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리지에 울고 웃던 시대는 지났다. 자산시장으로의 머니무브가 새로운 전환점이 되면서 증권사들이 고객 자산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뷰어스는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자산관리 부문 전문가들을 만나 현재 시장에 대한 진단, 대고객 전략 등을 물었다.
(사진=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이뤄진 박재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 인터뷰 모습. 한국투자증권 제공)
■ 80조 넘긴 고객금융자산, 한투 문 두드리는 글로벌 금융사들
말 그대로 뭉칫돈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잇따라 한국투자증권의 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글로벌 상품 라인업이 강화되면서 잠든 사이에도, 휴일에도 돈이 불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이 자산관리(WM) 시장에서 제대로 바람을 탔다.
9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 금융자산은 81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이후 매년 24% 가량 늘어나던 고객자산은 올해 들어 증가폭을 더 키웠다. 매달 새로 들어오는 자금만 평균 1조5000억원 규모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금리 인하 기조에다 국내 정부 정책으로 인한 자산시장으로의 자금이동 가능성을 감안하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16일 박재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전무)은 뷰어스와 인터뷰를 통해 “비대면 거래 확대에 따른 수수료 수익 감소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예고됐었다. 때문에 개인고객의 금융상품자산과 해외자산에 역량을 집중하는 WM 강화 전략을 추진해왔고, 그 효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자산 확대에 효자노릇을 한 상품은 크게 두가지다. 국내에선 발행어음, 해외자산은 특화된 글로벌 금융사들과 협업을 통해 공급되는 상품 라인업이다.
박재현 전무는 “발행어음은 처음 한국투자증권을 찾는 투자자들이 먼저 접하게 되는 대표상품이 됐다”며 “정해진 기간동안 정해진 금리를 제공하는 발행어음을 통해 은행 고객들도 ‘증권사가 주식만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인식과 함께 거래를 시작한다. 만기 이후 해당 자금으로 전단채, 달러 채권 등으로 자산을 확장하는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골드만삭스, 칼라일 등 글로벌 운용사와 협업한 단독 상품과 손익차등형 펀드, 발행어음 등 당사만의 특화된 상품을 통해 고객에게 우수한 상품을 제공한 것 역시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전무는 매달 이 정도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금융사는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처음엔 글로벌 금융사들의 장벽이 높았지만 넉넉한 고객 자산을 바탕으로 한국투자증권의 판매능력이 증명되자 굴지의 운용사들이 먼저 한국투자증권을 찾는다는 것. 실제 올해 MAN그룹, 칼라일그룹, 캐피탈그룹, JP모간 등 글로벌 금융사들의 한국투자증권 본사를 방문한 횟수만 여덟차례에 달했다.
(사진 =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왼쪽)과 댄 왓킨스(Dan Watkins) JP모간 아시아태평양 CEO가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나 전략적 비즈니스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지난 2023년 9월 칼라일과 협업을 통해 CLO 펀드 라인업을 추가한 것을 시작으로 2년간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글로벌 금융사 단독 상품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한다. 특히 지난 8월 말 설정된 골드만삭스 미국테크펀드는 설정 첫날 2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되는 흥행을 기록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박 전무는 “내달 골드만삭스와 MOU를 통해 선보이는 세번째 상품인 글로벌하이일드인컴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며, 이달 말 파트너스그룹에서 운용하는 인프라펀드에 투자하는 일반사모펀드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며 “점진적으로 인프라, 헤지펀드 등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하는 상품들을 공급해 고객 포트폴리오 다변화, 분산효과 증대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금융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이제 태동기일 뿐”이라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자사 고객 금융상품자산이 내년 100조원을 넘어선 뒤 5년 뒤인 2030년 200조원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해외주식 등 주식 자산을 포함해 350조원 이상 규모가 된다면 글로벌 증권사들과 견줄 수 있는 PB하우스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다.
박 전무는 “현재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은퇴 후 생활자금을 위해 비금융자산을 현금화하거나 자녀들에게 승계하는 과정에서의 현금화 등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에 집중됐던 자산이 큰 흐름에서 이동하고 있다”며 “특히 국내 시장의 경우 현 정부의 증시 육성 정책과 맞물려 시중의 유동성이 투자 자산으로 이동하는 초기 국면에 있는 만큼 현금에서 자산으로 이동하는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사진=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이뤄진 박재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 인터뷰 모습. 한국투자증권 제공)
■ '운용능력'으로 판가름 날 IMA 경쟁도 '자신만만'
종합투자계좌(IMA) 인가는 한국투자증권의 이 같은 성장세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치트키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월 IMA 인가 신청을 완료한 상태로 연내 인가 획득 시 IMA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수익률로 승부수를 던지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박 전무는 “원금 보장에 추가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드리는 상품인 만큼 IMA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용 능력이다. 한투증권은 이미 발행어음 시장에서 운용 능력을 검증받았고 기업금융(IB) 부문에서 쌓아온 다양한 기업들에 대한 네트워크 등이 무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2017년 업계 최초로 발행어음 인가를 획득한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현재 2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일각에서는 만기 불일치 등에 따른 리스크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8년째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함으로써 되레 한국투자증권의 운용능력을 증명하는 성과된 셈이다.
그는 “각 사가 IMA 1호를 판 뒤 어디에 투자할 지가 중요한데 정해진 만기 사이클에 맞춰 안정적인 비중으로 다양한 모험자본에 투자하고 이것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 능력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우리는 이미 발행어음 시장을 통해 많은 경험과 운용 능력을 검증해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국내 투자 시장의 우호적인 환경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전무는 “지속적인 거버넌스 개선과 세제 및 규제 인프라 개편, 혁신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 등이 뒷받침된다면 코스피 5000시대도 가능할 것”이라며 “Cash is trash(현금은 쓰레기다)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 상황을 기회로 삼아 전략적으로 투자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