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발빠른 기업부터 저녁 있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꿈꾸게 만드는 서비스 업계들의 프로모션까지, 워라밸 기류는 심상치 않다.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삶의 질을 말하는 이들의 바람이 더해졌기 때문. 실제 다양한 설문조사에서 대중은 일의 양보다 질이 높기를 바라고, 높은 연봉보다는 저녁 있는 삶을 꿈꾼다는 결과가 나왔다. 박봉에 저녁마저 없었던 이전의 현실을 넘어 워라밸 바람은 우리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편집자주
[뷰어스=문서영 기자] 여기저기서 워라밸 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들은 벌써부터 유연 근무제 등을 도입해 워라밸 기류에 발맞추려 한다. 서비스 업계에서는 저녁 있는 삶을 통해 다양한 취미 생활과 개인적 포부를 도모하려는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들을 도입 중이다. 이 가운데 워라밸의 장점과 단점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 "불필요한 시간 사라진다"
베스트셀러 작가 팀 페리스는 자신만의 성공방식과 워크 라이프(Work Life)를 담은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파킨슨의 법칙을 강조한다. 어떤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짧을수록 집중력과 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팀 페리스는 중요한 일로만 업무를 채워서 근무 시간을 줄일 때 업무적으로 시너지가 일어나고 자신의 시간이 확보된다고 말한다. 기업과 개인 모두 윈윈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워라밸과도 직결된다. 최근 유통 업계부터 워라밸 바람이 불었다. ‘9 to 5’ 제도는 물론이고 사내 업무 컴퓨터가 퇴근 시간을 넘기면 꺼져 버린다. 이에 대해 “업무량이 타이트해졌다”는 이들이 많다. 쓸데없는 보고 절차가 없어지는가 하면 보고서로 대체할 수 있는 미팅이 잡히지 않으며 회의 자체가 필요한 부분으로 축소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 개개인도 업무시간 내에 일을 해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사라졌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이렇듯 워라밸이 가져온 긍정적 면은 대한상공회의소가 맥킨지와 함께 2016년 100개 기업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했을 당시 결과와도 비교된다. 당시 결과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야근이었다. 응답자 43%는 평균 2.3일 야근을 하고 하루 평균 11시간이나 회사에서 보낸다고 답했다. 그 중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시간은 5시간 32분에 불과했다.
업무에만 집중하자는 워라밸 바람에 근무시간은 많고 생산율은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가능성이 보인다. 신세계 직원 김모(35)씨는 “쓸데없는 시간이 확 줄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개인 업무를 비롯해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가 꼭 필요한 업무 중심으로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들도 없어진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아직 워라밸을 반영한 회사제도가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모 대기업 과장 임모(40) 씨는 “옆 동네(기업)가 달라진다고 하니 회사도 영향을 받은 분위기다. 우리 부서는 회의가 확연히 줄었다. 사실 우리 회사는 야근이 거의 ‘고정’이다시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차피 야근할 거’라는 생각에 느슨하게 일하게 되는 때가 있다. 담배 한 대 더 피고, 커피 한잔 더 마시게 된 달까. 솔직한 심정으로 임금 삭감을 해도 좋으니 야근 금지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면서 “대학 동기가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회사에 다니는데 최근 SNS에 헬스장에 간 사진을 올렸더라. 내가 그 친구보다 많이 버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내 인생 대부분이 회사에서 쓰이다 사라지겠구나 싶어서 약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 워라밸이 다 좋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워라밸 바람에 맞서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단 크게 화제가 된 신세계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마트산업노조 이마트 지부는 신세계의 새로운 근무제가 올해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회사의 꼼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지난해 12월 21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이마트의 ‘주 35시간제 도입’을 ‘고용 없는 노동시간 단축, 소득 상승 없는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마트 계산원과 진열대 업무 등 전문직 2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총 2만6000여 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시간당 6980원, 한 달(209시간)에 145만8000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시급이 8644원으로 늘었지만 근로시간 단축(183시간)에 따라 실제 월 급여는 158만1000원으로 소폭 인상된 꼴이라는 것이다. 만약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유지했다면 노동자들의 월급이 180만6000원으로 35만원 가량 늘었을 것이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차라리 “한시간 더 일하고 더 받고 싶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현장 업무 특성상 업무 시간이 줄면서 강도가 세진 것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단순히 업무 단축 제도만이 불만 대상인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도록 시행하지 않는 이상 정부나 기업이 이런 저런 제도를 마련해도 실제 누리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근로자들의 중론이다.
일례로 정부가 내놓은 유연근무제는 공무원 사이에서도 활용도가 높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도입했다. 한 달에 한 주씩 금요일 오후 4시에 조기 퇴근하는 제도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시행 결과는 어떨까. 기획재정부의 경우 신청자가 지난해 4∼7월 정원 대비 80% 이상이나 됐지만 지난해 9∼11월 70%대로 떨어졌고 12월에 50%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공무원 사회 뿐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들에 대해 “법으로 강제하라”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 쓰기가 겁난다. 승진에서도 밀릴 것 같다”는 여론의 말에서 복지혜택을 주장하기조차 부담스러운 근로 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기업 입장에서도 워라밸 바람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수도권 지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김모(55) 씨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이지만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한다. 김 씨는 “‘워라밸’을 기사로 봤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접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직원들은 확실히 칼퇴근을 원한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인력을 늘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솔직하게 말하면 기존 직원이 하루 2~3시간 더 일해주고 그 부분을 야근 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이 비용절감에 효과적이다. 물론 직원 복지도 당연히 사장으로서 챙겨야 할 부분이지만 회사 사정이 여유로워지고 조금 천천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복지 정책을 꾸려가고 싶은 바람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워라밸 워라밸 하며 들썩이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사장으로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세계 보편적 제도와 사상이 된 민주주의조차도 모든 이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결국 일괄적 제도나 일시적 바람보다는 직무 성격에 맞는 복지정책, 근로자의 삶을 지켜주려는 배려, 회사에 기여하려는 노력 등 상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그리고 워라밸이다. 워라밸은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자는 트렌드이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방송가에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tvN ‘수업을 바꿔라’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외국인들의 삶을 살아보거나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나올 수 있겠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MBC ‘무한도전’ KBS ‘1박 2일’에서 워라밸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겠다”면서 “또 지난해와 반대로 워라밸 세대들은 균형있는 삶을 꿈꾸기에 현명한 소비 트렌드를 다루는 방송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욜로’ 열풍에 편승해 트렌드의 단면만 다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