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싶던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친 적이 있다. 우산을 챙기지 않아 멍하니 여의도 어느 빌딩 처마 밑에서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날씨 예보를 꼼꼼히 확인했는데도 이렇게 젖는구나’ 생각하며 웃음이 새어 나온 적이 있다. 우리는 알고도 속고, 모르면 더 속는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고 예측한다. 심지어 내일의 비를, 타인의 마음까지 ‘확실하게’ 예측한 결정이었기를 갈망하면서. 불확실한 세상에 살면서 확실성을 욕망하는 인간. 이 모순이야말로 우리를 자주 곤경에 빠뜨리는 함정일 수 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어렸을 때 동전을 던져 앞면이 연달아 다섯 번 나오는 걸 보고 “이번엔 뒷면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동전에게 차례 따위는 없다는 사실, 앞면과 뒷면의 확률은 언제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른이 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컨설팅 업무로 기업의 미래를 분석할 때마다 나는 숫자 뒤에 숨어 있는 불확실성을 단호히 인정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이번엔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라는 말을 기대하는 눈빛을 마주하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흔들린다. 인간은 ‘확률’이라는 냉정한 언어보다 ‘확실’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더 쉽게 귀를 기울인다.

확실성을 붙잡으려는 욕망은 때로 편향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성공한 창업가의 이야기를 듣고 ‘저 방법이 정답’이라고 믿는 생존 편향, 듣고 싶은 이야기만 수집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확증 편향, 내 경험과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과잉 확신. 모두가 마음의 평온을 사수하기 위한 방어기제일지 모르나 정작 현실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독이기도 하다. 날씨 앱이 ‘강수확률 30%’라 했을 때 우산을 챙길지 말지 고민하다가, 귀찮음을 이유로 우산을 두고 나오는 순간처럼 말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축소시켜 심리적 안정을 얻고, 일이 틀어지면 “운이 나빴다”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렇게 반복된 확실성 중독은 통계·데이터·경험이라는 나침반을 잃게 한다.

반대로 확률적 시각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주사위는 한 번 던져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스무 번, 서른 번 던져야 그제야 1과 6이 비슷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도 그렇다. 단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에 삶 전체를 던지지 않고, 사건을 ‘분포’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혜가 열린다. 혹시 모를 소나기를 대비해 작은 우산 하나쯤 가방에 넣는 것이, 평균 기온만 보고 ‘따뜻하겠지’ 하며 외투를 벗어 던지는 것보다 훨씬 이성적이다.

확률적 사고가 나에게 가르쳐 준 첫 번째 교훈은 유연함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신념을 업데이트하고, 정보가 바뀌면 방향도 수정한다. 베이즈 통계의 어려운 수식이 아니라, “모른다”를 출발점으로 삼고 “조금씩 알아 간다”로 매듭짓는 태도다. 두 번째 교훈은 다중 시나리오다. 미래는 하나의 길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 손익을 여럿 그려 놓으면, 한 길이 막혀도 다른 길에서 숨 쉴 공간이 생긴다. 세 번째는 꼬리를 보는 습관이다. 평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극단의 상황, 블랙스완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작은 보험과 안전망을 미리 엮어 두게 된다.

친한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뭔가 확실해야 결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냐?”라는 반문이 온다. 맞다. 확률은 우리의 결정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러나 결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 곧 결정을 잘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확률적 시각은 결정을 성찰하게 만든다. 성공 확률 70%, 실패 확률 30%라는 숫자를 입에 올려 보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30%의 실패가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것이야말로 확실성의 독에서 벗어나는 해독제다.

비가 쏟아졌던 그날,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불쾌했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가벼워졌다. ‘예보가 빗나갈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자, 소나기는 더 이상 배신자가 아니다. 그저 구름의 일시적인 변화였을 뿐. 나는 빗속을 달리던 사람들 틈에 섞여 느긋이 걸었다. 흠뻑 젖은 풍경이 어쩐지 낯설지만 아름다웠다.

세상은 오늘도 확률로 숨 쉬고,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그 확률의 일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확실함을 찾아 헤매느라 지친 마음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이렇게 속삭여 보자.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만큼 알아 갈 것이다.” 그 겸손하고도 단단한 문장이, 불확실성의 파도를 넘어서는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김종선 대표는 경영학박사로, 현재 기업 경영 자문 및 밸류업 관련 전문컨설팅회사를 운영 중이다. 지난 30여년간 코스닥협회 등에서 상장회사관련 제도개선 및 상장회사 지원 업무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초기기업부터 상장회사까지 성장 과정 전반에 관한 전문적 자문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벤처 및 상장회사 관련 제도개선에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