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명랑 히어로’라는 예능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엔 ‘두 번 살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생전 장례식을 통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능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강산이 변한 사이 실제로도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삶의 모토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젠 어떻게 해서 잘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한다.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웰다잉 문화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사진=뷰어스) [뷰어스=남우정 기자] “아이고 죽겠네” “죽고싶다”  최근들어 입에서 자주 튀어 나오는 말들이다. 정차한 버스를 잡으려고 전력질주를 하고 난 후 숨이 차서 무심결에 “죽겠네”라는 말이 튀어 나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을 땐 자책을 하며 “죽고싶다”라는 말을 쓴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지만 죽음을 가벼이 여겼다는 걸 인정한다. 누군가에겐 갖고 싶어도 주어지지 않는 삶이지 않은가.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삶과 죽음의 기회다. 그 기회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최근 임종 체험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죽음의 순간을 미리 만나는 셈이다. 삶과 죽음의 기회를 값지게 쓰기 위해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먼저 경험해 봤다.  ■ 준비 단계 인터넷에서 ‘임종체험’만 쳐봐도 다양한 센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자는 서울 시내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센터를 찾았다. 한 상조회사에서 무료로 운영 중인 공간이다. 다만 무료이기 때문에 임종체험도 결국은 스피드 싸움이었다. 특정 요일에만 진행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먼저 해야 한다.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황. 어쩔 수 없이 가장 빠른 날짜인 평일 오후로 예약을 마쳤다.  (사진=뷰어스)  ■ 1단계: 영정사진 찍기  하루 전날 센터에서 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약도와 간략한 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눈에 띈 것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시간 보다 좀 더 빠른 시간에 와야한다는 것. 이유는 영정사진을 먼저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조명에 배경까지 사진을 찍을 조건은 완벽하게 갖춰 놨다. 생애 마지막 사진이라도 잘 나오길 빌며 거울을 한 번 보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했던 영정사진과 달리 사진기사님은 “활짝 웃으세요”라고 주문하신다. 평상시에도 잘 웃지 않는데 죽기 전에 활짝 웃는다는 건 내 삶의 모순인 것 같아 살짝 미소만 지었다. 아직까지 죽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사진=뷰어스) ■ 2단계: 에피타이저인 삶과 죽음에 대한 강의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평일이라서 평소보다 적은 숫자라곤 했지만 강의실엔 사람이 가득 찼다. 대략 50명 되는 인원수가 죽음을 경험하려고 한 장소에 모였다. 이 단체 센터장이 약 1시간 정도 강의를 펼치는데 주된 내용은왜 살아야 하는지,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였다. 특히 강의에서 영상 자료가 등장하는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호스피스 현장의 리얼한 상황을 담았던 방송 편집 영상이다.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순간의 절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뷰어스) ■ 3단계: 저승길만 걸어요  짧은 휴식시간 후 안내자의 인솔을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본격적인 저승길이다. 검은 벽면으로 뒤덮어 있는 계단을 촛불에만 의지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 끝엔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다(사진기사님과 비슷해 보이는건 기분 탓일까). 저승사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배정 받고 관 위에 올라가 있는 수의를 입었다. 웃음이 넘쳤던 강의실과 달리 체험관은 숨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상을 보여준다. 눈물 지뢰인 ‘휴먼다큐-사랑’이었다. 암 선고를 받은 아빠와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의 모습에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주위에서도 우는 소리가 터졌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죽음’이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지 않았던 순간이라는 게 확 와닿는다.  ■ 4단계: 유언장 작성 영상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할 일은 내 영정사진 옆에 마련된 유언장 빈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유언장에는 장례방법과 신체기증에 대한 선택도 할 수 있다. 분명 쓰려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쉽게 손이 안 떨어진다. 센터장은 마음 내키는 대로 쓰라고 했지만 남아서 유언장을 읽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맞춤법이 틀릴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유언장을 먼저 쓴 수강생들이 낭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던 수강생들은 유언장은 낭독하면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다른 수강생들도 눈물을 훔쳤다. 죽음의 순간 솔직해진 감정이 유언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우정. 장례방법: 화장, 신체기증: 장기, 살아가면서 혹여나 제가 상처를 줬거나 아프게 한 분들게 모두 죄송합니다. 절 끝까지 용서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들은 죽는 순간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죽어서도 반성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먼지같은 존재로 이제 삶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남은 분들은 제 몫까지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유서 일부 발췌-” (사진=뷰어스) ■ 5단계: 죽음, 그리고 새로운 삶 센터장은 “아쉽지만 이제 세상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라고 입을 열었고 수강생들은 관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생각보다 관은 비좁아서 작은 움직임도 허용하기 힘들었다. 이어서 저승사자가 관 뚜껑을 닫았고 관에 못을 박는 듯 쾅쾅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갇힌 순간 생각보다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 10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는 센터장에 말에 따라 불이 켜지고 관 뚜껑이 열렸다. 새 삶을 맞이한 것이다. 함께 죽음을 경험했던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박수를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마지막엔 단체사진까지 찍으면 체험은 종료된다.  ■ 호기심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임종 체험이라는 것 자체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간다. 이 과정의 경험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확실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관 속에 들어간 순간의 평온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느낌이다. 시끄러운 세상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다. 관 속에선 오로지 나밖에 없다보니 내 삶을 떠올려볼 수 있다. 더불어 죽음이 주는 무게감도 상당했다. 내가 하찮게 여겼던 삶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바라던 하루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죽음을 마주보다] ③ “오늘 내가 죽었습니다”…미리 경험한 임종

남우정 기자 승인 2019.02.15 10:01 | 최종 수정 2138.04.01 00:00 의견 0

10여년 전 ‘명랑 히어로’라는 예능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엔 ‘두 번 살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생전 장례식을 통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능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강산이 변한 사이 실제로도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삶의 모토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젠 어떻게 해서 잘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한다.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웰다잉 문화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사진=뷰어스)
(사진=뷰어스)


[뷰어스=남우정 기자] “아이고 죽겠네” “죽고싶다” 

최근들어 입에서 자주 튀어 나오는 말들이다. 정차한 버스를 잡으려고 전력질주를 하고 난 후 숨이 차서 무심결에 “죽겠네”라는 말이 튀어 나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을 땐 자책을 하며 “죽고싶다”라는 말을 쓴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지만 죽음을 가벼이 여겼다는 걸 인정한다. 누군가에겐 갖고 싶어도 주어지지 않는 삶이지 않은가.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삶과 죽음의 기회다. 그 기회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최근 임종 체험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죽음의 순간을 미리 만나는 셈이다. 삶과 죽음의 기회를 값지게 쓰기 위해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먼저 경험해 봤다. 

■ 준비 단계

인터넷에서 ‘임종체험’만 쳐봐도 다양한 센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자는 서울 시내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센터를 찾았다. 한 상조회사에서 무료로 운영 중인 공간이다. 다만 무료이기 때문에 임종체험도 결국은 스피드 싸움이었다. 특정 요일에만 진행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먼저 해야 한다. 주말은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황. 어쩔 수 없이 가장 빠른 날짜인 평일 오후로 예약을 마쳤다. 

(사진=뷰어스)
(사진=뷰어스)

 ■ 1단계: 영정사진 찍기 

하루 전날 센터에서 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약도와 간략한 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눈에 띈 것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시간 보다 좀 더 빠른 시간에 와야한다는 것. 이유는 영정사진을 먼저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조명에 배경까지 사진을 찍을 조건은 완벽하게 갖춰 놨다. 생애 마지막 사진이라도 잘 나오길 빌며 거울을 한 번 보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했던 영정사진과 달리 사진기사님은 “활짝 웃으세요”라고 주문하신다. 평상시에도 잘 웃지 않는데 죽기 전에 활짝 웃는다는 건 내 삶의 모순인 것 같아 살짝 미소만 지었다. 아직까지 죽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사진=뷰어스)
(사진=뷰어스)

■ 2단계: 에피타이저인 삶과 죽음에 대한 강의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평일이라서 평소보다 적은 숫자라곤 했지만 강의실엔 사람이 가득 찼다. 대략 50명 되는 인원수가 죽음을 경험하려고 한 장소에 모였다. 이 단체 센터장이 약 1시간 정도 강의를 펼치는데 주된 내용은왜 살아야 하는지,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였다. 특히 강의에서 영상 자료가 등장하는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호스피스 현장의 리얼한 상황을 담았던 방송 편집 영상이다.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순간의 절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뷰어스)
(사진=뷰어스)

■ 3단계: 저승길만 걸어요 

짧은 휴식시간 후 안내자의 인솔을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본격적인 저승길이다. 검은 벽면으로 뒤덮어 있는 계단을 촛불에만 의지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 끝엔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다(사진기사님과 비슷해 보이는건 기분 탓일까). 저승사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배정 받고 관 위에 올라가 있는 수의를 입었다. 웃음이 넘쳤던 강의실과 달리 체험관은 숨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상을 보여준다. 눈물 지뢰인 ‘휴먼다큐-사랑’이었다. 암 선고를 받은 아빠와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의 모습에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주위에서도 우는 소리가 터졌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죽음’이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지 않았던 순간이라는 게 확 와닿는다. 

■ 4단계: 유언장 작성

영상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할 일은 내 영정사진 옆에 마련된 유언장 빈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유언장에는 장례방법과 신체기증에 대한 선택도 할 수 있다. 분명 쓰려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쉽게 손이 안 떨어진다. 센터장은 마음 내키는 대로 쓰라고 했지만 남아서 유언장을 읽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맞춤법이 틀릴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유언장을 먼저 쓴 수강생들이 낭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던 수강생들은 유언장은 낭독하면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다른 수강생들도 눈물을 훔쳤다. 죽음의 순간 솔직해진 감정이 유언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우정. 장례방법: 화장, 신체기증: 장기, 살아가면서 혹여나 제가 상처를 줬거나 아프게 한 분들게 모두 죄송합니다. 절 끝까지 용서하지 마세요.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들은 죽는 순간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죽어서도 반성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먼지같은 존재로 이제 삶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남은 분들은 제 몫까지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유서 일부 발췌-”

(사진=뷰어스)
(사진=뷰어스)

■ 5단계: 죽음, 그리고 새로운 삶

센터장은 “아쉽지만 이제 세상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라고 입을 열었고 수강생들은 관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생각보다 관은 비좁아서 작은 움직임도 허용하기 힘들었다. 이어서 저승사자가 관 뚜껑을 닫았고 관에 못을 박는 듯 쾅쾅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갇힌 순간 생각보다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 10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는 센터장에 말에 따라 불이 켜지고 관 뚜껑이 열렸다. 새 삶을 맞이한 것이다. 함께 죽음을 경험했던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박수를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마지막엔 단체사진까지 찍으면 체험은 종료된다. 

■ 호기심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임종 체험이라는 것 자체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간다. 이 과정의 경험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확실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관 속에 들어간 순간의 평온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느낌이다. 시끄러운 세상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다. 관 속에선 오로지 나밖에 없다보니 내 삶을 떠올려볼 수 있다. 더불어 죽음이 주는 무게감도 상당했다. 내가 하찮게 여겼던 삶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바라던 하루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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