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녀와 야수' 스틸컷(사진=디즈니)
풍성하고 긴 머리,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한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 동화 속 공주와 미녀의 대표적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벨 역으로 출연한 엠마 왓슨은 디즈니 공주 코르셋을 거부했다. 진취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벨에게 여성의 몸을 제한하는 코르셋은 어울리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엠마 왓슨뿐만 아니다. 여성운동이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여성을 억압했던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편집자주-
[뷰어스=남우정 기자] #20대 대학생 박시연 씨는 최근 노메이크업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은 새내기 때부터 압박 아닌 압박 속에서 시작했다. 어려 보인다는 주변의 간섭 때문에 메이크업을 하게 됐고 처음엔 입술만 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눈썹, 파운데이션, 아이라인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화장을 해야하는 부위가 늘어난만큼 화장품 개수는 늘어났고 등교 준비하는 시간을 길어졌다. 용돈 중 화장품에 투자하는 비율도 높았다. 하지만 최근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화장이 여성에게 씌워진 사회적 코르셋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됐고 용기를 내서 파운데이션프리 운동에 동참했다. 화장 하나 안 했을 뿐인데 수면 시간이 30분 늘어났고 오히려 피부 트러블은 잠잠해졌다.
#30대 직장인 김윤경 씨가 퇴근한 후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브래지어 벗기다. 하루 종일 갑갑하게 조였던 가슴에서 브래지어 하나가 사라졌더니 숨통이 트인다. 최근 SNS를 보니 노브라로 외출한다는 여성들이 상당수다. 가까운 거리의 편의점을 가거나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었을 땐 윤경 씨도 노브라로 외출을 하긴 했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노브라로 외출을 하고 싶지만 아직까진 용기가 필요하다.
외면부터 내면까지 여성을 옭아매던 미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탈(脫)코르셋’이라는 용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코르셋은 체형을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가슴에서 엉덩이 위까지 꼭 조여주기 위해 철사를 넣어 만든 옷을 말한다. 세월이 흘러 활동성이 중요해지면서 코르셋은 브래지어의 형태로 대체하게 됐다. 현대에 와서 이 코르셋이라는 단어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을 뜻하게 됐다. 그리고 이런 억압을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이런 탈코르셋은 페미니즘 운동의 방법 중 하나다. 한 때 여성스러움의 상징은 긴 생머리에 치마였고 여성들에겐 44~55사이즈가 강요되기도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덕분에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집에 오자마자 속옷을 벗는 여성(사진=슬기로운 감빵생활 캡처)
일단 가장 대표적인 것이 브래지어의 미착용이다. 그간 남성에게도 가슴이 있지만 여성에게만 속옷 착용이 강요되어 왔다. 현대판 코르셋인 브래지어는 강한 압박으로 소화불량, 혈액순환 방해, 피부질환 등을 유발해왔다. 심지어 한참 민감한 청소년기, 발육이 빨라 브래지어를 먼저 착용한 여자 아이는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남자 애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자아이 뒤에서 브래지어를 팅기고 도망가는 장난을 쳤다. 이렇듯 여성에게 애증의 대상인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여성들이 후기가 온라인상에서 넘쳐나고 있다. 특히 10월13일은 전 세계적으로 유방암 인식 제고와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비공식적 캠페인 노브라 데이가 펼쳐져 응원의 SNS가 이어졌다.
노브라가 편한 건 알고 있지만 선뜻 도전하기에 아직까지 사회적 시선이 차갑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브라렛(Bralette)이다. 가슴을 봉긋하게 만들기 위해 조이는 와이어 브래지어와 달리 브라렛은 몸을 압박하지 않는다. 패드와 와이어는 없애 편안함을 강조하면서도 속옷처럼 보이지 않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작돼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 결과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경우 브라렛 매출이 지난해에 57% 증가했다.
또 다른 일상 속 탈코르셋은 바로 파운데이션 프리다. 말 그대로 파운데이션 없이, 노메이크업으로 생활하기다. 최근엔 남성들도 외형적인 요소에 신경쓰면서 BB크림을 바르거나 눈썹을 정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여성처럼 화장은 필수라는 인식을 가지진 않는다. 여성들은 성인이 된 후 예의를 운운하며 화장을 강요받아왔다. 이런 인식을 깨기 위해 해외에선 셀럽들도 자신의 민낯을 공개하며 노메이크업 운동에 동참하고 있고 최근에 SNS상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장품을 깨트려 인증을 남기기도 한다.
다양한 몸매, 인종의 모델로 등장하는 미국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사진=에어리 인스타그램)
■ '나 자신을 사랑한다'…자기 몸 긍정주의의 긍정적 효과
남에게 보여지는 몸매보다 자신의 편안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패션계도 변화를 맞았다. 한 때 패션계는 마른 모델을 선호했고 이로 인해 거식증에 걸린 모델까지 등장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 프랑스 정부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명품 기업 루이뷔통, 구찌 등도 이에 동참하며 공동헌장을 마련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기성복 표준 사이즈보다 큰 플러스 모델들이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들을 모델로 한 브랜드도 환영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다. 에어리는 마른 모델이 아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모델을 내세웠고 화보에서 필수로 여기는 포토샵 보정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셀룰라이트가 그대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에어리는 매년 20% 이상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다양한 인종까지 포용한다. 백인이 주를 이뤘던 모델시장에 점차 유색 인종의 모델이 늘고 있다. 패션 매거진 보그 영국판에 백인, 흑인, 동양인, 히잡을 쓰고 플러스 모델 등이 함께 표지를 채운 것만 보더라도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마르고 볼륨감 있는 몸매를 가진 백인의 대명사인 바비 인형을 만드는 마텔사는 지난해 히잡을 쓴 바비인형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통통하고 키가 작은 바비에 눈과 피부의 색도 다양해지며 미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