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문한 SK디앤디의 디앤디프라퍼티솔루션(DDPS)가 운용하는 주거브랜드 '에피소드'의 여덟번째 공간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사진=손기호 기자)

"Not a house but a home. Make your own episode."
"집(건물)이 아니라 홈(가정)입니다. 당신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보세요."

지난 7일 기자가 방문한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는 18층 외벽에 새겨진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닌, 정서적 안식처이자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공간이라는 의미. '에피소드'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정체성을 응축해 표현한 한 문장이다. 에피소드는 SK디앤디의 자회사 디앤디프라퍼티솔루션(DDPS)이 운용하는 주거 브랜드다. '더 나은 도시 생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옆 벽에는 층별 안내가 손글씨로 적혀 있어, 마치 누군가 낙서를 남긴 듯 친근한 인상을 풍긴다. 딱딱한 아파트나 오피스의 일반적인 안내문과는 달리,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창의적인 환경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SK디앤디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루프탑 정원, 2층 ep라운지, 7층 포커싱 공간(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손기호 기자)

■ 도심 속 루프탑 정원과 창업 라운지, 새로운 커뮤니티의 중심

가장 먼저 둘러본 공간은 루프탑.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18층의 루프탑은 단순한 옥상이 아니라 정원이자 산책로이며 휴식처다. 초록 잔디와 나무가 어우러진 루프탑에서는 신촌 일대뿐 아니라 여의도까지 볼 수 있다. 도심 속이지만 옥상에 평온한 자연을 구현해 입주자들에게 힐링과 재충전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2층 ep라운지는 공부하기에 딱 좋고 창업 아이디어가 샘솟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개방형 세미나룸, 미팅룸, 라운지, 오픈 키친 등이 마련돼 있다. 펍 감성의 조명과 가구, 계단식 좌석으로 구성된 세미나공간에서는 정기적으로 강연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열린다.

창업자를 초청한 토크 콘서트, 입주자 간 문화 교류 행사, 프로젝트 팀 미팅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입주자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협업의 기회를 만든다. 방문 당시 라운지에선 입주자 5~6명이 회의하거나 각자 업무·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각자의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커뮤니티 공간인 셈이다.

SK디앤디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셰어형 주거공간 1인 룸, 창가, 공용공간 복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손기호 기자)

■ 새로운 시도 '셰어형'…한국의 마크 저커버그 나올까

주거 공간은 크게 셰어형과 단독실형으로 나뉜다.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에서 처음 시도된 셰어형은 4~5명이 하나의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면서 개인 방을 갖는 구조다. 화장실은 2개가 마련돼 있고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복도 외부에도 공용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거실과 주방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룸메이트 간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셰어형 구조는 한국 1인 주거 문화에는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DDPS 공간콘텐츠파트 손실율 매니저는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한 한국인의 정서상 아직은 실험적일 수 있지만, 창업을 한 이들에게는 자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재밌는 기숙사 생활이 될 수도 있다"며 "반응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와 함께 페이스북을 창업했다. 공동의 비전과 아이디어가 싹틀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도 셰어형 주거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과제를 함께 하고, 창업 아이디어를 나누는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셰어형은 4~5인 기준, 컴팩트·커뮤니티·스튜디오 타입으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 90만~120만원대 수준의 임대료다. 비싸 보이지만 입지와 커뮤니티 공간을 감안하면 적절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원룸이 월 50만원대이고, 공유오피스도 월 40만원대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거실과 욕실 등 공용 공간은 1주일에 1~2회씩 청소 서비스도 있다. 각자의 방은 스스로 청소해야 한다.

단독실형의 임대료는 월 350만원 선으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직장인들에게 적합한 고급 옵션이다. 손 매니저는 "신촌 캠퍼스는 기본적으로 청년 캠퍼스 생활을 타깃으로 설계됐지만, 실제 입주자 중에는 40~50대의 디자이너나 프리랜서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다"며 "연령대와 직종이 다양화되면서 커뮤니티 프로그램 운영에도 그만큼 유연성이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침대틀과 옷장, 책상, 에어컨은 기본 제공된다. 침대 베드와 기타 가구 등은 구독서비스를 통해서 별도로 구비할 수 있다고 한다.

SK디앤디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공용공간들. 4층과 3층을 합친 릴렉싱 공간은 개방감이 높고 교류할 수 있는 곳이다(왼쪽 위). 별도의 파티룸인 개더링공간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오른쪽부터 시계방향). (사진=손기호 기자)

■ 공용주방·도서실에 보안까지…라이프스타일의 고급화

공용공간도 다양하다. 입주자가 자유롭게 요리할 수 있는 대형 쿠킹룸은 싱크대, 전기레인지, 오븐, 조리기구 등이 완비돼 있다. 동시에 여러명이 요리해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다. 각 세대별로는 주방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쿠킹룸을 통해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이곳에서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식사만큼은 혼밥이 아니라 입주자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세대별로 세탁기가 제공되지만, 대용량 세탁을 위한 공용 코인세탁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7층의 포커싱 공간은 작은 도서실 같다. 제휴 도서업체를 통해 추천하는 책들도 비치돼 있다. 3층의 릴렉싱 공간은 간단한 음료나 간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적절하다. 이곳에선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다. 입주자들의 교류 장소로 활용된다.

보안을 위한 설계도 돋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QR코드를 입력해야 주거공간이 있는 층이 눌러진다. 셰어형 호실 각자의 방에도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는 잠금장치가 돼 있다.

지하에 별도로 마련된 택배 보관실도 QR코드로 열 수 있도록 했다.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막는 구조다. 다만, 택배기사가 이 공간에 접근하기 위해 임시 QR코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라서 택배기사 입장에선 물건을 택배실 문 앞에 두고 가버릴 수 있는 우려는 있다.

또 체육시설도 택배실 옆 좁은 공간에 러닝머신 2대와 사이클 3대 정도로 구성돼 소규모였다. 운동에 관심 있는 입주자에겐 아쉬울 수 있는 점이다.

손 매니저는 "신촌 캠퍼스의 경우 대학생 위주 구성에 따라 학업과 창업 집중형 공용공간을 우선했고, 직장인 중심 지점에는 요가룸이나 웰니스 공간을 좀 더 크게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디앤디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 리스닝룸. 주문제작한 스피커와 빔프로젝터가 설치된 공간이다. 빈소파가 놓여져있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거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도 할 수 있다. (사진=손기호 기자)

■ 급변하는 서울 월세 속, '같은 값에 더 나은 생활' 제안

에피소드 신촌은 특히 입지 면에서 경쟁력이 크다.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주요 대학가에 인접해 있고, 실제 연세대와 서강대와는 B2B(기업간거래) 계약을 체결해 '학교 밖 기숙사'로도 기능하고 있다.

SK디앤디 김희은 매니저는 "대학과 B2B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공실률은 제로(0)"라며 "신촌 등 학교 주변의 에피소드들은 100% 입주를 완료하는 편"이라고 했다.

역발상이다. 서울에서 집 구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값이면 좀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해주겠다는 점으로 임대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에서는 임대차 계약 65%가 월세다. 최근엔 서울 외곽 아파트도 월세 200만원 이상, 원룸 평균 월세가 72만원에 달한다.

SK디앤디는 '같은 값이면 더 나은 삶을'이라는 메시지로 2030 청년층과 4050 전문직 1인 가구까지 겨냥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회사는 그간 개발사업 위주로 하다가 임대 운용까지 아우르는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SK디앤디가 '에피소드' 브랜드를 운영한 지는 5년이 됐다. 현재 신촌, 성수, 강남, 수유, 용산, 서초 등에서 에피소드를 운영 중이다. 이미 잘되고 있는 곳을 인수하는 것도 노하우다. SK디앤디는 올해 3월, 국내 최대 코리빙·코워킹 기업인 로컬스티치를 자회사 DDPS를 통해 흡수 합병했다. 이로써 전문적인 주거·업무 공간 운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사업 성과는 적중했다. 지난해 SK디앤디의 매출은 870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26% 성장을 달성했다. 매출 1조원 달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에피소드에서는 각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주거 공간은 공동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혼자 살지만 함께 사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주거를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곳인 셈이다. 에피소드 신촌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