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더 바디샵 광고(사진=더바디샵 홈페이지)
이제 '가성비'만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미닝아웃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단어다. 정치적, 사회적 신념과 같은 자기만의 의미를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로서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 권한을 누릴 수 있다. -편집자주-
[뷰어스=남우정 기자] # 30대 직장인 이수정 씨는 마트로 장을 볼 때 오랜 시간을 소비한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갑질’ 문화로 논란이 됐던 기업의 우유와 유제품은 걸러낸다. 특정 정치인과 연루된 기업의 라면도 제외했다. 어릴 때부터 먹어서 친근한 라면이었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어차피 라면은 대체할 수 있는 브랜드가 많다. 착한 기업으로 통하는 오뚜기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라면은 수두룩하다.
# 20대 직장인 김선화 씨는 수년간 사용해왔던 화장품을 바꿨다.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동물실험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뷰티계에서 만연하게 행해졌던 동물 실험을 알게 됐다.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동물 실험을 안 하는 브랜드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같은 선택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
왜 우리는 미닝아웃에 빠졌을까.
지난해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2018 트렌드 코리아’ 출판 기념회에서 올해의 소비 키워드를 밝히면서 이젠 마음이 만족하는 소비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견했다. 김 교수는 개인의 소비는 투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 신념을 드러내는 표현방식이 되고 있다며,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공동체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남들에게 내 신념과 가치관을 꺼내놓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2030 밀레니엄 세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SNS의 사용이 그 효과를 증대시켰다. SNS만 있으면 장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고 쉽게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특정 브랜드를 불매하고, 타인에게 불매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미닝아웃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여성소비총파업만 보더라도 이들은 자신이 그날 소비를 하지 않았다는 서로 인증하면서 이날 행사를 즐겼다. 이렇게 노출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 탄탄히 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렇듯 미닝아웃이 젊은층 사이에서 자리잡게 된 배경에 대해 이준영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일단 SNS라는 정치 사회적인 신념을 표출할 수 있게 된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해시태그 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자발적으로 그런 정치 사회적 신념을 표출을 하게 된 것이 미닝아웃 트렌드에 핵심이다. 더 나아가서 보면 개념소비를 표방하고 바이콧(buycott: 보이콧에 반대되는 개념, 어떤 물품을 사도록 권장하는 것)을 하는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제품 개발한 하림(사진=하림홈페이지)
서서히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동물 보호를 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자 기업들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이라고 홍보를 하고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자 기업들도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풀무원 샘물은 플라스틱 양을 줄인 에코캡 용기를 2013년부터 사용하고 있고 닭고기 기업 하림은 지난해 국내 최초 동물복지생산시스템을 적용한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오리온은 2014년부터 포장재 크기와 잉크 사용량을 줄이는 ‘착한 포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해엔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해 환경부 녹색기술 인증을 받기도 했다. 오리온에 따르면 지난해 ‘포카칩’ 등 주요 3가지 제품에 들어간 포장재를 비교한 결과 전년도보다 포장재 중량은 83t, 면적으로는 1.2㎢가 줄어들었다. 여의도 면적의 40%에 달하는 포장재를 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 가격 동결, 직원 정규직 전환 등의 행보로 ‘갓뚜기’라는 칭송 받는 오뚜기의 상황만 보더라도 소비자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시장조사기간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오뚜기의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엔 라면 국내시장 점유율 25.6%로 1위인 ‘농심’과의 격차를 줄였다.
소비자가 똑똑해지면서 착한 기업이 늘어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다. 이에 이준영 교수는 “요즘 기업의 갑질 문화, 윤리성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제대로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기업의 이미지 실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출에 직결된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써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우려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 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럿 의견이 오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또 SNS 확산 속도가 빠른 만큼 정확한 정보가 오고가야 하는 것은 필수다. 여론에 휩쓸린 나머지 오가는 공방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의도치 않은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이준영 교수는 “요즘에 너무 정보가 많아지다 보니 잘못된 정보도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미닝아웃 문제에서 핵심은 아니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