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최근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내 상선·함정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이 조선소와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업무협약(MOU)을 맺었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가 K-조선·방산의 미국 진출을 위해 손을 잡을 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진출을 위한 다른 방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 한화오션,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 추진…11월 중 완료 전망
25일 한화오션에 따르면 지난 21일 공시를 통해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최종 인수는 오는 11월 중 완료 예정이다.
인수 규모는 1억 달러(약 1380억원) 규모 지분을 100% 인수한다. 구체적으로 한화오션이 40%인 552억원(4000만 달러) 규모를, 한화시스템이 신설법인 HS USA 홀딩스(가칭)에 883억원을 투자해 필리조선소 지분 60%를 인수할 계획이다.
이번 인수로 한화그룹은 미국 내 상선 및 함정 등 방산 분야 진출이 가능해진 역사전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로 상선 및 방산 분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화시스템은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과 해양시스템 기술력과 시너지 사업 확대를 기대한다”며 인수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조선업 진출은 국내 기업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미국 상선과 방산 시장 진출을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투자증권 이동현 연구위원은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미국 해양 국가전략의 판도를 뒤집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며 “남중국해 등 갈등이 확대되며 미국은 해군력 강화가 필요했고, 미국의 조선업 낙후로 한국과 파트너십을 강화할 의지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인수를 통해 구체적인 발판이 마련됐고 방산과 상선의 다양한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화오션은 이외 오스탈, 시추 업체 등 추가적인 업체 인수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필리조선소는 노르웨이 에너지 전문기업 아커의 미국 소재 자회사다. 1997년 미국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됐다.
■ HD현대重, 필리조선소와 MRO 협업 차질…“해외 거점들 통해 미국 진출 모색”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함정 MRO 시장 진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쟁사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HD현대중공업이 필리조선소와 맺은 MRO 관련 MOU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필리조선소와 미국 정부가 발주하는 함정과 관공선에 대한 신조와 MRO 사업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HD현대중공업은 필리조선소에 함정·관공선 설계와 자재 패키지 공급을 지원하고 미국 해군, 해경, 연방 해운청 함정과 관공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는 MOU 당시 “미국 현지 기업과 함정·관공선 건조와 MRO 사업 협력을 통해 세계 방산 시장에서 HD현대중공업의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이 지난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소재 필리조선소와 미 정부가 발주하는 함정과 관공선에 대한 신조 및 유지보수(MRO) 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오른쪽부터) HD현대중공업 주원호 특수선사업대표, 필리조선소 슈타이너 네르보빅 대표 (사진=HD현대중공업)
필리조선소와 협력의 중요성은 미국의 해운법 때문이다. 미국에서 조선업을 하기 위해선 현지 조선소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연안무역법을 통해 자국에서 건조한 선박만 미국 내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조선소와의 협업에 제동이 걸렸지만,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다양한 구상이 있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필리조선소와 MOU 관련 “아직 확정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MOU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협력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를 위한 자격인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 를 미국 해군에 신청해, 올해 하반기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며 “미국 함정사업에 대해 다각적인 전략적 구상과 접근방법을 갖고 있다. MRO 사업을 비롯한 미국 함정사업에 대해 여러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신예 이지스함을 유일하게 연구개발한 기술력과 역량을 바탕으로 해외거점별 파트너십 체결, 현지건조 체계 구축, 기술이전 패키지 표준화 등을 통해 권역별 해외거점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환태평양 벨트화 전략’을 발표했다”며 “이러한 전략에 따라 필리핀, 페루, 호주, 사우디 등 함정시장 진출의 핵심 거점을 교두보 삼아 미국 함정 시장을 공략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