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전력망 확충을 둘러싼 글로벌 투자 확대, 중국의 경기부양 기대가 겹치며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슈퍼사이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철강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다. 수요 회복 조짐과 원가 리스크의 증폭이 동시에 진행되며 업황의 방향성을 한층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수요는살아난다”…글로벌 철강업, 5년 만의 전환 기대감
현대차증권이 17일 발표한 ‘2026년 철강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전 세계 철강 수요는 전년보다 1.4% 증가하며 성장세로 전환할 전망이다. 중국·미국의 경기 회복과 함께 인도의 6~7% 고성장이 유지되고 유럽(EU)도 기저효과를 기반으로 3%대 반등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철금속 시장 역시 ‘완만한 슈퍼사이클’ 진입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달러 약세 전환과 함께 비철금속 가격이 우상향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AI 데이터센터와 초고압 전력망 확충으로 구리가 아연 대비 더 뚜렷한 구조적 수요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 AI 시대의 역설…판로는 늘어도 ‘광물 가격’은 더 불안해졌다
철강은 대표적인 ‘원가 민감형 산업’이다. 철광석·석탄·스크랩 가격 변화가 이익률을 순식간에 좌우한다. 문제는 AI 산업의 고도화가 이러한 변동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건설, 변전소 증설, 초고압 케이블 투자 등 전력 인프라 재편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철광석·구리·니켈·망간 등 AI의 기초 소재로 여겨지는 광물들의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했다. 그만큼 시장 가격 변동 폭도 커지고 있다.
최근 철광석 가격은 톤당 120~140달러대 박스권에서 움직이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하루 변동 폭이 3~5%에 달하는 날도 적지 않다. 글로벌 광물 수급이 일시적 불안이 아니라 구조적 변동성 시대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중국의 ‘시만두 카드’…철광석 가격 주도권의 지각변동
철광석 시장의 격변은 단기 수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서아프리카 기니의 초대형 철광석 광구 ‘시만두(Simandou)’ 개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원료 시장의 지형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시만두는 매장량·광질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광구로, 상업 생산이 본격화되면 연 1억2000만 톤 이상이 시장에 공급될 전망이다. 이는 전 세계 해상 철광석 물량의 약 7%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은 WCS 컨소시엄 지분 확보를 통해 개발 지배력을 강화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호주·브라질 의존도를 낮추고 철광석 가격 협상력을 강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중국 철강사의 원료구매 구조가 바뀌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철광석 가격의 기준점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 국내 철강사의 고민…고로 중심 구조가 만든 원가 압력
국내 철강 산업은 고로 중심 구조로 철광석·원료탄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포스코는 전통적인 고로 기반의 회사로 탄소 절감을 위한 최종목표 기술로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상용화 전 단계라 중간 단계인 전기로 전환이 더딜 경우 원가 스파이크가 발생해 수익성이 즉각 흔들릴 수 있다.
현대제철은 고로·전기로 혼합 체제지만 중국발 원료 가격 상승기에는 고로 부담이 부각된다. 조선·건설 수요 회복 흐름이 나타나더라도 원가 변동폭이 이를 압도하면 실적 가시성은 낮아질 수 있다.
■ AI 시대 철강업 ‘기회와 리스크의 동시 진입’
AI 데이터센터·전력망·전기장비 투자는 한국 철강사들에 분명한 기회다. 전기강판·후판·형강 등 다수 제품군에서 수요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기초 광물의 전략 가치가 커지고 그만큼 시장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조다.
AI가 철강제품 수요를 늘리는 ‘기회’라면 광물대란은 그 기회를 잠식할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인 셈이다. AI 시대의 광물 수급 변동성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변동성’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철강업계의 대응은 지금보다 더 근본적인 방향을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