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두나무 가상자산 학술행사 '디콘 2024'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두나무
"국경에 구애를 받지 않고 시야를 넓혀 글로벌 무대를 봐야 합니다.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국내 가상자산 산업도 더 키워야 합니다. 하나의 테크기업이 전세계 시장 장악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국내 가상자산 기업을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4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한 디지털자산 컨퍼런스(DCON)'에서 단상에 오른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글로벌'로 향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모호한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들어 국내 규제 상황의 답답함도 지적했다. 법적으로 가상자산과 암호화폐 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등 규제의 명확성 등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이날 세션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로 국내 "규제당국과 정부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굉장히 뒤쳐져 있다"고 지적하며 힘을 실었다.
디콘(DCON)은 올해로 2회를 맞은 가상자산 관련 학술행사로 두나무의 '업비트 D 컨퍼런스(UDC)'를 하루 앞두고 진행됐다. 국내 가상자산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가상자산 활용 사례와 경제적 효과’에 대해 논의한 첫 번째 세션에서 임병화 성균관대 핀테크 융합 교수는 “가상자산을 활용한 직접 결제, 스테이블 코인 이용, 크립토 카드 등 다양한 방식의 서비스가 글로벌 지급결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쇼피파이는 ‘솔라나페이’를 정식 결제 수단으로 허용했다. 미국 전자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는 올해 10월 스테이블코인인 ‘USD코인(USDC)’의 결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채권 발행,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토큰화된 금융자산의 발행 및 유통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자산 토큰화 시장이 2021년 23억달러에서 2030년 16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 교수는 가상자산 활용의 한계로 ▲제한된 관심과 도입의 한계 ▲신규 서비스에 대한 교육 문제 ▲높은 구현 및 운영 비용 ▲프로젝트의 수익성 부족 ▲규제 불확실성을 꼽았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도 "한국 규제당국과 정부는 한참 뒤쳐졌다"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가 아직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며 "주체인 정부 입장에서 보면 가상자산이 탈중앙 성격이다보니 헤게모니 싸움으로 볼 수 있어서 글로벌 트렌드에서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규제 당국이 여전히 2017년 12월 13일 발표한 '가상자산 긴급 대책' 당시 ▲외환거래법 위반 환치기 엄금 ▲은행의 본인 확인 철저 ▲거래소 신용공여 금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시장을 가이드하는 주체들이 블록체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일상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미국 대선에서 폴리마켓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허위 여론조사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폴리마켓에 이용자들이 베팅한 내용은 일종의 여론조사처럼 받아들여지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이러한 내용이 국내 선거에 약용될 경우,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석문 프레스토리서치 센터장은 "규제당국이 너무 가격 중심으로 접근하다 보니 블록체인의 비지니스 모델을 착각하고 있다"며 "가격에 매몰돼 손실을 막는 데 신경이 집중돼 다른 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다루며 '김치 프리미엄' 및 '비트코인 ETF 승인을 위한 규제 해소 방안'이 논의됐다.
발제자로 나선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현재 38개 국가에 진출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이용자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유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해외 이용자와 외국 기관투자자의 국내 유입이 가능해지면 김치 프리미엄과 같은 가격 괴리 현상이 해소되고 외화 창출이 가능해질 수 있다”며 “해외와 같이 국내도 법인과 기관 투자자가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미국 주도의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현재 글로벌 시장은 비트코인 ETF와 기관 투자가 가능한 국가와 불가능한 국가로 양분돼 시장 발전 속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재진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상임부회장은 "우리나라 사업자 거래소들은 해외 여러 주요국에 견주어 봤을 때 외국인들과 법인 투자자들의 이용이 막힌 '로컬 마켓'"이라며 "이것이 국내와 해외의 가격 차이가 나는 주요 이유"라고 김치 프리미엄의 원인을 지적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인베이스의 2022년 전체 투자자 가운데 기관 투자자는 80%에 이른다. 법인 투자가 규제에 가로막혀 투자자의 99%가 리테일 투자자인 한국과는 반대인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인에 문을 여는 문제를 논의할 때 블록체인 생태계의 전체 자본시장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미국 중심으로 전통 시장과 만나고 있고, 그 중심에 기관 투자자들이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시장이 디지털 생태계에서 갖는 지위와 역할은 어떻게 될 지 시스템적인 논의를 같이 해야 한다는 것. 현재 가상자산 거래량이 코스피와 코스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자본시장을 턴어라운드 시킬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재우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시스템적으로 우수하고 국가의 규제를 받는 안정적 시장이라는 것은 강점"이라며 "규제가 심한 시장이라고 생각도 하지만 규제의 퀄리티가 높은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규제 시스템이 산업 끝단에 있는 거래소나 지갑 사업, 수탁 사업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다루면서 신지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가 채택한 디지털자산과 사법 원칙(디지털자산원칙)에 대해 소개했다.
신 교수는 “사법통일국제연구소의 디지털자산원칙은 원칙에 합치되는 입법을 채택하도록 권장함으로써 국제 거래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자 제정됐다”며 “디지털자산원칙은 가상자산을 법적으로 규율하고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고자 한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 중이지만, 가상자산의 본질을 규율하는 입법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중심으로 강제집행 절차를 정비하고, 파산 시 기준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