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현대건설 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장기 성장 전략 ‘H-로드(Road)’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이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플랜트 등 에너지 중심 사업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하며 2030년까지 매출 40조원 달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연이은 안전사고와 영업적자로 인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그룹 전체 건설 부문의 균형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 원전·SMR 중심 에너지 포트폴리오 구축…“2030년 40조 매출 목표”

31일 현대건설에 따르면 이한우 대표는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장기 성장 전략 ‘H-로드(Road)’를 발표했다. 이 전략은 ▲에너지 트랜지션 리더(Energy Transition Leader) ▲글로벌 키 플레이어(Global Key Player) ▲핵심 역량 집중(Core Competency Focus)이라는 3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현대건설은 대형원전과 SMR, 수소 생산플랜트, 전력망 등 에너지 전환 관련 분야의 사업 비중을 현재보다 대폭 높여 전체 매출의 21%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 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미국 팰리세이즈 부지에 소형모듈원전(SMR-300) 1호기 착공도 앞두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홀텍 등 글로벌 원전 전문 기업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건설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태양광, LNG 등 에너지 부문과 데이터센터 사업에도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유럽·오세아니아 등 선진국 건설 시장에서도 고부가가치 프로젝트 수주를 확대해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넓힐 방침이다.

주택사업 부문에서는 층간소음 저감 1등급 기술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해 공동주택에 적용 중이며, ESG 기반의 미래 주거 모델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 같은 전략을 통해 현재 연간 17조5000억원 수준인 수주 규모를 2030년까지 25조원으로 늘리고, 영업이익률은 8%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의 에너지 관련 매출은 올해 약 5000억원에서 2030년 5조1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라며 “이 중 대형원전이 3조3000억원, SMR이 4000억원으로 원전 관련 매출이 약 73%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어 “대형원전 관련 올해 말 불가리아 원전 EPC 계약, 스웨덴 우협 선정 등을 앞두고 있으며, SMR과 관련해서도 연말 미국 팰리세이드 계약을 통해 SMR-300 최초호기 건설을 계획 중”이라고 분석했다.

■ 현대엔지니어링, 적자전환·부채…주우정 대표 ‘안전 리더십’은 아직 과제

문제는 현대건설의 청사진과 달리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심각한 경영·안전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2024년) 연결기준 영업손실 1조2401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의 품질 문제와 공기 지연에 따른 원가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도 243.8%까지 치솟았다.

더 큰 문제는 현장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2월 말 서울~세종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로 4명이 사망한 데 이어, 3월에는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 현장에서 각각 1명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달 새 총 6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현대엔지니어링을 대상으로 전국 단위 기획감독에 착수했다. 87개 건설현장 중 25개(약 30%)를 대상으로 4월 말까지 집중 점검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고 발생 원인과 안전관리 체계 전반을 면밀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는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지난달 25일 서울~세종 고속도로 공사 중 발생한 교각 붕괴 사고 관련 국통위 위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


이런 상황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토목·인프라 사업에서 철수를 검토 중이라는 일부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엔지니어링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모회사인 현대건설 역시 “종속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국내 토목사업 철수는 검토되고 있지 않다”며 전자공시를 통해 공식 해명했다.

사고가 반복되는 가운데 현대엔지니어링의 위기 대응이 재무구조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말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대표를 동시 교체하며 조직 쇄신에 나섰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의 새 대표인 주우정 사장은 기아 재경본부장 출신의 재무통으로, 위기 대응과 수익성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 “현대건설 전략, 현대엔지니어링 체질 개선 없인 한계” 지적

그러나 반복되는 현장 사망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나 안전 리더십 강화 방안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재무 회복과 조직 안정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안전관리 체계의 구조적 개편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브랜드 이미지와 기업 신뢰 회복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의 중장기 전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체질 개선과 현장 안전성 확보가 핵심 전제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원전 등 에너지 사업, 도시정비 사업, 복합 개발 사업 등의 매출이 늘어나며 매출 규모와 이익 레벨이 높아진다고 설명했지만, 연도별 달성 계획과 사업 부문별 목표 이익률이 제시되지 않아 가시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엔지니어링의 매출 및 가이던스는 기존 14조원에서 13조4000억원으로, 영업이익은 6331억원에서 3140억~6140억원 수준으로 하향됐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지난 보고서에서 ‘세종-안성 고속도로 붕괴 사고’ 관련 “인명사고가 발생한 만큼 토목건축 부문의 영업정지 행정처분 리스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며 “최근 유사 사고의 경우 영업정지 처분이 실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