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2 '회사 가기 싫어' 일본작가 구라치 준의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란 소설집에 수록된 ‘사내 편애’라는 단편은 독특한 설정으로 이목을 끈다. ‘사내 편애’는 회사의 인사관리 시스템을 총괄하는 컴퓨터가 변덕으로 신입사원인 주인공을 편애하는 기이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전체적 내용보다 이 작품에서 회사의 인사관리 시스템은 왜 컴퓨터가 장악하고 있는 걸까에 주목할 만하다. 비용절감효과 등 회사 사정과 더불어 젊은 직원들이 상사의 괴롭힘, 무능함, 출세나 연봉 인상을 위한 위압 등을 이유로 인사관리에 있어 ‘기계적’ 처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설정이라곤 볼 수 없다. 성과를 빼앗아가는 상사는 비일비재하다. 얼굴이나 스펙으로 무시하는 동료나 선배도 적지 않다. 그뿐인가. 업무를 이유로 자신의 무료한 저녁시간을 술로 때우자고 권하는 상사,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거부했을 시 인사고과에 적용하겠다는 상사는 예로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오죽하면 어느 회사로 가든 진상은 꼭 하나 있다는 ‘진상 보존의 법칙’이 나돌겠는가. 이는 비단 회사, 특정 국가의 사정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은 존재한다. 이에 따라 괴롭힘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여러 형태로 나타났고 이뤄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최근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협약을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픽사베이 ■ 각 국가마다 '갑질' 뛰어넘는 직장 괴롭힘 용어 존재 우선 프랑스에서는 지난 1998년 비물리적인 직장 내 괴롭힘, 즉 심리적 괴롭힘을 뜻하는 아르셀몽이라는 용어가 대두됐다. 이후인 2002년부터 형법과 공직자 규정 등에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했고 처벌 조항을 도입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이 노동법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사실로 판명났을 경우 해당 회사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이는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환경까지 노동법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노동법이란 포괄적 개념 하에 운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각 회사들의 인사 시스템이나 지시 하달 등 체계를 제한적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문제점은 있지만 일찍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덕에 어느 국가보다도 풍부한 사례와 이에 대한 판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도 정착한 상태다. 다만 지난 6월 YTN 뉴스에 출연한 국제회의 통·번역사 이에바 씨는 현재 프랑스 갑질 형태에 대해 “하급직원에게 커피를 쏟는다거나 비행기에서 소변을 본다거나 최근에 미투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로 성희롱 자체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고 알리며 여전히 프랑스 사회 내부에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이기에 실질적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미국의 경우는 따로 괴롭힘 금지법이 마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성(性), 나이, 인종 등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있다. 단적인 예가 2018년 있었던 자동차 기업 포드와 레바논 출신 근로자의 소송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메트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5년간 포드에서 근무한 공학박사 파이살 칼라프는 억양 등 이유로 상사에 차별을 받았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가 이를 신고하자 포드는 칼라프 박사를 해고했다. 그렇게 시작된 소송의 결과는 칼라프 박사의 대승이었다. 미국 연방법원은 퇴직연금 손실액과 정신적 피해배상금 등 1680만 달러를 배상하라 판결했다. 관련법은 없지만 미국의 직장 내 부당한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의 보호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이와 함께 미국은 직장학대연구소를 운영, 지속적으로 직장인들이 어떤 종류와 강도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미국 사회는 이러한 직장인들의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지 등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있다. 일본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용어가 있다. 직장 내 권력 ‘파워’와 괴롭힘을 뜻하는 영단어 ‘허래스먼트’(Harassment)가 더해진 ‘파워하라’다. 관련법은 없지만 일본 역시 일찌감치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다. 2007년 법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 기업들이 괴롭힘 사안과 관련해 소송을 당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상품까지 출시됐을 정도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년 지속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일본은 최근 심각함을 인지하고 처벌 및 사회적 인식 제고를 높이기 위한 관련법 제정에 한창이다. 사진=고용노동부 ■ '직장 내 괴롭힘' 인지→법제화→인식 정착 노력 중 이밖에 스웨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만들어서 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임이 입증됐을 경우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이 제정돼 있다. 매우 강력하게 대처하는 곳도 있다. 폴란드에서는 노동법을 통해 굴욕감, 곤란함, 고립과 격리 등을 유발하는 행위까지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 내 원활한 의사소통 저해나 업무효율성 급감 등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기보다 괴롭힘 피해를 당하는 근로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제화하거나, 시행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의 형태, 고용방식, 근로자의 생각, 근무 환경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종류와 방식,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시켰다. “내가 선배인데”, “회사니까” 라는 식의 발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더욱이 최근 기업들은 너도나도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으며 다양한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권, 삶의 질 개선 등을 외치면서 정작 자사 내에서의 기업윤리마저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인권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정부 매뉴얼이 모호하고 어디에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법 시행이 점차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동] ② "갑질? 아르셀몽, 파워하라…" 해외도 만연한 직장 괴롭힘, 대처는

문다영 기자 승인 2019.07.18 14:23 | 최종 수정 2139.02.01 00:00 의견 0
사진=KBS2 '회사 가기 싫어'
사진=KBS2 '회사 가기 싫어'

일본작가 구라치 준의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란 소설집에 수록된 ‘사내 편애’라는 단편은 독특한 설정으로 이목을 끈다. ‘사내 편애’는 회사의 인사관리 시스템을 총괄하는 컴퓨터가 변덕으로 신입사원인 주인공을 편애하는 기이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전체적 내용보다 이 작품에서 회사의 인사관리 시스템은 왜 컴퓨터가 장악하고 있는 걸까에 주목할 만하다. 비용절감효과 등 회사 사정과 더불어 젊은 직원들이 상사의 괴롭힘, 무능함, 출세나 연봉 인상을 위한 위압 등을 이유로 인사관리에 있어 ‘기계적’ 처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설정이라곤 볼 수 없다. 성과를 빼앗아가는 상사는 비일비재하다. 얼굴이나 스펙으로 무시하는 동료나 선배도 적지 않다. 그뿐인가. 업무를 이유로 자신의 무료한 저녁시간을 술로 때우자고 권하는 상사,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거부했을 시 인사고과에 적용하겠다는 상사는 예로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오죽하면 어느 회사로 가든 진상은 꼭 하나 있다는 ‘진상 보존의 법칙’이 나돌겠는가.

이는 비단 회사, 특정 국가의 사정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은 존재한다. 이에 따라 괴롭힘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여러 형태로 나타났고 이뤄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최근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협약을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각 국가마다 '갑질' 뛰어넘는 직장 괴롭힘 용어 존재

우선 프랑스에서는 지난 1998년 비물리적인 직장 내 괴롭힘, 즉 심리적 괴롭힘을 뜻하는 아르셀몽이라는 용어가 대두됐다. 이후인 2002년부터 형법과 공직자 규정 등에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했고 처벌 조항을 도입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이 노동법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사실로 판명났을 경우 해당 회사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이는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환경까지 노동법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노동법이란 포괄적 개념 하에 운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각 회사들의 인사 시스템이나 지시 하달 등 체계를 제한적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문제점은 있지만 일찍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덕에 어느 국가보다도 풍부한 사례와 이에 대한 판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도 정착한 상태다. 다만 지난 6월 YTN 뉴스에 출연한 국제회의 통·번역사 이에바 씨는 현재 프랑스 갑질 형태에 대해 “하급직원에게 커피를 쏟는다거나 비행기에서 소변을 본다거나 최근에 미투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로 성희롱 자체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고 알리며 여전히 프랑스 사회 내부에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이기에 실질적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미국의 경우는 따로 괴롭힘 금지법이 마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성(性), 나이, 인종 등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있다. 단적인 예가 2018년 있었던 자동차 기업 포드와 레바논 출신 근로자의 소송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메트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5년간 포드에서 근무한 공학박사 파이살 칼라프는 억양 등 이유로 상사에 차별을 받았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가 이를 신고하자 포드는 칼라프 박사를 해고했다. 그렇게 시작된 소송의 결과는 칼라프 박사의 대승이었다. 미국 연방법원은 퇴직연금 손실액과 정신적 피해배상금 등 1680만 달러를 배상하라 판결했다. 관련법은 없지만 미국의 직장 내 부당한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의 보호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이와 함께 미국은 직장학대연구소를 운영, 지속적으로 직장인들이 어떤 종류와 강도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미국 사회는 이러한 직장인들의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지 등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있다.

일본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용어가 있다. 직장 내 권력 ‘파워’와 괴롭힘을 뜻하는 영단어 ‘허래스먼트’(Harassment)가 더해진 ‘파워하라’다. 관련법은 없지만 일본 역시 일찌감치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다. 2007년 법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 기업들이 괴롭힘 사안과 관련해 소송을 당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상품까지 출시됐을 정도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년 지속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일본은 최근 심각함을 인지하고 처벌 및 사회적 인식 제고를 높이기 위한 관련법 제정에 한창이다.

사진=고용노동부
사진=고용노동부

■ '직장 내 괴롭힘' 인지→법제화→인식 정착 노력 중

이밖에 스웨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만들어서 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임이 입증됐을 경우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이 제정돼 있다. 매우 강력하게 대처하는 곳도 있다. 폴란드에서는 노동법을 통해 굴욕감, 곤란함, 고립과 격리 등을 유발하는 행위까지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 내 원활한 의사소통 저해나 업무효율성 급감 등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기보다 괴롭힘 피해를 당하는 근로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제화하거나, 시행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의 형태, 고용방식, 근로자의 생각, 근무 환경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종류와 방식,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시켰다. “내가 선배인데”, “회사니까” 라는 식의 발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더욱이 최근 기업들은 너도나도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으며 다양한 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권, 삶의 질 개선 등을 외치면서 정작 자사 내에서의 기업윤리마저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인권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정부 매뉴얼이 모호하고 어디에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법 시행이 점차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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