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전시 제공)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유연 근무제를 도입한 발빠른 기업부터 저녁 있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꿈꾸게 만드는 서비스 업계들의 프로모션까지, 워라밸 기류는 심상치 않다.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삶의 질을 말하는 이들의 바람이 더해졌기 때문. 실제 다양한 설문조사에서 대중은 일의 양보다 질이 높기를 바라고, 높은 연봉보다는 저녁 있는 삶을 꿈꾼다는 결과가 나왔다. 박봉에 저녁마저 없었던 이전의 현실을 넘어 워라밸 바람은 우리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편집자주
[뷰어스=문서영 기자] 지난해 7월 tvN ‘알쓸신잡’ 1편의 전주여행에서 유시민 작가는 “정치를 그만둘 때 포털에 이미지 검색을 해서 내 얼굴을 봤다. 내가 이 얼굴로 10년을 살았단 말인가 했다. 날카로운 것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 보였다”면서 “자기 자신의 얼굴이 주는 느낌, 그것이 좋을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재승 박사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붙어 있는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문구를 언급하며 “젊은 사람들이 ‘워라밸’이라는 말을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결국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한 보람은 삶으로 전환된다. 균형을 잡는 삶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워라밸’을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룬 셈이다. 그리고 올해 키워드로 선정된 ‘워라밸’을 방송가가 어떻게 소화해낼 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욜로 욜풍이 얼마나 뜨거웠던가. “욜로하다 골로 가겠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욜로’ 트렌드에 편승한 방송가의 소비는 대단했다. 이렇듯 한 해 트렌드와 키워드를 소화해내는 방송가의 열풍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사진=tvN 방송화면)
■ 힐링→1코노미→욜로 '광풍'
10여 년 전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자 각종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스타 및 자연인들의 일상을 파고들어 ‘잘’먹고 ‘잘’ 사는 법을 집중조명했다. 이후 방송가의 본격적인 키워드 활용이 시작됐다. 2013년 SBS ‘힐링캠프’가 대표적이다. 출연자들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악마적’ 토크가 횡행할 때 ‘힐링캠프’가 등장했다. ‘힐링캠프’는 모든 세대들이 아픈 세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게스트의 힐링에 초점이 맞춰지진 않았지만 송곳 질문만 던지던 토크 트렌드에서 멀찍이 떨어진 편안한 분위기에 게스트들은 한결 부드럽고 솔직해졌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마치 캠핑을 온 듯한 분위기에 시청자도 편안해졌다. 여기에 연예인 뿐 아니라 대선 주자, 유명 인사들까지 몽땅 출연하며 ‘힐링열풍’을 선도했고 힐링 상품, 힐링 여행, 힐링 주제의 도서들까지 불티나게 팔렸다.
‘힐링캠프’로 트렌드 맛을 톡톡히 본 덕일까. 이후 방송가는 매해 그 해의 키워드에 집중했다. 2015년은 ‘먹방’이 대세였다. ‘트렌드 코리아 2015’에 등장한 ‘Orchestra of all the senses(감각의 향연)’은 주효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tvN ‘삼시세끼’를 필두로 코메디TV의 ‘맛있는 녀석들’ SBS ‘백종원의 3대 천왕’까지 먹방이 TV를 잠식했다. 그해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전반적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5.3%가 요리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사진=SBS)
2016년은 어떤가. 1코노미&혼족, 1인 미디어 등 트렌드에 발맞춰 2015년 시작한 ‘마이리틀텔레비전’이 큰 인기를 끌었고 혼족 스타들을 조명한 ‘나혼자 산다’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3년 시작한 ‘나 혼자 산다’는 초반 인기몰이 후 주춤했다가 ‘혼족’ 트렌드가 시작되면서 인기 프로그램 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나 혼자 산다’가 혼족을 너무 일찍 조명했다면 ’미운우리새끼‘는 적절한 시기를 잘 탄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미운우리새끼’는 솔로 남성 스타들의 혼자살이를 조명하면서 SBS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고 2016년 연예대상(신동엽), 2017년 연예대상(‘미운우리새끼’ 어머니 4인)을 싹쓸이하며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채널A ‘개밥주는 남자’ tvN ‘내 귀의 캔디’ SBS ‘불타는 청춘’ 를 비롯해 혼족들이 혹할만한 정보를 제공한 tvN ‘집밥 백선생’ ‘편의점을 털어라’,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혼족들의 이야기 MBC ‘발칙한 동거-빈방 있음’ JTBC 드라마 ‘청춘시대’ 등도 혼족 트렌드를 잘 활용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 트렌드 또 한쪽 면만 쓸 건가요?
2017년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욜로’(YOLO)가 방송가를 접수했다. 최근 시즌2를 시작한 tvN ‘윤식당’ 시즌1은 욜로 문화와 딱 맞아 떨어진 예능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작은 섬에서 한식당 운영에 도전하는 윤여정, 정유미, 이서진, 신구의 이야기는 최고 시청률 약 14%까지 찍으며 소위 ‘대박’을 쳤다. 대중들의 꿈꿔왔던 삶을 보여줌으로 대리만족을 선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리브의 ‘섬총사’도 섬에 머물러 취향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욜로 예능에 발을 들였고, JTBC ‘효리네 민박’도 욜로 라이프에 감성적 힐링까지 얹으며 크게 히트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tvN의 ‘주말에 숲으로’, 올리브 ‘어느날 갑자기 백만원’ KBS2 ‘배틀트립’, 올리브TV ‘원나잇 푸드트립: 먹방 레이스’ 온스타일 ‘다이아’s 욜로트립’ 등 우후죽순 욜로 예능들이 쏟아졌다. 결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소비 조장 프로그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욜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한국에서 욜로는 주로 소비 상품과 연관이 됐다. 욜로를 그저 놀이와 여흥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워라밸이다. 워라밸은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자는 트렌드이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방송가에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tvN ‘수업을 바꿔라’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외국인들의 삶을 살아보거나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나올 수 있겠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MBC ‘무한도전’ KBS ‘1박 2일’에서 워라밸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겠다”면서 “또 지난해와 반대로 워라밸 세대들은 균형있는 삶을 꿈꾸기에 현명한 소비 트렌드를 다루는 방송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욜로’ 열풍에 편승해 트렌드의 단면만 다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