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 업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10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엄수됐다. (사진=고려아연)
자원 빈국에 ‘소재 독립’ 초석을 놓은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10일 엄수됐다. 이제 남은 것은 아들 최윤범 회장의 시간이다. ‘가문의 기업’에서 ‘시장의 기업’으로 넘어가는, 고려아연의 두 번째 50년이 시작되고 있다.
■ “하루라도 멈추면 뒤처진다”…꾸준함의 철학
194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 명예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콜롬비아대 MBA를 거친 뒤 1974년 고려아연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혁신이나 개혁 같은 큰 변화가 아닌 하루하루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중요시 했다.
그는 “혁신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 바꾸면 개혁이 필요 없다”는 철학으로 매일의 개선을 중시했다. 결과적으로 고려아연은 연간 아연 생산량 5만 톤에서 65만 톤으로, 매출은 114억원에서 12조원으로 성장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제련소 부지 선정부터 세계은행 산하 IFC 투자 유치, 기술 도입까지 모든 절차를 직접 챙겼다. 온산제련소는 당초 IFC가 제시한 예산 7000만 달러를 4500만 달러로 낮춰 완공됐다.
■ 공해산업의 프레임 깨고 자원 순환으로
1980년대 최 명예회장은 비철제련을 단순한 제련업이 아닌 ‘자원 순환산업’으로 정의했다.폐배터리·산업폐기물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도시광산 사업, 아연 찌꺼기를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는 공정 등을 직접 추진했다. 이런 노력이 ‘자원 재활용형 제련소’라는 새로운 산업 모델을 만들었고 고려아연은 세계 환경표준을 선도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최 명예회장은 스타플레이어보다 조직 전체의 안정과 신뢰를 중시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38년 무분규,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단 한 차례 구조조정이 없었다. 이제중 부회장은 “회사를 최씨 가문의 것이 아니라 모든 임직원의 회사로 여기셨다”고 회고했다.
■ 없던 산업 있게 한 영원한 도전자···‘지속가능한 도전’ 과제 남겨
최창걸 명예회장이 이룬 것은 ‘없던 산업을 만든 일’이라면 최윤범 회장에게는 ‘있는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바꾸는 일’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작년부터 이어진 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은 한국 제조업 지배구조의 민낯을 드러냈다.
MBK는 자본 효율성과 투자 회수를, 최윤범 회장은 산업의 지속성과 기술 자립을 내세웠다.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고려아연은 ‘가문의 기업’에서 ‘시장의 기업’으로 진화하는 과도기에 들어섰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최윤범 회장은 선대의 ‘꾸준함의 경영’을 계승하면서도, 친환경·리사이클링·도시광산으로 사업의 축을 옮기고 있다. 2023년 그룹 슬로건을 ‘Zinc for Life’로 바꾸며 아연을 단순한 금속이 아닌 ‘지속가능한 소재산업의 핵심’으로 재정의했다.
고려아연은 이제 폐배터리 재활용, 인듐·리튬 등 2차전지 핵심소재, 탄소중립 제련 등 ‘비철+친환경’ 융합 모델을 구축 중이다. 창업 50년의 유산 위에 ‘순환의 산업화’를 더하는 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