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풍성장 진격의 '미래에셋'
2. 독 품은 반전의 '한투'
3. 변화한 아픈 손가락 '삼성'
4. 울타리 넘은 저력의 'NH'
5. 실리 또 실리의 '키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사진 = NH투자증권)
증권 빅5 중 유일하게 오너가 없는 곳이 NH투자증권이다. 증권 지분 51%를 보유한 농협금융지주의 100% 대주주가 농협중앙회다. 농협이 증권에 대해서만은 남다르게(?) 챙기긴 하나 농협금융 정체성과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여타 금융그룹과는 다른 게 현실이다. 여타 경쟁사들처럼 강력한 오너십을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기에 한계가 분명하다. CEO와 임원 인사, 자금조달, 신사업, 임직원 연봉 등 세세한 부분까지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8년전 매물로 나온 NH투자증권(옛 우리투자증권)이 농협금융 품에 안겼을 때, 덩치로는 1등임에도 세간의 기대치가 그리 높진 않았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그랬던 NH투자증권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줄기차게 성장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현 추세라면 미래에셋과 한투 양강 구도를 가장 빨리 깰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잘 둔 자회사 덕에 농협금융그룹 역시 국내 4대금융지주 타이틀에 욕심을 낼 수 있게 됐다.
■ 농협금융내 증권 이익비중 40%, 은행을 넘본다?
NH투자증권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조2939억원이다. 창사 이래 첫 1조원 돌파다. 영업이익은 전년(2020년) 대비 66% 급증했다. 순이익도 9314억원으로 60% 남짓 올랐다. 농협금융지주 순이익이 2조2919억원이니 그룹내 증권의 비중은 40% 수준이 됐다.
NH농협생명(1657억원), NH농협손보(861억원), NH농협캐피탈(960억원)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 추세라면 수년내 그룹내 맏형격인 농협은행(순이익 1조5556억원)과 이익 경쟁을 한 번 해볼 만도 하다. 더욱이 농협금융내 계열사간 대형 IB딜을 증권이 주도하고 공동투자도 한다. 농협금융으로선 8년전 인수전 승리가 더 없이 고맙다.
부문별로도 균형있는 성장을 이어간다. 국내외 주식점유율 확대에 따른 수탁수수료 상승, IB와 금융상품 판매수수료 증가, 운용과 이자수익 확대 등 고른 상승세다. 최근 지주에서 추진하는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NH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7조2000억원. 자본력으로는 미래에셋증권(10조6135억)에 이어 한국투자증권(7조1510억원)과 2위~3위를 다툰다. 몸집을 더 불린 NH는 올해 IB부문에서 진검 승부를 해보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 은행 울타리 속 감출 수 없는 증권 저력
여전히 은행과 농협이란 울타리의 답답함은 있다. 대표적으로 경쟁사대비 성과급 체계가 보수적이다. 2018년 10여명의 핵심 IB인력 이탈 등 고급 인력 누수가 끊이질 않았다. 우수 인재 한 명이 수십, 수백억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IB 특성상 성과보수 체계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진다.
CEO의 연봉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공시된 지난해 빅5 증권사 CEO 연봉을 보면 NH 정영채 사장은 5억1200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미래에셋 최현만 회장이 4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의 장석훈 사장은 23억원 수준. 보수가 박하기로 유명한 키움의 이현 전 사장도 7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중소형사 CEO의 연봉과 비교해봐도 NH투자증권 CEO의 연봉은 최저 수준이다.
은행 등 금융계열사의 낙하산 인사 역시 증권의 야성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다. 증권사 한 IB본부 대표는 "증권IB는 그 어느 분야보다 야성이 필요한 곳이다. 리스크에 대한 접근과 개념이 다르니 은행 마인드로는 엄두도 못내는 비즈니스가 많다. 은행 중심의 금융그룹 증권 계열사들이 자꾸 밀리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NH투자증권은 끊임없이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농협의 견제를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다. 현재 NH투자증권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중에선 KB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와는 어느정도 격차를 벌린 상태다.
■ 발군의 'CEO 파워'
"정 사장이 회사 하나는 정말 잘 키웠다."
정영채 사장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지 않은 인사들 역시 정 사장의 공에 대해선 인정하는 분위기다. 자타공인 IB 전문가인 정 사장은 국내 IB분야에선 영향력 넘버원 인사. 정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자금, IB, 기획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90년대 말 대우사태 당시 일개 과장급에 불과했지만 대우 계열사 구조조정에 직접 관여했을 정도로 당시 경영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후 2005년 NH 전신인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로 합류했고 13년간 IB사업부를 이끌며 NH IB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일궈낸 그는 2018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매년 사상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후보로 정 사장을 단독 추대했다. 임추위는 "불확실한 금융환경 속 경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 자본시장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 사장을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옵티머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정 사장을 대체할 만한 인사는 없다고 봤다. 연임은 오는 23일 주주총회서 확정된다.
여느 금융그룹과는 정체성이 사뭇 다른, 신구가 뒤섞이고 내외풍이 시달릴 수밖에 없는 농협금융내에서 NH투자증권은 그렇게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