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아웃사이더)’라는 말이 탄생했을 당시 그의 반대말인 ‘인싸’라는 말까지 나올 줄 누가 예상했을까.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조사 결과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 3위로 등극한 ‘인싸’는 이제 더 이상 자주 쓰이는 신조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싸’라는 게 하나의 즐길 거리이자 ‘유행’을 대변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 지금, 이 단어는 다양한 마케팅과 대중문화에 활용되는 중이다. 더불어 인관관계를 바라보는 요즘의 시선까지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과연 ‘인싸’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인 걸까. -편집자주
네이버에 '인싸'를 검색한 화면(사진=네이버 지식인 캡처)
[뷰어스=이소희 기자] “인싸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포털 사이트에 ‘인싸’라는 말을 검색하면 수많은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의 준말로, 사람들 혹은 무리에 잘 섞여 어울리는 이를 일컫는다. 여러 검색결과 중 눈에 띄는 건 바로 지식인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곳에는 ‘인싸 되는 법 알려주세요’라는 질문부터 ‘인싸인 친구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인싸도 아니고 아싸(아웃사이더, 인싸의 반대말)도 아니면 뭔가요?’와 같은 고민, 더 나아가 인싸와 아싸라는 말 자체가 불편하다는 의견까지 가득하다.
아울러 스마트학생복이 지난 달 청소년 1008명을 대상으로 ‘인싸 문화’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인싸’와 ‘아싸’를 나누는 기준으로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라고 대답한 이들이 절반 가까이(47.4%)였다. 또 51%의 청소년들은 ’인싸‘가 되는 방법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을 지녀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양상들은 ‘인싸’와 ‘아싸’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대인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난 현실을 대변한다. 더 나아가 문제없는 관계 속에서도 ‘잘 짜인 인맥과 사교성을 얼마나 지녔는가’라는 새로운 고민이 던져졌음을 시사한다. 그에 따라 ‘인싸’라는 말은 사람들의 소속감과 인정 욕구를 부추기는 등 반작용을 낳고 있다.
(사진=MBC 화면 캡처)
■ 노력하면 ‘인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많은 이들이 품는 궁금증처럼, 정말 ‘인싸’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걸까? 슬프게도 ‘인싸’의 세상에 들어가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개념은 본인이 지칭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인싸’의 주체성은 스스로에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활발하고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인싸’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이 나에게 느끼는 존재감이다. 예를 들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다가오고, 모임에 빠졌을 때 크게 티가 나는 ‘핵’의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위기의 주도권을 쥐고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재미있는 예로 방송인 하하가 꽤 오래 전 MBC ‘무한도전’에서 한창 추구했던 자신만의 세계관을 들 수 있다. “내성적이고 싸움 잘하고 여자한테 인기 많은데 나는 그걸 몰라” “엄청 잘생겼고 인기 많아 난리나. 근데 나는 몰라. 티를 안 내”와 같은 식이다. 이 세계관을 지금의 시대로 가져온다면 하하가 그토록 강조하고자한 것은 남들이 먼저 인정해주는 ‘인싸’ 기질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고 성격이 활발한 편인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 중의 군계일학, ‘인싸’가 되고 싶은 갈증은 더욱 커진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발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인싸’라는 개념이 다양한 즐길 거리와 흥미로운 문화를 불러일으킨 반면 그 어두운 면도 낳았다. 가장 큰 이면은 ‘인싸인지 아닌지’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기준이 평등한 관계를 무너뜨리고 대인관계에 서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생기는 압박감과 아무리 노력해도 ‘인싸’가 되지 못한다는 박탈감이 자리한다. ‘인싸’가 아니라고 해서 ‘아싸’가 되는 게 아니고, 또 집단에 끼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사회적으로 격리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군다나 ‘아싸’도 아니고 ‘인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설문조사로도 나타난다. 앞서 언급된 스마트학생복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이 생각하는 ‘인싸’ 문화의 단점으로 ‘인싸 문화를 체험하지 못하거나 인싸템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27.1%를 차지했다. 적지 않은 비중이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 흑백논리에 빠진 ‘인싸’ vs ‘아싸’의 위험성
그러다 보니 ‘인싸’의 성향으로 대변되는 외향성이나 리더십 등은 긍정적인 요소로, ‘아싸’의 성향으로 비춰지는 내향성이나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가치관 등은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반면 무조건 좋게만 비춰지는 ‘인싸’의 속성이 반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너 정도면 인싸야’라는 말을 들어봤다던 이모씨(28.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중심이 되고 싶지도 않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래야 하는 순간이 있으니 어느 정도 상황만 맞추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의아했다. 한 쪽 면만 보고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준이 ‘인싸’와 ‘아싸’로만 나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라고 ‘인싸’라는 말이 칭찬으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이처럼 ‘인싸’라는 개념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인정받아야 할 ‘다름’이 ‘틀림’으로 여겨지도록 부추긴다. 이에 ‘관계 속 힘’에서 벗어나 ‘인싸’의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인싸’인지 ‘아싸’인지, 즉 좋은 말로 비춰지든 아니든 사람은 평가받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신조어들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구나’ ‘관계 맺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구나’ 등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성향을 한 단어로 일축하며 한 사람에게 일종의 낙인이 찍히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어 “더 나아가 이분법적인 평가는 상대방을 실제 모습과 다르게 판단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안한 자리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다른 어색한 모임에 나가 가만히 있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런 면만 보고 ‘아싸’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 않냐”면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그러니 억지로 ‘인싸’ 혹은 ‘아싸’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그 점을 강점으로 활용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