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지연, 공사비 상승, 인력난, 탄소 배출, 안전사고까지… 전통 건설 방식의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를 대체할 기술로 공장 제작·현장 조립 방식의 ‘모듈러 건축’이 주목받는다. 시공 속도, 품질, 친환경성에서 앞서며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전자·에너지 기업도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는 모듈러 산업의 현재와 글로벌 확장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GS건설 모듈화 주택 관련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여기, 27일 만에 완공된 아파트가 있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렸죠.”
인천 강화군 신문리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유튜브 영상이 140만회 이상 조회되며 업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GS건설 자회사 자이가이스트가 시공한 ‘강화신문2단지 행복주택’을 소개한 이 영상은 기존 철근콘크리트 방식이라면 최소 10개월 이상 걸릴 아파트 시공을 단 27일 만에 마친 과정을 보여준다.
4층, 3개 동 규모의 130세대 공동주택은 크레인이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모듈을 순차적으로 배치하고, 수직으로 적층해 조립하는 ‘스틸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졌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듯 진행되는 시공 방식은 단기간에 고품질 주택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불린다.
GS건설 모듈화 주택 시공 모습 영상 갈무리.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 공사장이 아닌 ‘생산 공장’에서 지은 집
모듈러 건축은 전체 구조물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후, 현장에서는 조립만 진행하는 공법이다. GS건설이 적용한 스틸 모듈러 방식은 철골 프레임과 바닥 슬래브, 천장과 벽체 패널, 설비와 전기 배선까지 사전 설치한 모듈을 공장에서 만든 후 이를 현장에 운송해 조립한다.
강화도에 조성된 해당 단지는 욕실 타일, 주방 수납장, 콘센트, 배관까지 마감된 모듈을 반입해 조립 후 배관과 전기 연결, 조경 및 도로 시공 등만 현장에서 마무리했다.
특히 시공 중 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이 거의 없어 안전사고 위험도 낮다. 툭하면 중대사고로 들여오는 건설업계에 획기적인 해결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기초 공사와 모듈 제작을 병행해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했고, 마감 오차가 거의 없어 품질에서도 기존 아파트와 차이가 없다”며 “현장 작업이 줄어들면서 인건비 절감과 공정 계획 수립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GS건설 모듈화 주택을 공사장이 아닌 공장에서 시공하는 모습 영상 갈무리.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 탄소 줄이고 폐기물도 감축…친환경 건축의 전환점
모듈러 건축의 가장 강력한 강점 중 하나는 ‘친환경성’. 기존 현장 중심 공법과 달리, 자재 낭비가 적고 건설 폐기물도 줄인다. 대형 장비 운송이나 콘크리트 양생 과정이 없어 탄소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GS건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회사 GPC를 통해 ‘광물탄산화 방식’의 탄소 저감 콘크리트를 상용화했다. 이 기술은 콘크리트 제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를 주입해 시멘트 사용량을 줄이고 구조 강도는 높이는 방식이다. 탄소배출 저감과 강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GPC는 해당 콘크리트 제품군으로 환경부 환경성적표지(EPD) 인증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제품 생산 시의 탄소발자국·자원발자국·오존층 영향 등을 수치로 관리하고 있다. 또 주요 자재인 스틸은 해체 후 최대 90%까지 재활용이 가능해 설치와 해체, 재사용 모두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GS건설은 “모듈러는 단지 빠르게 짓는 방식이 아니라, 시공에서 해체까지 전 생애주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법”이라며 “ESG 경영에도 최적화된 미래형 건설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GS건설이 시공하고 LH가 발주한 ‘강화신문2단지 행복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모습.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GS건설 모듈러 주택 내부 모습. (사진=GS건설 유튜브 채널)
■ 편견을 넘은 고성능 주택…내화·내진도 충족
과거 모듈러 주택은 컨테이너처럼 임시 시설로 인식됐다. 또 화재·내진 성능에 대한 의구심도 많았다. 그러나 GS건설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
먼저는 화재에 강한 구조 확보를 위해 공장 사전 내화 처리를 도입했다. 기존처럼 현장에서 석고보드를 여러 겹 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공장에서 내화제를 도포해 시공 시간은 줄이고 품질은 높인 것이다. 이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으로부터 ‘3시간 내화 인정’을 획득하기도 했다. 고층 아파트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GS건설은 설명했다.
또한 이 회사의 특허 기술인 ‘퀵커넥터’를 통해 모듈 간 접합의 구조 안정성도 확보했다. 이는 별도 볼트 조임 없이 모듈 자중을 활용해 체결하는 방식이다. 수평·수직 하중 모두에 대응하며 내진 성능까지 충족한다. 모듈 단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동이나 변위도 최소화됐다.
■ 유럽 BTR 시장 선점…글로벌 무대로 확장
GS건설은 이러한 모듈러 기술을 국내 실증을 마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영국의 철골 모듈러 전문기업 엘리먼츠유럽과 폴란드 기반의 목조 모듈러 기업 단우드를 인수해 유럽 시장 교두보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해외 사업이 영국 캠프힐 프로젝트다. 총 550가구 규모로 영국 내 최대 규모의 BTR(Build To Rent) 즉 모듈러임대주택 단지로 꼽힌다. GS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설계부터 생산, 시공, 유지관리까지 일괄 수행하는 턴키 EPC 모델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플랫폼 기반 주택 공급 체계로 전환하는 의미가 있다. 나아가 GS건설은 유럽 외에도 독일, 북유럽, 중동 등 고속 도시화 지역의 주택난과 공공 수요를 겨냥한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병원, 학교, 재난 대응 시설, 에너지 기반 모듈러 플랜트 등으로 포트폴리오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허윤홍 GS건설 CEO가 영국 엘리먼츠와 인수계약서 서명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 (사진=GS건설)
■ 허윤홍 사장의 결단…“건설의 제조업화를 선언하다”
이처럼 GS건설이 선제적으로 모듈러 산업을 육성하게 된 데는 허윤홍 대표이사 사장의 전략적 결단이 있다. GS그룹 창업주 고(故) 허만정 회장의 증손자인 그는 전략기획본부장을 거쳐 2020년 GS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건설의 산업화를 넘은 제조업화”를 핵심 비전으로 내세웠다.
허 사장은 전통적인 설계·시공 중심의 건설 모델이 인력난과 탄소 규제, 시장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판단으로 모듈러를 새로운 산업 전환의 축으로 꼽았다. 그가 강조하는 방향은 단순한 공법 혁신을 넘어서 설계-제조-운영을 통합한 플랫폼 산업으로서의 건설이다.
그의 지휘 아래 GS건설은 스틸 모듈러, 목조,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등 구조체별 공법을 고도화했다. 설계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생산 시스템, 구조 안정 기술, 친환경 인증 체계까지 수직 계열화 역량을 갖췄다.
허 사장은 “모듈러는 단순한 틈새 기술이 아니라, 건설업이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라는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도구”라며 “ESG 경영과 스마트 건축, 글로벌 주거 플랫폼 구축을 연결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 모듈러, 대세가 될 이유는 ‘정책적 유연성’…공공주택·재건사업 등에도 적합
한국에서 모듈러 건축은 아직 전체 주택 시장의 0.5% 미만을 차지할 만큼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러나 GS건설의 강화도 사례와 같은 실증 현장은 그 인식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모듈러 방식은 단순히 빠르게 짓는 것이 아니라 인구 고령화나 주택난, 재난대응 등 다변화된 수요에 맞춰서 유연하게 주거를 제공하는 데 적합하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공공주택, 사회간접시설, 재건 프로젝트 등이 그 예다.
실제로 최근 포스코이앤씨가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을 위한 모듈러 의료시설과 학교, 주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GS건설도 유럽·중동 등지에서 이러한 수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응급 주거, 병영 생활관, 이동형 병원 등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높다.
GS건설은 모듈러 기술을 기반으로 단독주택을 비롯해 세컨드하우스, 은퇴자주택, 관광용숙소, 스마트홈플랫폼까지 제품군을 늘려가고 있다. 단순한 건축 공법의 변화를 넘어서 미래 주거의 방식과 구조 자체를 새롭게 바꿔보려는 전략이다.
향후엔 가전과 AI, IoT 기술까지 결합된 스마트 모듈러 주택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GS건설은 스마트홈 연동 솔루션이나 에너지 자립형 구조, 공장 자동화 생산라인 등과의 결합을 통해 ‘집을 조립하는 시대’로 건설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