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고 미워함’ 혐오의 국어사전 속 풀이다. 해석만 살펴봐도 섬뜩한 이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었다. 예부터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그만큼 예의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기사 속 댓글만 살펴봐도 우리의 혐오 감정이 얼마나 극한으로 치닫는지 실감할 수 있다. 누구나 사용하기에 무심코 뱉은 혐오 표현들, 우리는 좀 더 예민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뷰어스=이건형 기자] 얼마 전 TV를 보다 놀란 적이 있다. 케이블방송 tvN 드라마 ‘화유기’ 속 대사 때문이었다. 극중 악귀에게 괴롭힘 당하는 김성오(이한주 역)를 극적인 상황으로 몰기 위한 장치로 ‘애비충’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애비충’은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아버지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아버지를 뜻하는 애비와 벌레 충(蟲)의 합성어다. 특히 이 단어는 혐오 감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TV에 이러한 단어가 버젓이 방영된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사실 ‘애비충’뿐 아니라 도처에 벌레와 비유한 단어들 천지다. ‘맘충’ ‘한남충’ ‘진지충’ ‘설명충’ ‘생리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충’을 붙인 접미어는 일간베스트 이용자를 일컫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 단어가 탄생한 것도 꽤 오랜 전 일이다. 인터넷 용어는 일정 기간 유행하면 쓰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충’의 경우는 다르다. 그저 지나가는 유행어인 줄 알았더니 어느 샌가 일상어가 됐다. ■ 일상적 재미로 쓰이는 혐오표현도 문제가 될까? SNS 해시태그에 각각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부터 ‘맘충’ ‘진지충’ ‘설명충’을 검색해 봤다. ‘극혐’의 해시태그는 8만5000개 이상이 검색됐다. 연관 단어까지 합치면 10만 여 정도에 이른다. 뒤를 잇는 건 ‘진지충’과 ‘설명충’이다. 각각 수천 개가 검색됐다. 게시물에 들어가 보니 지극히 일상적인 사진들이다. 반듯하게 찍은 사진 등에 ‘진지충’을 태그 한다거나, 추운 날 학교 가는 사진 등에 ‘날씨 극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혐오해 사용했다기 보단 평범한 일상에 재미적 요소로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타자를 혐오할 의도 없이 사용한 혐오표현도 사회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는 답을 내놨다. 숙명여대 교수인 홍성수 법사회학자는 “혐오나 차별의 말들이 누적되다보면 농담에서 어느 순간 정형화 된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 그 단어 자체로 차별이 된다. 이런 표현이 정형화 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이 빈번히 사용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혐오 용어가 만들어지는 진원지는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다. 이곳을 통해 단어가 만들어지고 점차 확산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인터넷 문화에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런 면에서 커뮤니티 등이 이러한 욕구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강한 표현들을 찾다보니 선을 넘어버리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또 인터넷은 유희적인 부분이 있다. 일상적으로 하기 힘든 혐오 발언이 인터넷에선 유희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무슨 ‘충’이라 일컫는 것도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혐오적인 의도보단 일상적 재미로 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더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부분도 혐오표현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저 사람도 쓰는데 뭐’라는 생각이 책임감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도 익명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짐바르도는 실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얼굴을 공개한 뒤 명찰까지 달게 했다(A집단). 또 한 집단은 눈을 제외한 안면을 전부 가리게 했다. 물론 명찰도 달지 않았다(B집단). 이후 한 인물이 과제를 해내지 못할 때 이 두 집단에게 전기 충격을 주게 했다. 그랬더니 A집단보다 B집단이 전기 충격을 더 많이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면 특정한 개인이나 계층에 돌을 던지기 쉬워진다. 분위기에 편승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분산된다. 보통 나를 드러내는 상황이 되면 보복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익명성이 보장되면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익명성이 만용을 불러오는 것”이라며 “또 집단 사고라는 게 있다. 극단적인 의견이 도출될 우려가 있다. 인터넷상에서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라고 느끼는 걸 ‘집단사고’(group think)라고 한다. 집단이 모여서 의견이 한쪽으로 모이면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픽사베이)   ■ 혐오표현 지양하려면 미디어, 영향력 있는 인물 역할 중요 혐오표현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앞서 홍성수 교수가 언급한 정형화된 이미지로 고착화될 우려도 있다. 스스로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의도 갖지 않고 썼다 할지라도 차별에서 자유로운 게 아니다. 직장인 김 모씨(남.27)는 “SNS 게시물을 보다 ‘맘충’ 에피소드를 접한 적이 있다. 게시물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맘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이후 식당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맘충’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더라”고 말했다. 혐오는 싫어하는 것을 넘어선 증오 심리에 가까운 감정 상태다. 그 과정에서 피해의식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동귀 교수는 “혐오는 일반적으로 미워하는 감정을 넘어서 ‘저 사람(집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피해의식이 자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복 심리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혐오표현이 보다 심화된 보복 심리로 이어지면 결국 현실적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혐오 범죄의 극단적 행태로는 신상 털기다. 신상 털기는 개인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행위다. 간혹 엉뚱한 이의 신상이 털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보통 언어폭력에 속하는데 이동귀 교수는 이에 대해 “신체 폭력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름을 조정할 때 건설적인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건설적 비판이 아닌 인격 모독이나 인격 비난, 또는 적대의 감정 등으로 번질 때 혐오 감정이 나타나게 되는 거다. 단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무시하고 멸시하게 된다. 현재 이런 혐오가 계층, 집단으로 번져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결 방안에 대해 두 전문가는 ‘공존과 공감’을 키워드로 꼽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공감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 현재로선 혐오표현을 제어할 수 있는 문화들이 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온라인상에서 혐오적 표현들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것을 융화하는 발언을 던졌을 때 이에 대한 효과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미디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문화를 통해 공감 문화를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 혐문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미디어가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고 나서면 폐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극적인 걸로 도배가 되면 사회적 자정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표현의 자유에도 선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개인의 자각도 중요하다. ‘다 사용하는 데 뭐 어때’가 아닌 ‘나라도’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간은 모두 존엄한 존재다. 세계적으로 법과 질서뿐 아니라 도덕적 소양을 중시하는 건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이끌기 위함이다. 혐오는 행복에 명백히 반(反)하는 단어다. 잘못에 대한 비판은 마땅히 사회를 성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이상의 비난은 계층 간의 갈등과 차별만 형성할 뿐이다. 길을 지나갈 때 그저 남자 또는 여자란 이유로 ‘한남충’ ‘김치녀’ 소리를 듣고, 부모란 이유로 ‘애비충’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앞서 언급했든 혐오표현 사용은 계층에 대한 이미지를 정형화할 우려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일상 속 혐오]① 혐오표현, 악의 없어도 문제가 될까?

이건형 기자 승인 2018.02.05 11:21 | 최종 수정 2136.03.12 00:00 의견 0

‘싫어하고 미워함’ 혐오의 국어사전 속 풀이다. 해석만 살펴봐도 섬뜩한 이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었다. 예부터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그만큼 예의를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기사 속 댓글만 살펴봐도 우리의 혐오 감정이 얼마나 극한으로 치닫는지 실감할 수 있다. 누구나 사용하기에 무심코 뱉은 혐오 표현들, 우리는 좀 더 예민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이건형 기자] 얼마 전 TV를 보다 놀란 적이 있다. 케이블방송 tvN 드라마 ‘화유기’ 속 대사 때문이었다. 극중 악귀에게 괴롭힘 당하는 김성오(이한주 역)를 극적인 상황으로 몰기 위한 장치로 ‘애비충’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애비충’은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아버지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아버지를 뜻하는 애비와 벌레 충(蟲)의 합성어다. 특히 이 단어는 혐오 감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TV에 이러한 단어가 버젓이 방영된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사실 ‘애비충’뿐 아니라 도처에 벌레와 비유한 단어들 천지다. ‘맘충’ ‘한남충’ ‘진지충’ ‘설명충’ ‘생리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충’을 붙인 접미어는 일간베스트 이용자를 일컫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 단어가 탄생한 것도 꽤 오랜 전 일이다. 인터넷 용어는 일정 기간 유행하면 쓰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충’의 경우는 다르다. 그저 지나가는 유행어인 줄 알았더니 어느 샌가 일상어가 됐다.

■ 일상적 재미로 쓰이는 혐오표현도 문제가 될까?

SNS 해시태그에 각각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부터 ‘맘충’ ‘진지충’ ‘설명충’을 검색해 봤다. ‘극혐’의 해시태그는 8만5000개 이상이 검색됐다. 연관 단어까지 합치면 10만 여 정도에 이른다. 뒤를 잇는 건 ‘진지충’과 ‘설명충’이다. 각각 수천 개가 검색됐다. 게시물에 들어가 보니 지극히 일상적인 사진들이다. 반듯하게 찍은 사진 등에 ‘진지충’을 태그 한다거나, 추운 날 학교 가는 사진 등에 ‘날씨 극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혐오해 사용했다기 보단 평범한 일상에 재미적 요소로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타자를 혐오할 의도 없이 사용한 혐오표현도 사회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는 답을 내놨다. 숙명여대 교수인 홍성수 법사회학자는 “혐오나 차별의 말들이 누적되다보면 농담에서 어느 순간 정형화 된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 그 단어 자체로 차별이 된다. 이런 표현이 정형화 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이 빈번히 사용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혐오 용어가 만들어지는 진원지는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다. 이곳을 통해 단어가 만들어지고 점차 확산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인터넷 문화에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런 면에서 커뮤니티 등이 이러한 욕구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강한 표현들을 찾다보니 선을 넘어버리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또 인터넷은 유희적인 부분이 있다. 일상적으로 하기 힘든 혐오 발언이 인터넷에선 유희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무슨 ‘충’이라 일컫는 것도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혐오적인 의도보단 일상적 재미로 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더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부분도 혐오표현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저 사람도 쓰는데 뭐’라는 생각이 책임감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도 익명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짐바르도는 실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얼굴을 공개한 뒤 명찰까지 달게 했다(A집단). 또 한 집단은 눈을 제외한 안면을 전부 가리게 했다. 물론 명찰도 달지 않았다(B집단). 이후 한 인물이 과제를 해내지 못할 때 이 두 집단에게 전기 충격을 주게 했다. 그랬더니 A집단보다 B집단이 전기 충격을 더 많이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면 특정한 개인이나 계층에 돌을 던지기 쉬워진다. 분위기에 편승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분산된다. 보통 나를 드러내는 상황이 되면 보복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익명성이 보장되면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익명성이 만용을 불러오는 것”이라며 “또 집단 사고라는 게 있다. 극단적인 의견이 도출될 우려가 있다. 인터넷상에서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라고 느끼는 걸 ‘집단사고’(group think)라고 한다. 집단이 모여서 의견이 한쪽으로 모이면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혐오표현 지양하려면 미디어, 영향력 있는 인물 역할 중요

혐오표현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앞서 홍성수 교수가 언급한 정형화된 이미지로 고착화될 우려도 있다. 스스로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의도 갖지 않고 썼다 할지라도 차별에서 자유로운 게 아니다. 직장인 김 모씨(남.27)는 “SNS 게시물을 보다 ‘맘충’ 에피소드를 접한 적이 있다. 게시물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맘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이후 식당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맘충’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더라”고 말했다.

혐오는 싫어하는 것을 넘어선 증오 심리에 가까운 감정 상태다. 그 과정에서 피해의식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동귀 교수는 “혐오는 일반적으로 미워하는 감정을 넘어서 ‘저 사람(집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피해의식이 자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복 심리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혐오표현이 보다 심화된 보복 심리로 이어지면 결국 현실적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혐오 범죄의 극단적 행태로는 신상 털기다. 신상 털기는 개인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행위다. 간혹 엉뚱한 이의 신상이 털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보통 언어폭력에 속하는데 이동귀 교수는 이에 대해 “신체 폭력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름을 조정할 때 건설적인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건설적 비판이 아닌 인격 모독이나 인격 비난, 또는 적대의 감정 등으로 번질 때 혐오 감정이 나타나게 되는 거다. 단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무시하고 멸시하게 된다. 현재 이런 혐오가 계층, 집단으로 번져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결 방안에 대해 두 전문가는 ‘공존과 공감’을 키워드로 꼽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공감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 현재로선 혐오표현을 제어할 수 있는 문화들이 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온라인상에서 혐오적 표현들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것을 융화하는 발언을 던졌을 때 이에 대한 효과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미디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문화를 통해 공감 문화를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 혐문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미디어가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고 나서면 폐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극적인 걸로 도배가 되면 사회적 자정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표현의 자유에도 선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개인의 자각도 중요하다. ‘다 사용하는 데 뭐 어때’가 아닌 ‘나라도’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간은 모두 존엄한 존재다. 세계적으로 법과 질서뿐 아니라 도덕적 소양을 중시하는 건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이끌기 위함이다. 혐오는 행복에 명백히 반(反)하는 단어다. 잘못에 대한 비판은 마땅히 사회를 성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이상의 비난은 계층 간의 갈등과 차별만 형성할 뿐이다. 길을 지나갈 때 그저 남자 또는 여자란 이유로 ‘한남충’ ‘김치녀’ 소리를 듣고, 부모란 이유로 ‘애비충’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앞서 언급했든 혐오표현 사용은 계층에 대한 이미지를 정형화할 우려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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