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는 지난 5월 올리브영과 19번째로 PLCC(상업자 전용 신용카드) 출시를 포함한 협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현대카드가 다양한 업종의 챔피언 브랜드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계열 분리를 앞두고 그룹 의존도를 줄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바라보고 있다.(자료=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을 수장으로 받아들인 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아직 끊어내진 못했지만 정 회장의 최고경영자(CEO) 지위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정몽구에서 아들 정의선으로 경영권이 자연스럽게 안착되는 분위기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주목받는 이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금융 3사(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를 책임져 온 정태영 부회장이다. 1960년생으로 어느덧 60대 중반의 나이다. 그룹 안팎에선 ‘정의선 시대’가 오면 정 부회장이 금융 3사를 이끌고 계열 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2021년 9월 현대캐피탈이 그룹 직할 체제로 편입되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이제 남은 회사는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2003년부터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워 온 회사이기에 두 회사만큼은 정태영-정명이 부부의 소유가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두 사람의 지분 영향력은 꾸준히 확대돼 그룹 영향력과 대동소이해졌다. 때가 무르익어 그룹의 승인이 떨어지기만 하면 계열 분리가 그리 어렵지 않은 단계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계열 분리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왜일까. ■현대카드 계열분리에 대한 다른 시각 가장 큰 이유는 신용카드업 특성에 있다. 신용카드업은 여신전문금융업이다. 은행과 달리 수신(受信) 기능이 없고 말 그대로 여신(與信)만 전문으로 한다. 카드사는 여신, 즉 돈을 빌려줄 때 자기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빌려 온 돈을 다시 빌려준다. 카드사가 예금 이외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는 신용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돈을 싸게 빌려 오려면 신용등급이 높아야 한다. 이는 현재 카드업계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국내 카드사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금융지주 계열과 삼성, 현대, 롯데 등 재벌 계열이다. 은행과 견줄 정도로 신용등급이 높은 재벌 그룹만이 신용카드업을 영위 중인 것이 확인된다. 그만큼 신용카드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란 의미다. 이런 배경으로 봤을 때 카드사는 독자 생존력을 갖기 쉽지 않다. 불사(不死)의 믿음을 주는 ‘뒷배’가 있어야 사업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다. 현대카드에게 뒷배는 ‘현대자동차’다. 카드사가 카드채를 발행할 때 낮은 이자를 줄 수 있는 이유는 ‘뒷배’의 신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카드의 최대주주가 현대·기아차가 아닌 ‘정태영-정명이’ 개인으로 전환될 경우 신용등급은 어떻게 될까. 상당한 후퇴가 불가피해진다. 개인이 소유한 카드사의 결말은 LG카드가 잘 보여주고 있다. 2003년 카드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신용카드업계 1위는 LG카드였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강화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다중채무자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카드채 수요가 급감했다.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사의 특성상 채권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막히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 우리, 외환 등 은행 계열 카드사들은 신용의 원천인 은행과의 합병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다. 삼성, 현대 등 재벌 계열 카드사들은 그룹의 유상증자로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LG카드는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최대주주가 법인이 아닌 그룹 오너 일가였기 때문이다. LG카드의 2003년 당기순손실 규모는 5조6000억원에 달했다.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결국 LG그룹은 LG카드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고 눈물을 머금고 금융업에서 철수했다. LG투자증권 경영권까지 넘어가 LG그룹은 아직까지도 금융업에서 철저히 소외된 상태다. ■ 개인 소유 카드사의 비극 'LG카드' 카드사는 돈을 싸게 빌려 와서 비싸게 빌려줘야 수익이 는다. 최대주주 변경은 돈을 싸게 빌려 오는 쪽 이슈다. 카드업은 최근 들어 비싸게 빌려주는 쪽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금융당국은 영세 중소가맹점의 높은 수수료가 논란이 되면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합당한 비용(적격비용)을 수수료율에 반영토록 했다. 특히 중소가맹점의 경우 적격비용 미만의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차등구조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적격비용 산정이 있었고 그 때마다 수수료율은 계속 떨어졌다. 신용카드 결제액이 증가함에도 카드사들의 수익은 늘지 않았던 이유다. 2007년 6.5%였던 업계 순이익률은 1%대로 떨어지는 등 오히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신용카드업은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지만 현재는 사양산업 취급을 받고 있다. 카드업의 고유사업은 판매신용공여인데, 이 본업이 지속적인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위협을 받고 있다. 지급결제 부문에서 수익성이 떨어지자 카드사들은 비용 경감으로 대응했다. 요즘 카드 이용 혜택이 예전만 못한 이유다. 혜택이 줄어드니 성장에 문제가 생겼다. 카드사들은 자의반 타의반 부수 업무 쪽으로 눈을 돌렸다. 현금서비스, 신용대출 등 현금 대출을 강화한 것. 하지만 고금리 환경이 조성되면서 연체율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본업, 부업 모두 활로가 잘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지급결제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 흐름이 위협적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지급결제 사업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에서는 앱투앱 지급결제 방식이 보편화됐고, 서구에서는 신용카드 발급 없이 신용 구매가 가능한 후불결제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용카드업에는 모두 위협적인 변화 흐름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내놓은 결산보고서에서 이 같은 흐름을 “국내의 여신전문금융업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폭으로 위축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최근 국내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되어 시장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점잖게 표현했다. 하지만 현대카드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보다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다. 현대카드의 한 직원은 “현대캐피탈이 그룹 직속으로 빠져나갈 때 부러워한 직원들이 많았다”며 “일부 직원들의 경우 카드, 캐피탈 중 소속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는데 미래가 불투명한 카드회사에 남아 있기보다 현대차그룹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훨씬 현명한 선택으로 보는 분위기였다”고 전해왔다. 정태영 부회장이 이끌던 ‘금융 3사’ 체제에서는 카드, 캐피탈 소속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막상 캐피탈의 분리가 현실화되자 직원들의 동요가 상당했다는 것이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옛말 ‘정태영-정명이 부부’로선 앞으로 상당히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물려줄 수 없으면 내 것이 아니다. 물려주려면 계열 분리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대주주가 개인으로 바뀌면 카드사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범현대가 금융 기업 중에서 현대해상의 경우 개인(정몽윤)이 최대주주(22.0%)이긴 하지만 업종이 다르다. 보험사에는 매달 고객들 현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 최선책은 소유권도 갖고 경영 여건도 개선하는 것이다. 위기상황 발생 시 현대차그룹의 자동개입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범현대가의 지원도 지속돼야 한다. 현대카드 충성 고객의 상당수는 약 20만명의 그룹 임직원들이다. 백화점, 중공업, 보험 등 범현대가까지 고려하면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내부 식구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그룹과의 연결고리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 그런 가운데 신규 고객 확보와 수익성 개선이 뒷받침돼야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태영 부회장이 애플페이를 전격 도입하고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계열 분리에 대한 갈망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결정권은 정의선 회장이 갖고 있고 우선 순위에서도 한참 밀려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즉,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여부에 따라 관련된 금융 계열사의 구도가 어떤 식으로 바뀔 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올해 들어 일제히 현대카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핵심 사유는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 상향’이었다. 카드사는 독자 생존력을 갖기 쉽지 않다. 불사(不死)의 믿음을 주는 ‘뒷배’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현대카드에게 그 뒷배는 ‘현대자동차’다. 시장에서 두 회사의 신용등급이 연동되는 이유다.(자료=나이스신용평가) 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 재벌 중 하나인 현대차그룹의 금융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현대차와 금융⑤] 현대카드가 넘어야 할 산

쉽지만은 않은 현대카드 계열분리
그룹 뒷배 없이 독자생존 만만찮아
신용등급 등 상당한 후퇴 불가피
성장동력 떨어진 신용카드업 한계도
현대캐피탈만 그룹 직속되자 허탈 분위기
정태영의 희망, 그룹 지배구조 방향에 달려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6.03 14:00 | 최종 수정 2024.06.05 09:26 의견 0

현대카드는 지난 5월 올리브영과 19번째로 PLCC(상업자 전용 신용카드) 출시를 포함한 협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현대카드가 다양한 업종의 챔피언 브랜드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계열 분리를 앞두고 그룹 의존도를 줄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바라보고 있다.(자료=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을 수장으로 받아들인 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아직 끊어내진 못했지만 정 회장의 최고경영자(CEO) 지위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정몽구에서 아들 정의선으로 경영권이 자연스럽게 안착되는 분위기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주목받는 이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금융 3사(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를 책임져 온 정태영 부회장이다. 1960년생으로 어느덧 60대 중반의 나이다. 그룹 안팎에선 ‘정의선 시대’가 오면 정 부회장이 금융 3사를 이끌고 계열 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2021년 9월 현대캐피탈이 그룹 직할 체제로 편입되면서 예상은 빗나갔다.

이제 남은 회사는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2003년부터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워 온 회사이기에 두 회사만큼은 정태영-정명이 부부의 소유가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두 사람의 지분 영향력은 꾸준히 확대돼 그룹 영향력과 대동소이해졌다. 때가 무르익어 그룹의 승인이 떨어지기만 하면 계열 분리가 그리 어렵지 않은 단계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계열 분리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왜일까.

■현대카드 계열분리에 대한 다른 시각

가장 큰 이유는 신용카드업 특성에 있다. 신용카드업은 여신전문금융업이다. 은행과 달리 수신(受信) 기능이 없고 말 그대로 여신(與信)만 전문으로 한다. 카드사는 여신, 즉 돈을 빌려줄 때 자기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빌려 온 돈을 다시 빌려준다. 카드사가 예금 이외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는 신용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돈을 싸게 빌려 오려면 신용등급이 높아야 한다.

이는 현재 카드업계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국내 카드사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금융지주 계열과 삼성, 현대, 롯데 등 재벌 계열이다. 은행과 견줄 정도로 신용등급이 높은 재벌 그룹만이 신용카드업을 영위 중인 것이 확인된다. 그만큼 신용카드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란 의미다.

이런 배경으로 봤을 때 카드사는 독자 생존력을 갖기 쉽지 않다. 불사(不死)의 믿음을 주는 ‘뒷배’가 있어야 사업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다. 현대카드에게 뒷배는 ‘현대자동차’다. 카드사가 카드채를 발행할 때 낮은 이자를 줄 수 있는 이유는 ‘뒷배’의 신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카드의 최대주주가 현대·기아차가 아닌 ‘정태영-정명이’ 개인으로 전환될 경우 신용등급은 어떻게 될까. 상당한 후퇴가 불가피해진다.

개인이 소유한 카드사의 결말은 LG카드가 잘 보여주고 있다. 2003년 카드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신용카드업계 1위는 LG카드였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강화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다중채무자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카드채 수요가 급감했다.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사의 특성상 채권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막히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 우리, 외환 등 은행 계열 카드사들은 신용의 원천인 은행과의 합병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다. 삼성, 현대 등 재벌 계열 카드사들은 그룹의 유상증자로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LG카드는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최대주주가 법인이 아닌 그룹 오너 일가였기 때문이다. LG카드의 2003년 당기순손실 규모는 5조6000억원에 달했다.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결국 LG그룹은 LG카드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고 눈물을 머금고 금융업에서 철수했다. LG투자증권 경영권까지 넘어가 LG그룹은 아직까지도 금융업에서 철저히 소외된 상태다.

■ 개인 소유 카드사의 비극 'LG카드'

카드사는 돈을 싸게 빌려 와서 비싸게 빌려줘야 수익이 는다. 최대주주 변경은 돈을 싸게 빌려 오는 쪽 이슈다. 카드업은 최근 들어 비싸게 빌려주는 쪽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금융당국은 영세 중소가맹점의 높은 수수료가 논란이 되면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합당한 비용(적격비용)을 수수료율에 반영토록 했다. 특히 중소가맹점의 경우 적격비용 미만의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차등구조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적격비용 산정이 있었고 그 때마다 수수료율은 계속 떨어졌다. 신용카드 결제액이 증가함에도 카드사들의 수익은 늘지 않았던 이유다. 2007년 6.5%였던 업계 순이익률은 1%대로 떨어지는 등 오히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신용카드업은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지만 현재는 사양산업 취급을 받고 있다. 카드업의 고유사업은 판매신용공여인데, 이 본업이 지속적인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위협을 받고 있다. 지급결제 부문에서 수익성이 떨어지자 카드사들은 비용 경감으로 대응했다. 요즘 카드 이용 혜택이 예전만 못한 이유다. 혜택이 줄어드니 성장에 문제가 생겼다. 카드사들은 자의반 타의반 부수 업무 쪽으로 눈을 돌렸다. 현금서비스, 신용대출 등 현금 대출을 강화한 것. 하지만 고금리 환경이 조성되면서 연체율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본업, 부업 모두 활로가 잘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지급결제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 흐름이 위협적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지급결제 사업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에서는 앱투앱 지급결제 방식이 보편화됐고, 서구에서는 신용카드 발급 없이 신용 구매가 가능한 후불결제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신용카드업에는 모두 위협적인 변화 흐름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내놓은 결산보고서에서 이 같은 흐름을 “국내의 여신전문금융업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폭으로 위축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최근 국내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되어 시장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점잖게 표현했다.

하지만 현대카드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보다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다. 현대카드의 한 직원은 “현대캐피탈이 그룹 직속으로 빠져나갈 때 부러워한 직원들이 많았다”며 “일부 직원들의 경우 카드, 캐피탈 중 소속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는데 미래가 불투명한 카드회사에 남아 있기보다 현대차그룹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훨씬 현명한 선택으로 보는 분위기였다”고 전해왔다. 정태영 부회장이 이끌던 ‘금융 3사’ 체제에서는 카드, 캐피탈 소속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막상 캐피탈의 분리가 현실화되자 직원들의 동요가 상당했다는 것이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옛말

‘정태영-정명이 부부’로선 앞으로 상당히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물려줄 수 없으면 내 것이 아니다. 물려주려면 계열 분리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대주주가 개인으로 바뀌면 카드사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범현대가 금융 기업 중에서 현대해상의 경우 개인(정몽윤)이 최대주주(22.0%)이긴 하지만 업종이 다르다. 보험사에는 매달 고객들 현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

최선책은 소유권도 갖고 경영 여건도 개선하는 것이다. 위기상황 발생 시 현대차그룹의 자동개입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범현대가의 지원도 지속돼야 한다. 현대카드 충성 고객의 상당수는 약 20만명의 그룹 임직원들이다. 백화점, 중공업, 보험 등 범현대가까지 고려하면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내부 식구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그룹과의 연결고리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 그런 가운데 신규 고객 확보와 수익성 개선이 뒷받침돼야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태영 부회장이 애플페이를 전격 도입하고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계열 분리에 대한 갈망이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결정권은 정의선 회장이 갖고 있고 우선 순위에서도 한참 밀려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즉,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여부에 따라 관련된 금융 계열사의 구도가 어떤 식으로 바뀔 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올해 들어 일제히 현대카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핵심 사유는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 상향’이었다. 카드사는 독자 생존력을 갖기 쉽지 않다. 불사(不死)의 믿음을 주는 ‘뒷배’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현대카드에게 그 뒷배는 ‘현대자동차’다. 시장에서 두 회사의 신용등급이 연동되는 이유다.(자료=나이스신용평가)


한국 경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재벌’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낳았다. 거친 풍파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재벌이지만 ‘부의 대물림’ 시기만큼은 이들도 예외다. 그들이 갈라서고 쪼개질 때 나라 경제가 휘청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가 금융 계열사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결정타가 된 적도 여러 번이다. 자본과 금융시장 역할이 갈수록 긴요해지는 요즘, 재벌가의 숨은 조력자 혹은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던 금융 계열사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한민국 대표 재벌 중 하나인 현대차그룹의 금융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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