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2 '회사가기 싫어' 방송화면 요즘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주력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다양한 공헌활동을 펼친다. 그런데 외부의 소외계층을 챙기는 만큼 내부 직원들의 삶을 들여다본 적 있을까. 혹 대외적으로는 인권, 삶의 질 개선, 함께 사는 세상 등을 부르짖으며 정작 자사 내에서의 기업윤리마저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힘쓰고 인권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시작을 알린 것이다. 지위나 관계에 있어 우위를 선점한 이들의 괴롭힘 행위를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상사나 후임이나 모두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명확한 기준을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정부가 정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현실의 온도차를 짚어본다. 고용노동부 정책 자료실에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이 게시돼 있다. 직장 안에서의 괴롭힘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 법 시행이 결정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해본 이들이 66.3%로 압도적이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결과는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는 응답이 73.3%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 이건 괴롭힘이 맞나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당사자와의 관계 ▲행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 ▲행위 내용 및 정도 ▲행위 기간(일회적/단기간/지속적) 등 요소를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았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됐다는 결과가 발생해야 괴롭힘을 당했다라는 결론에 닿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한다거나 타 직원 앞 혹은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이 이어지는 상황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 통념상’ ‘정당한 이유없이’ ‘지나치게’ 등 단어들이 많아 개별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신체 폭행이나 업무대화창 등에서 이뤄진 폭언, 즉 증거가 남는 괴롭힘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규정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잦은 업무 반려로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이 신고했다 치자. 그리고 직원이 업무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상사가 ‘의도적’인 업무반려였다고 한다 해도 이를 입증할 방법은 명쾌하지 않다. 설사 상사가 개인적 감정, 혹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업무를 반려했다 하더라도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거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보고서였기 때문”이라 항변한다면 괴롭힘이라는 걸 증명할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객관적 업무 성과가 아닌 개인적 감정이 섞여 들어간 인사고과를 내린 상사에 부당함을 느낀다 해도 이를 입증할 방법이나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이를 괴롭힘이라고 주장하기 힘들다. 이른바 ‘조작적 피해자’도 적지 않다. 사내에서 진화된 괴롭힘의 종류인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조작적 피해자의 경우는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내놓은 ‘국내 직장 괴롭힘의 실태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에서 15개 산업당 3000명씩의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21.4%의 근로자들이 주 1회 이상 따돌림을 경험한 ‘조작적 피해자’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대형기업 여성 팀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도 전에 같은 성별의 후배 직원에게 사내 고발을 당해 휴직당했다. 팀장 A씨가 후배 직원들과 회의 중 황당한 거래처에 대해 욕설을 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후배 직원은 A씨의 발언이 거래처를 향한 것이라는 건 알지만 욕설을 들은 건 자신이라며 이를 폭언으로 사내 복지 센터에 신고했고, A씨는 항변했지만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면 잘못”이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 휴직 기간을 가져야 했다. A씨는 후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섭다며 결국 해외 지사 파견을 선택했다. 모 기업 본부장 B씨는 근로자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 생긴 고민을 토로한다. 그는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들 대부분이 회사차원에서나 직무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추가적 업무에 대해 “왜 내가 해야 하나요?” “못합니다”라고 거절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신입 때라면 말도 안되는 하극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여기 학교 아니고 직장이야!’라고 내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이전까지 당연했던 일들이나 업무상 필요한 추가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게 됐다. 신입사원들의 분위기 역시 ‘일 더 시키기만 해봐라’ 식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너무 고민스럽다”고 말한다. 사진=tvN '미생' 방송화면 ■ 사람도 사람이지만 조직 바뀌는 게 급선무 문제는 이처럼 같은 상황을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는 모호한 상황이나 쉽게 증명하기 힘든 지능형 괴롭힘이 훨씬 더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게시한 매뉴얼에 기재된 50여 가지 사례를 벗어나는 일들이 76만 여 업체에 더욱 많다는 것이 근로자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실질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이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 중에서 60.3%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문제를 직접 제기한 사람들은 26.4%,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12%에 불과했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 중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53.9%로 절반을 넘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효과는 아직 수치로 집계된 바 없지만 비슷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갑질의 또다른 이름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신고로 인해 괜한 오해를 사거나 아웃사이더가 될까봐 무서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회사 차원에서의 적극적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과도기를 거치면 어느 정도 정착돼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본다. 근로자들 역시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겠다” “업무적 대화 외에는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하는가 하면 “어쨌든 부당한 대우에 대한 토로를 할 창구가 생겼다” “길이 뚫린 것 같다”는 희망적 분위기를 전망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회사가 어떤 대처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모범적 사례로 꼽히는 기업이 바로 포스코다. 고용노동부 관련 매뉴얼에도 상세히 소개돼 있을 정도. 이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 ‘힘희롱’이란 용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포스코는 직장 내 업무 환경을 중요시 생각해왔다. 특히 이 기업의 대응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스코는 우선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동안 신고자의 신변보호에 중점을 둔다. 신고자 신변 보안에 신경 써 2차 피해를 막는 데 주력하고 사건을 축소하려거나 은폐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행위를 지양한다. 만약 괴롭힘 정황이 있었다고 판단됐을 경우에도 가해자의 직책이나 성과 등 사안과 관련없는 요건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으려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름만 징계에 머물지 않고 퇴사 조치까지 발빠르게 이어지기에 ‘살아있는 조항’으로 분류된다. 이후에도 괴롭힘 전례를 인사에 반영하고 매년 초 시무에 앞서 전 임직원이 온라인상으로 윤리규범을 읽고 서명하며 환기하는 절차를 거치는 등 건전한 사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정부와 기업, 조화로운 합심 필요 괴롭힘의 정도나 하한선을 정량화할 수는 없다.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시선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인해 상식적 지적이나 지시도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반대편에서는 회사 차원, 직원 간 부당하거나 불필요한 지시 및 강요가 줄어들 것이란 낙관론이 펼쳐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행돼야 할 것은 회사의 태도라는 것이 여론의 중론이다. 사내 규범을 마련하고 예방에 주력하고 ‘눈가리고 아웅’ 식의 사후 처리를 지양할 때 잠재적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대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저서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을 통해서만 해결하려다 보면 정상적인 사내 관계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정부가 여론에 휩쓸려 처벌 위주 정책을 만들기보다 ‘처벌’ 위주가 아닌 ‘지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고 제한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구 교수는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자체적인 인사, 조직관리 역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더 절실히 바랄 수도 있다”며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근로가 많은 경우 기업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만 기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정부가 기업 및 사회구성원과 함께 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수행해주는 합리적 국가주의 체제가 필효하며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사태를 외부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연구활동을 통한 예방 인프라 구축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동] ① "인권·노동" 사회적 책임 부르짖는 기업, 안은 살피고 계십니까?

문다영 기자 승인 2019.07.18 14:03 | 최종 수정 2139.02.01 00:00 의견 0
사진=KBS2 '회사가기 싫어' 방송화면
사진=KBS2 '회사가기 싫어' 방송화면

요즘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주력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다양한 공헌활동을 펼친다. 그런데 외부의 소외계층을 챙기는 만큼 내부 직원들의 삶을 들여다본 적 있을까. 혹 대외적으로는 인권, 삶의 질 개선, 함께 사는 세상 등을 부르짖으며 정작 자사 내에서의 기업윤리마저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힘쓰고 인권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시작을 알린 것이다. 지위나 관계에 있어 우위를 선점한 이들의 괴롭힘 행위를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상사나 후임이나 모두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명확한 기준을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정부가 정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현실의 온도차를 짚어본다.

고용노동부 정책 자료실에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이 게시돼 있다. 직장 안에서의 괴롭힘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 법 시행이 결정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해본 이들이 66.3%로 압도적이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결과는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는 응답이 73.3%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사진=고용노동부

■ 이건 괴롭힘이 맞나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당사자와의 관계 ▲행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 ▲행위 내용 및 정도 ▲행위 기간(일회적/단기간/지속적) 등 요소를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았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됐다는 결과가 발생해야 괴롭힘을 당했다라는 결론에 닿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한다거나 타 직원 앞 혹은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이 이어지는 상황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 통념상’ ‘정당한 이유없이’ ‘지나치게’ 등 단어들이 많아 개별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신체 폭행이나 업무대화창 등에서 이뤄진 폭언, 즉 증거가 남는 괴롭힘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규정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잦은 업무 반려로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이 신고했다 치자. 그리고 직원이 업무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상사가 ‘의도적’인 업무반려였다고 한다 해도 이를 입증할 방법은 명쾌하지 않다. 설사 상사가 개인적 감정, 혹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업무를 반려했다 하더라도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거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보고서였기 때문”이라 항변한다면 괴롭힘이라는 걸 증명할 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객관적 업무 성과가 아닌 개인적 감정이 섞여 들어간 인사고과를 내린 상사에 부당함을 느낀다 해도 이를 입증할 방법이나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이를 괴롭힘이라고 주장하기 힘들다.

이른바 ‘조작적 피해자’도 적지 않다. 사내에서 진화된 괴롭힘의 종류인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조작적 피해자의 경우는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내놓은 ‘국내 직장 괴롭힘의 실태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에서 15개 산업당 3000명씩의 표본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21.4%의 근로자들이 주 1회 이상 따돌림을 경험한 ‘조작적 피해자’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대형기업 여성 팀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도 전에 같은 성별의 후배 직원에게 사내 고발을 당해 휴직당했다. 팀장 A씨가 후배 직원들과 회의 중 황당한 거래처에 대해 욕설을 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후배 직원은 A씨의 발언이 거래처를 향한 것이라는 건 알지만 욕설을 들은 건 자신이라며 이를 폭언으로 사내 복지 센터에 신고했고, A씨는 항변했지만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면 잘못”이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 휴직 기간을 가져야 했다. A씨는 후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섭다며 결국 해외 지사 파견을 선택했다.

모 기업 본부장 B씨는 근로자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 생긴 고민을 토로한다. 그는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들 대부분이 회사차원에서나 직무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추가적 업무에 대해 “왜 내가 해야 하나요?” “못합니다”라고 거절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신입 때라면 말도 안되는 하극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여기 학교 아니고 직장이야!’라고 내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이전까지 당연했던 일들이나 업무상 필요한 추가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게 됐다. 신입사원들의 분위기 역시 ‘일 더 시키기만 해봐라’ 식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너무 고민스럽다”고 말한다.

사진=tvN '미생' 방송화면
사진=tvN '미생' 방송화면

■ 사람도 사람이지만 조직 바뀌는 게 급선무

문제는 이처럼 같은 상황을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는 모호한 상황이나 쉽게 증명하기 힘든 지능형 괴롭힘이 훨씬 더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게시한 매뉴얼에 기재된 50여 가지 사례를 벗어나는 일들이 76만 여 업체에 더욱 많다는 것이 근로자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실질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이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 중에서 60.3%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문제를 직접 제기한 사람들은 26.4%,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12%에 불과했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 중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53.9%로 절반을 넘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효과는 아직 수치로 집계된 바 없지만 비슷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갑질의 또다른 이름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신고로 인해 괜한 오해를 사거나 아웃사이더가 될까봐 무서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회사 차원에서의 적극적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과도기를 거치면 어느 정도 정착돼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본다. 근로자들 역시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겠다” “업무적 대화 외에는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하는가 하면 “어쨌든 부당한 대우에 대한 토로를 할 창구가 생겼다” “길이 뚫린 것 같다”는 희망적 분위기를 전망하는 등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회사가 어떤 대처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모범적 사례로 꼽히는 기업이 바로 포스코다. 고용노동부 관련 매뉴얼에도 상세히 소개돼 있을 정도. 이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 ‘힘희롱’이란 용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포스코는 직장 내 업무 환경을 중요시 생각해왔다. 특히 이 기업의 대응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스코는 우선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동안 신고자의 신변보호에 중점을 둔다. 신고자 신변 보안에 신경 써 2차 피해를 막는 데 주력하고 사건을 축소하려거나 은폐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행위를 지양한다. 만약 괴롭힘 정황이 있었다고 판단됐을 경우에도 가해자의 직책이나 성과 등 사안과 관련없는 요건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으려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름만 징계에 머물지 않고 퇴사 조치까지 발빠르게 이어지기에 ‘살아있는 조항’으로 분류된다. 이후에도 괴롭힘 전례를 인사에 반영하고 매년 초 시무에 앞서 전 임직원이 온라인상으로 윤리규범을 읽고 서명하며 환기하는 절차를 거치는 등 건전한 사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정부와 기업, 조화로운 합심 필요

괴롭힘의 정도나 하한선을 정량화할 수는 없다.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시선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인해 상식적 지적이나 지시도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반대편에서는 회사 차원, 직원 간 부당하거나 불필요한 지시 및 강요가 줄어들 것이란 낙관론이 펼쳐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행돼야 할 것은 회사의 태도라는 것이 여론의 중론이다. 사내 규범을 마련하고 예방에 주력하고 ‘눈가리고 아웅’ 식의 사후 처리를 지양할 때 잠재적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대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저서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을 통해서만 해결하려다 보면 정상적인 사내 관계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정부가 여론에 휩쓸려 처벌 위주 정책을 만들기보다 ‘처벌’ 위주가 아닌 ‘지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고 제한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구 교수는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자체적인 인사, 조직관리 역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더 절실히 바랄 수도 있다”며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근로가 많은 경우 기업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만 기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정부가 기업 및 사회구성원과 함께 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수행해주는 합리적 국가주의 체제가 필효하며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사태를 외부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연구활동을 통한 예방 인프라 구축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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