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미국 내 에너지 인프라 확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LNG 설비 중심의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가 잇따르며, 관련 핵심 부품인 피팅 산업이 국내 제조업계의 새로운 수출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철강 수입 쿼터 폐지가 맞물리며, 한국산 피팅의 미국 시장 재진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피팅은 액체와 기체를 운반하는 배관 시스템의 방향 전환이나 분기, 관경 변경을 위한 부품으로, 석유화학·조선·원자력 등 대형 설비 산업에 필수다. 고온·고압·극저온 환경에서도 안전성과 내구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정밀성과 품질 인증이 요구된다.
(자료=그로쓰리서치)
박현성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연간 2천만톤의 수출을 목표로 하며, 1,300km 이상의 가스관과 LNG 터미널이 신규로 설치돼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고내구성 피팅, 밸브, 강관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한국의 참여가 확정될 경우 국내 피팅업체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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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에너지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는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현재 FERC(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서 인허가를 받은 채 착공되지 않은 LNG 프로젝트의 총 용량은 17.61 Bcf/d에 달하며, 이 외에도 추가 신청된 용량만 6.58 Bcf/d에 이른다. 이는 2026년까지 미국이 LNG 수출 능력을 대폭 확대할 것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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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수입 정책 변화도 주목된다. 지난 3월 미국 정부는 기존 철강 쿼터제를 전면 폐지하고 모든 국가에 25%의 일괄 관세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한국산 철강이 일정 물량까지만 무관세로 수출됐으나, 이젠 다른 국가와 동일하게 적용되며 가격 경쟁력이 있는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수출을 유연하게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미국 내 생산 비중이 낮은 피팅과 강관은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적고 수요가 꾸준한 품목이다.
(자료=그로쓰리서치)
국내 제조사 중에서는 성광벤드와 디케이락이 대표적이다. 성광벤드는 북미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하며, 매출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고압·고온용 피팅에 강점을 보이며, 중동 아람코와의 납품 계약 등 글로벌 네트워크도 강화 중이다. 2024년 기준, 중동 가스전 수주도 이미 가시화됐다.
디케이락은 계장용 피팅과 밸브 전문 기업으로, 미국 에너지 대기업들과의 장기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현지 합작사 ‘DK-Lok America’를 통해 미국 내 생산과 유통 체계를 갖추며, 수출 구조를 안정화했다. 나아가 고부가 분야인 항공·방산 부문으로의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KF-21 전투기 시제기에 유압 피팅을 납품한 실적을 기반으로, 유럽과 중동 방산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이다.
중동 시장의 성장도 피팅 수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 UAE, 카타르 등에서 에틸렌 및 천연가스 설비 증설 프로젝트가 집중되며, 삼성 E&A 등 국내 EPC 업체와 함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피팅 제조사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S-Oil 샤힌 프로젝트, 신한울 3·4호기 건설 등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어지면서 내수 기반 역시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전 세계 피팅 시장은 2023년 기준 약 3조 5000억원 규모로, 유럽연합 45.6%, 중국 32.4%, 한국 15.1%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품질인증 체계와 고부가 제품 생산역량이 강점인 한국 업체들은, 기술력 기반의 글로벌 확장 전략을 통해 향후 시장 주도권을 더욱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박 연구원은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제품 믹스 개선과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통한 수익성 강화가 관건”이라며 “트럼프 2.0 시대의 정책 기조 변화는 국내 피팅 산업의 구조적 성장 기회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피팅 산업은 지금, 에너지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서 기술력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필자인 김주형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100개 이상의 기업을 탐방했고, MTN 머니투데이방송에 출연중이다.
[편집자주] 독립 리서치 기업인 '그로쓰리서치'의 분석을 담은 내용입니다. 뷰어스는 글과 관련한 투자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