓰리서치 대표는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1000개 이상의 기업을 탐방했고, 한국경제TV에 출연중이다.

[편집자주] 독립 리서치 기업인 '그로쓰리서치'의 기업 탐방 후 분석을 담은 내용입니다. 뷰어스는 글과 관련한 투자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